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일반

무한도전 - 올림픽대로 듀엣가요제...

까칠부 2009. 7. 12. 07:49

멋졌다. 예능에서 이런 시도도 가능하구나. 힙합 두 팀과 락 두 팀과 아이돌 두 팀과, 이제는 중견이 된 가수 한 팀, 이 가운데 뒤의 세 팀은 모두 기성작곡가로부터 각각 일렉트로니카와 라틴, 그리고 장르를 특정하기 애매한 - 그러나 중독성이 강한 멜로디가 특징인 후크송을 받고 있다. 역시나 여름이라 발라드가 배제된 아마 우리나라에서 통용될 거의 모든 장르가 망라되었다 할 것이다. 과연 이런 무대가 달리 어디 또 있을까?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건 역시 YB와 길이 함께 한 "난 멋있어"였다. 가사가 뭐 그러냐 할 수도 있지만 원래 락이란 그런 거다. 길의 보컬이 마음에 안 들 수 있어도 그게 락이다. 꾸밈이 없는 것. 그래서 가장 솔직한 음악이 락이다. 아, 힙합도 한솔직하던가? 그래서 마찬가지로 좋았던 것이 유재석과 타이거JK, 윤미래의 퓨처라이거 팀의 "Let's Dance"였다. 돌브레인도 아니나 다를까 무대 위에서 놀 줄 알았고, 정형돈과 에픽하이의 삼자돼면도 괜찮았다. 그러나 역시 가장 좋았던 것은 YB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YB를 싫어한다. 싫어한다기보다는 관심이 없다. 뭐랄까... 팍 꽂히는 게 없달까? 그냥 딱 락이다 싶은 음악만 하는 터라 딱 락스런 음악을 듣고 싶을 때 아니면 관심도 안 간다. 그러나 그런 밴드는 참으로 널리고 널려서 말이지... 그보다는 오히려 개성적인 인디밴드에 더 관심이 많은데, 그러나 말했듯 가끔은 락스런 음악을 듣고 싶을 때도 있더란 거다. 바로 이 노래처럼.

 

사실 곡쓰는 과정부터가 인상적이었다. 원래 이런 게 밴드음악이거든. 팀작업이고. 어떤 주제를 가지고 서로 아이디어를 더해가며 곡을 만들어가는... 그건 유재석과 타이거JK가 함께 한 퓨처라이거 팀도 같은데, 아예 퓨처라이거는 음악에 문외한인 유재석으로 하여금 직접 곡작업에 참가케 하여 타이거JK가 그것을 하나의 음악으로 완성해가고 있었다. 정말 감동적인... 노래 자체보다 곡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더 멋졌다고나 할까? 타이거 JK가 괜히 타이거JK인 것은 아니구나 느꼈다.

 

아무튼 길이 먼저 가사를 쓰고, 멜로디를 만들고, 그리고 그 위에 YB가 모던한 락사운드를 얹어가는 장면은 참 흥미로웠다. 어디서 헤드뱅잉을 하고, 또 어디서 주문같은 가사를 넣고, 그때는 어떤 무대매너를 하고, 논다는 점에서 돌브레인이 확실히 노는 음악을 했지만, 그보다는 조금 더 짜임새가 있었다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음악도 YB와 길 딱 그 가운데서 나왔고. 이를테면 화학작용이랄까? 밴드음악이란 그렇게 서로 닮아가는 작업일 터이니. 그런 점에서 +100만 점. YB에 대한 평가도 10 올랐다.

 

퓨처라이거도 좋았다. 파워풀한 윤미래의 랩과 보컬, 그리고 그 뒤에서 받쳐주는 타이거JK, 그들의 무대에서도 어디까지나 주인공은 유재석이었다. 유재석을 충실하게 서포트하면서도 무대를 풍성하게 만들었달까? 무대매너에서나 가창력, 곡의 완성도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팀이었다. 힙합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듣는 즐거움이 있었던 음악. 마지막에 유재석이 어느새 무대에 동화되어 버리는 모습이 즐거웠다.

 

그 다음으로 평가할만한 것이 전진과 이정현 팀의 "세뇨리따". 이 팀은 이정현과 전진의 화려한 무대매너의 승리였다. 그야말로 현장에서 보고 즐길 수 있는 음악이랄까? 음악 자체도 라틴풍으로 신났지만 그보다는 이정현의 무대매너가 빛났다. 그를 충실히 서포트한 전진의 존재감 역시 탄탄했고. 조금 오버한다 싶은 부분도 없잖아 있지만 그건 또 이정현이니까... 이정현이니까라는 한 마디로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는 건 대단한 거다. 신뢰감이며 또한 그에 대한 찬사다. 거의 마지막에 생수를 몸에 뿌리는 장면은 정말...

 

제시카와 박명수의 팀인 명카드라이브의 무대는 박명수의 삑사리가 가장 큰 마이너스였고 역시나 괜히 인기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준 자리였다. 가장 최근의 트랜드를 반영한 시원시원하고 귀에 쏙 들어오는 멜로디와 그 멜로디에 어울리는 귀여운 가사, 그리고 안무들... 솔직히 취향은 아니지만 어쩌면 듀엣가요제 곡들 가운데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할만한 곡이 아니었을까? 말했듯 최근의 트랜드를 반영한 세련된 곡이고 사운드니까. 다만 내 취향은 아니라는 게 좀 걸린다.

 

이밖에 정형돈과 에픽하이의 삼자돼면과 정준하와 애프터스쿨의 애프터쉐이빙은 조금 열외다. 삼자돼면의 "바베큐"는 신나기는 했는데 싱거웠고 - 차라리 그 전회에 잠깐 나왔던 일렉트릭 갱스터쪽이 훨씬 나았다는 생각이 든다. - 애프터 쉐이빙의 "영계백숙"은 "영계백숙 우워어~~" 하는 후크를 제죄하고는 전혀 들어오지 않는, 더구나 함께 출연한 애프터스쿨이 완전 백댄서로 존재감을 잃고 있다는 점에서 듀엣가요제의 목적을 상실한 경우였다. 역시나 윤종신의 멜로디와 가사 뽑아내기는 경지에 이르렀지만 그것을 구현해내는 과정에서 마무리가 치밀하지 못했다는 점이 치명적인 한계였달까?

 

아, 돌브레인의 "갈매기"가 있었구나. 참 좋았는데 말이지... 신나고 좋았는데 워낙 어수선해서... 너무 어수선하다 보니 곡 자체가 잘 들어오지 않는다. 노홍철의 오버질도 있고. 내가 노브레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다. 음악 자체는 나무랄 데가 없는데 무대매너들이 음악에 집중할 수 없도록 워낙 정신사나워서... 물론 그 자체가 활력넘치고 흥겨운 것이기는 하지만 솔직히 피곤하다. 특히 라이브로 듣자면 아주 오만 진이 다 빠진다. 그것이 감점요인. 그래도 음악 자체는 좋았다. 신나고.

 

아무튼 전체적인 평가를 내리자면 하나 버릴 곡 없는 좋은 노래들로 채워진 무대였다. 개인적인 취향에 도무지 맞지 않는 노래들도 분명 있었지만, 그런 노래들 또한 사람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좋아할 수 있는, 결코 허투루 만든 것은 아닌 그런 노래들이었다. 가요제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 예능을 뛰어넘은 예능이었달까? 내가 예능프로 보고 감동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여기까지 왔구나...

 

 

그래서 문득 떠오른 것이 오빠밴드도 이런 컨셉으로 가면 어떨까? 처음부터 하나하나 팀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다루거나, 아니면 두 개 이상의 팀을 만들고 서로 경쟁구도로 가는 식으로... 이를테면 유영석과 김구라가 서로 충돌해서는 팀이 깨져서 둘이 되고 서로가 경쟁하면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거지. 무리일까?

 

하긴 이런 건 역시 일회성 이벤트로 끝내는 게 좋기는 하다만. 작년 라디오스타에서 기러기밴드를 했을 때도 그리 반응이 좋기는 했지만 결국에 그것을 하나의 코너로 만들기에는 한계가 있지 않았던가 말이다. 오빠밴드도 바로 그런 점때문에 벌써 고전하고 있는 것이고. 어찌할 것인가? 당장은 몰라도 앞으로가 보이지 않는다는 거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하겠다. 아쉽지만.

 

 

어쨌거나 결론은... 좋았다. 재미있었다. 음악들도 훌륭했고, 허술한 듯 하지만 모두 나름대로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했다. 가장 날로 만들었다는 윤종신마저도 가사며 곡이 그냥 나온 것은 아닌 듯하다. 유명한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일까? 이래서 무한도전이구나 싶었다. 음악도 좋고, 음악을 대하는 자세들도 좋고, 무대도 좋았던, 간만의 정말이지 충실한 시간이었다. 최고였다. 근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