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 - 바로 이런 게 드라마다!

까칠부 2010. 8. 15. 18:46

실제 있었던 일이다. 어떤 팀이었던가는 기억이 가물한 관계로 말하기 그렇고, 아무튼 서로 생업을 가지고 충실하다 오랜만에 공연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스케줄이 맞지 않았던 탓에 처음에는 단지 몇 명 뿐이었다. 하지만 공연을 진행하며 한 사람 한 사람, 마지막에는 모두가 합류해서 한 목소리로...

 

영화에도 있었을까? 만화에서는 그런 게 꽤 되었다. 최근의 일본만화 벡BECK에서도 록페스티벌에서 처음에는 주인공 혼자 올라가 솔로를 하다가 베이스가 한 사람 한 사람 올라 마지막에 랩퍼 치바까지 합류하며 하나의 완성된 팀을 이루고 있었다. 그만큼 극적이라는 뜻이리라.

 

처음에는 이경규와 김태원 뿐이었다. 김태원은 무대에 오르지 않고 이경규는 C만 잡고 치는 이름뿐인 세컨드기타다. 보컬인 김성민은 뮤지컬 연습 중, 베이스인 이정진은 일본에, 이윤석과 김국진, 윤형빈은 각각 다른 녹화가 있어서. 연습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한 사람 한 사람 모여 공연장으로 향하고... 마지막 한 사람이 합류하지 못한 상태에서 리허설을 마치고는 다른 팀의 공연이 시작되고 나서야 마지막 멤버가...

 

물론 결과를 안다. 어떤 결과가 나왔던가. 설마 이정진이 참가 못 했을까. 하지만 일본이라는 게 만만한 거리가 아니라는 거다. 드라마 촬영 도중 비행기를 타고 공연 바로 직전에 도착한다는 부담이란 어떠하겠는가. 알면서도 긴장이 된다. 일본에서의 이정진의 모습이 보이며 더욱.

 

공연 도중 매트로놈 인이어가 빠지며 이윤석의 드럼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빨랐다. 하지만 사운드 자체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김성민의 보컬도, 이경규의 랩도, 윤형빈의 키보드와 김국진의 기타와 이정진의 베이스, 모두가 하나가 되고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런 음악이었던 것처럼.

 

"드럼에 맞춰!"

 

드럼이 무너지면 팀 전체가 무너진다. 하지만 나머지 팀이 드럼을 받쳐주면 그것이 곧 팀의 음악이 된다. 드럼이 혼자서 폭주해도 그에 맞춰줄 수 있는 바로 그런 것이 팀웍이 아니겠는가. 드럼이 예정에 없이 빨리 친다고 바로 그에 맞춰 사운드를 만들어갈 수 있는 것이 밴드일 것이다. 공연 도중 사고가 어디 그런 한 가지 뿐이겠는가만, 그런 것들에 하나가 되어 맞춰갈 수 있는 그런 것이 밴드인 것이다. 그들은 분명 밴드였다.

 

김태원의 말대로다. 그들은 아름다웠다. 밴드의 모습 그 자체였다. 실력이야 다음 문제다. 실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 마음가짐이다. 팀이라고 하는. 모두가 하나라고 하는.

 

"개인기 좋아봐야 소용없어. 무조건 팀웤이야!"

"오늘의 무대를 위해 고생한 게 아니라 즐긴 거야."

"우리라서 행복해!"

 

보컬의 목상태가 안 좋으니 키보드가 그것을 받치고, 어느새 그 점잖던 이정진마저 분위기에 취해 제스쳐를 위한다. 진정으로 무대를 즐기는 것이 보였다. 마지막까지 무대를 즐기며 최선을 다하는 것이 보였다. 음악을 하는 자신이 즐거우면 보는 사람도 즐겁다. 아마 심사에서도 그런 점이 가장 크게 반영되었을 것이다.

 

생업에 충실하면서도. 그래서 연습할 시간이 없으면서도. 여전히 그 모양이면서도. 그래서 무대가 두렵고 떨리기만 해도. 어느샌가 함께가 되면 즐거운. 함께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그것이 즐거운. 두려움도 떨림도 잊고 즐길 수 있는 그런 것들이 말이다. 그런 진지함과 유쾌함들이. 충실함이.

 

남자의 자격만이 갖는 강점을 그대로 보여준 회차였다. 다른 것 하지 않아도 된다. 단지 있으면서 대화만 나누어도 분량이 나온다. 그저 일상처럼 대화를 나누고 함께 어울리기만 해도 절로 웃음이 나온다. 그런 자연스러움이 있어서. 그런 따뜻함이 있기에.

 

"이번에 망치면 가만 안 놔둘 거야!"

"그런 걸 가지고 사리분별이라 하는 거야!"

 

확실히 김성민의 가치란 사건을 일으키는 기점이라는 것이다. 김성민은 어떤 순간에도 사건을 일으킨다. 그의 어수선함은. 그의 분주함은. 그리고 그의 생각없음은.

 

아니나 다를까 그의 어수선함과 분주함은 남자의 자격 밴드를 거치며 김태원이 김성민 킬러로 자리매김하도록 만들고 이번에는 김국진이 김성민을 잡는 천적으로 만든다. 물론 억지스럽다거나 악의가 느껴진다거나 하는 수준은 아니다. 그냥 형이고 동생? 거 왜 있잖은가? 괜히 주는 것 없이 얄미운 동생과 그런 형에게 여전히 응석을 부리는 동생. 주눅들어하는 김성민이 그런 동생이고 짐짓 엄격한 체 하면서도 끝내는 그를 인정하고 마는 김태원과 김국진은 그런 형의 모습이다.

 

"네가 1년동안 제일 고생했어, 내가 보기에는."

"성민아! 수고했다!"

"성민이가 노래 못했으면 이거 안 되는 거야!"

 

확실히 어딜가나 욕을 도맡아 먹는 사람이 있다. 그것이 악의인가, 아니면 선의의 유쾌함인가. 선의를 선의로써 받아들인다면 서로 욕하고 비난하더라도 그것은 우정이 될 것이며 신뢰가 될 것이다. 그가 만들어내는 사건들은 서로간의 끈끈한 정을 북돋워주는 활력이 될 것이다. 김성민이 그렇다. 김성민의 역할일 것이다.

 

음악도 좋았고 예능도 좋았고. 물론 컴퍼니밴드페스티벌에 출전한 다른 팀들의 음악도 좋았다. 아마추어라고는 믿기지 않는 실력들이었다. 그들의 그런 프로 못지 않은 실력을 들을 수 있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윤석이 말했던,

 

"락커가 되는 것이 꿈이었거든요."

"꿈을 이루는 자리에 있도록 해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내가 왜 이번 밴드편에 이리 관심을 가지고 감동 이전에 공감을 하고 있는가. 나 역시 꿈이었다. 밴드라는 것은. 아마 많이들 그렇지 않을까? 보컬보다 앞에 나와 멋지게 기타애드립을 하는 기타리스트란 내가 어렸을 적 세상에 가장 위대한 영웅이었다. 미친 듯 폭풍같은 소리를 쏟아내던 드러머 역시. 악기조차 없이 밴드를 만들어 흉내를 내던 시절이 그렇게 아련히 떠오른다. 그래. 나도 저들과 같았다.

 

연습하는 모습도 좋았고,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디테일함도 좋았고, 떨리고 겁나고, 리허설을 하면서도 허둥대고, 다른 팀이 하는 것을 보면서는 부러워하고 겁내면서도 애써 단점을 짚어 승산을 따지고, 그리고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나서는 누구나의 얼굴에 떠오르는 뿌듯함. 이래서 내가 남자의 자격을 보는 것일 테지만.

 

근래 최고의 예능이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근래 최고의 음악프로그램이었다. 음악을 이렇게까지 디테일하게, 그리고 치열하게 다루어낸 프로그램이 최근 또 있었던가. 예능을 넘어선 예능. 그러나 그래도 예능. 남자의 자격일 것이다. 더운 여름 더위조차 잊고 만족하게 보았다. 멋졌다. 멋진 드라마였다.

 

 

덧, 그런데 심사위원이 최이철이었네? DMB라 흘리고 지나갔다가 지금 다시 확인해 보았다.그냥 사랑과 평화의 전멤버로 나오지만, 위대한 탄생에서도 기타를 쳤던 우리나라 최고의 기타리스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얼마전 3대 기타리스트에 대해 쓰면서 빼먹은 게 생각나 아쉽더만. 간만에 보니 정말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