오랫동안 대중이라 불리우는 다수는 의사결정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왔었다. 소수에 의해 결정되었고, 소수에 의해 집행되었으며, 그 열매 또한 소수에게 돌아갔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민주화였다.
그래서일까? 아마 그 반동일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대중이라는 단어에 무소불위의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특히 네트워크를 통한 소통이 활발한 인터넷상에서 더욱 그런 경향이 나타났다. 이름하여 네티즌. 어느샌가 사람들은 스스로 네티즌을 자처하고 네티즌이라고 하는 명제에 충성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설마 그 많은 사람들이 아무 근거도 없이 그러겠느냐?"
참 많이도 들었다. 오프라인에서는 대중이고, 온라인에서는 네티즌이고,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가운데 자신의 정체성을 그곳에 둔다. 굳이 정체성을 그곳에 두지 않더라도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대중은 옳다."
"네티즌은 틀리지 않았다."
설마 아무 이유도 없이 그러겠느냐. 설마 아무 근거도 없이 그러고 있겠느냐. 뭐라도 이유가 있으니까. 뭐라도 근거가 있으니까. 거짓말은 하려면 크게 반복해서 하라고 그래서 처음에는 하찮은 악플에 불과했던 것이 한 인간을 파멸시키고 마침내는 죽음으로 내모는 경우마저 나타나고 있다. 바로 그런 막연하고 맹목적인 믿음이.
어째서? 바로 그러한 근본적인 질문인 것이다. 대중은 반드시 옳은가? 다수라고 해서 반드시 옳았는가? 그렇다면 다수가 그리 결정했으니 나치즘은 옳았는가? 다수가 그렇게 동의했으니 아메리카 대륙에서의 원주민 학살은 옳았는가? 다수의 시민들의 자발적 동참에 의해 조장된 지금의 부동산 거품은 과연 옳았는가?
이성은 자기를 돌아보고 의심하는 것이다. 객관이든 보편이든 그 전제는 먼저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의심하는데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나는 과연 옳은가. 우리는 과연 틀리지 않았는가. 우리에게는 잘못이 없는가.
네티즌이라는 것이 정의와 동의어가 되자면 먼저 내적인 비판부터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정의와 동의어가 되자면 대한민국에 대해서 역시 내적인 비판이 선행되어야 한다. 잘못했으면 비판한다. 결과적으로 그것이 옳았어도 동기와 과정이 잘못되었으면 비판하여 내적으로 반성한다. 상식일 터다.
그런데도 그게 잘 안 된다. 아무래도 스스로 자기를 네티즌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자기를 한국인이라 생각하고. 자기를 특정 집단에 속해 있다 생각하고. 그에 자기를 동일시하고. 비판하기보다는 오히려 무오류성으로써 그것을 권력화하여 향유하는데 더 관심이 많다. 대중이라는 권력이다. 네티즌이라는 권력이다. 그 힘에 취하느라 더욱 비판이란 불가능해진다. 나는 옳다. 내게는 권력이 있다.
어느샌가 대중이라는 이름 앞에, 네티즌이라는 이름 앞에 개인의 존엄이란 의미가 없어졌다. 인간에 대한 존중이라는 것도 가치가 없어졌다. 대중이기에, 네티즌이기에 아무리 평생을 한 길로 자기 분야에 쏟아붓고 그 결과에 대해 모두가 존경하고 있어도 그 앞에서 그거 하찮을 뿐이다. 그에 어느새 동의한다. 심지어 누군가 네티즌에 대해 비판이라도 하면 난리가 난다. 네티즌이 아니더라도 자기가 속한 집단에 대해서는.
말하자면 집단이라는 - 대중, 혹은 네티즌이라는 권력을 단순히 즐기고 있을 뿐이랄까? 그것이 권력이 되었으니까. 그래서 과거 독재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비판을 거부한 채 무오류성을 주장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것을 비판해야 할 지식인들마저 함께.
왜 악플러가 끊이지 않는가. 그들을 받아주는 대중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에 동의해주는 네티즌이 있다는 것이다. 그에 부화뇌동하는 언론이며 지식인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배우고 뭐라도 끄적이는 사람들마저 그에 함께 동조하고 있다. 얼마나 짜릿한가. 자기의 악플로 한 인간을 망치고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누가 그렇게 만드는가?
악플을 끊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러한 악의를 대중으로부터, 네티즌으로부터 끊어내는 것이다. 악의에 의해 비롯된 것이라면 그 결과야 어떻든 잘라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고서야 악플러가 발 붙일 곳이 사라진다. 지금처럼 악플에도 이유가 있다... 유영철에게도 김수철에게도 이유는 있다.
대중이라는 말이 정의와 동의어가 되고, 네티즌이라는 말이 정의와 동의어가 되고, 네티즌이 그리 했으니 따르라. 네티즌이 그러한 다수가 그리 하고 있으니 그를 떠받들라. 3류 찌라시라면야 상관없겠지만 언론을 자처하고 지식인을 자처한다면 그래서는 안 되는 것 아닐까? 그것이 과연 언론이고 지식인이 할 짓인가?
아무튼 답답한 것이다. 같은 네티즌이기에... 중요한 건 먼저 자기를 돌아보고 의심하는 것일 텐데도. 먼저 우리부터 의심하고 비판하는 것일 텐데도. 권력이란 또한 무오류성이라.
가끔 - 아니 요즘은 자주 네티즌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보게 된다. 자기반성도 비판도 없이 절대 옳기만 한. 숫자로서만 말하는 괴물의 모습을. 그것은 오만이라는 이름의 정의일 것이다. 공포다. 한여름의 살떨리는.
'문화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설리와 크리스탈 - 아이돌의 혹사에 대해서... (0) | 2010.08.13 |
---|---|
황우석과 타블로 -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 (0) | 2010.08.12 |
비호감이라는 이름의 어떤 오만... (0) | 2010.08.10 |
대중이라는 말이 짜증스러운 이유... (0) | 2010.08.08 |
W, 아마존의 약속 - 저들이 세계를 지배하는 이유... (0) | 2010.08.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