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완결된 일본만화 벡BECK에서도 주인공 다나카 유키오는 악기라고는 한 번도 만져본 적 없는 초보자로 나온다. 역시 일본의 애니메이션 케이온에서도 주인공 히라사와 유이는 악기를 다루어 본 적 없는 문외한이다. 헐리우드 영화 시스터 액트 역시 생초짜인 수녀들에게 합창을 가르치는 내용이다.
일본의 인기만화주간지 소년점프에서 내세우는 히트키워드가 있다. 우정과 노력과 승리라고 하는 것이다. 우정은 관계에 대한 것이다. 노력은 개인에 대한 것이다. 승리는 목적과 성취에 대한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이 있고, 그것을 이루고자 하는 치열함이 있고, 마침내 그것을 이루어내는 성취감이 있고, 아마 그것은 굳이 소년점프라는 만화잡지가 아니더라도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공감의 요소가 아닐까.
굳이 록밴드가 아니더라도 스윙걸즈에서는 재즈밴드가 그 소재가 되고 있었다. 노다메 칸타빌레에서는 이른바 말하는 쩌리로 이루어진 밴드가 있었다. 베토벤 바이러스가 한창 인기리에 방영중일 때 표절논란이 일어난 것도 바로 그런 허술한 아마추어들을 밴드로 만들어가는 과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스터액트는 합창이었다. 그러고 보면 남자의 자격에서 또 합창을 하고 있다. 합창과 밴드에 대해 어딘가 겹치는 느낌을 받은 것은 그 때문이다.
밴드다. 합창단이다. 결국은 팀이다.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다. 혼자서만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김태원이 부활의 리더이고 손꼽히는 탁월한 음악인이더라도 다른 멤버들이 따라와주지 않는데 혼자서 밴드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일주일에도 며칠씩 학원에 다니고 드럼을 연습하고, 그러나 이윤석 혼자 드럼만으로 밴드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키보드가 있어야 하고 기타가 있어야 한다. 보컬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모두 최소한의 소리는 내 줄 수 있어야 한다. 최소한의 소리를 내 줄 뿐만 아니라 하나의 팀으로써 조화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밴드다.
당연히 충돌이 일어난다. 앞서 언급한 작품들에서도 그러한 충돌과 갈등이야 말로 작품의 가장 중요한 소재가 된다. 여전히 늘지 않는 실력에, 그러나 높기만 한 이상에, 서로간의 실력과 추구하는 방향의 차이가 서로 마찰을 빚기도 하고, 그래서 목소리를 높여 싸우고, 틀어지고, 끝내는 못해먹겠다 팀을 깨고, 벡에서도 록페스티벌 막판 치바가 합류를 망설이는 것도 같은 꿈을 꾸지 못했다고 하는, 팀에 과연 자신이 어울리는가 하는 마음의 갈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그런 갈등을 통해서 서로간의 정은 깊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혹은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이루어낸 결과에 함께 기뻐하고 감동한다. 거의 공식이다. 그리고 매번 통하는 성공의 공식이기도 하다.
완전 초짜들이었다. 그나마 케이온에서는 히라사와 유이를 제외하고 악기를 조금은 다루어 본 멤버들이었다. 태양의 노래에서도 후지시로 코지는 과거 기타를 만져 본 적이 있었다. 베토벤 바이러스에서도 은퇴한 전직 국립관현악단 출신의 김갑용이 중심을 잡아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없었다. 코드도 몰랐고, 박자도 제대로 맞추지 못했고, 악기를 연주할 거라는 생각 자체도 않고 있던 사람이 태반이었다.
그것을 처음부터 지켜보았다. 어이없어하는 김태원의 표정만큼이나 한심한 표정을 지으며 그들의 서툰 모습을 처음부터 지켜보아왔다. 기타는 개방현이 뭔지도 모르고, 드럼은 박자를 놓치고, 보컬은 박치에 가사조차 외우지 못하고, 베이스는 연습이 되어 있지 않고, 한참을 해도 여전히 소리는 불협화음이다. 자신조차 없어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소리들이다. 김태원만이 아닌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한숨만 나오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첫방송에서 중학교 2학년 수준의 밴드가 되더니 두번째 방송에서는 제법 멋지게 첫공연을 성공시키고 있었다. 물론 아직 많이 서툴었다. 아직 많이 부족했고 갈 길이 멀었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 나아지고 있었다. 조금씩이지만 나아지는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와 우정이 있었다.
굳이 이경규에게 세컨드 기타를 맡기고 랩을 맡긴 것이 그것이었다. 남자의 자격 밴드에서 세컨드기타라는 게 그렇게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랩 역시 즉흥적으로 떠올린 것이었다. 하지만 때로 놀리고 웃으면서도 남자의 자격 밴드에는 언제나 그의 자리가 있었다. 도저히 박자를 맞추지 못하는 보컬 김성민에 대해서도 교체하네 마네 하면서도 차라리 멜로디와 가사를 바꾸며 윤형빈이 그를 보조하고 있었다. 뮤지컬 연습으로 목에 이상이 있다고 했을 때 김성민과 함께 보컬을 나누어 부담을 덜어준 것이 윤형빈이었다. 여전히 실력이 정체되어 있는 김국진의 파트를 줄이며,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는 김국진의 기타애드립대신 이경규는 중간에 랩을 하게 되었고. 그리고 그들의 뒤에는 항상 성실하게 밴드의 사운드를 떠받치는 이윤석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직접 곡을 쓰고 멤버들을 이끌고 가르치는 할마에 김태원이 있었다.
쉴 새 없이 대화가 오갔다. 때로는 안 좋은 소리도 오갔다. 김성민은 보컬 자리를 위협받았고, 김국진은 주눅들어 있었다. 김태원의 질타가 계속될 때는 모두가 잔뜩 굳어있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서 대화가 끊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김태원은 항상 주문하고 요구했으며 대안을 제시했다. 멤버들도 그에 충실히 따르며 그 안에 자기 의견을 더했다. 그렇게 남자의 자격 밴드는 모두가 함께 성장하고 있었다. 누구 하나 특출나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부족한 실력이더라도 함께 나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대회. 아니 그 전의 부활 콘서트에서의 첫공연.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고 초조해하고. 그래도 나름 연예인임에도 그리 긴장해 하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많은 만화나 영화, 드라마에서 보여주었던 무대에 대한 공포. 그리고 그 공포를 해결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 즐기라.
피디가 연주하는 메탈리카의 기타에 맞춰 김성민과 이윤석은 즉석메탈을 연주하고 있었다. 물론 엉터리였다. 어디에도 족보가 없는 마음만 메탈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흥겨웠다. 예선을 앞두고 김태원은 다시 멤버들에게 헤이쥬드의 연주를 가르쳐주었다. 분위기가 다운되면 이것을 연주하며 기분을 바꾸자. 긴장으로 경직되어 있던 멤버들의 얼굴이 펴지기 시작했고 점차 무대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부활콘서트의 첫무대에서, 그리고 더 나아진 직장인밴드 콘테스트 예선 무대에서. 그리고 마지막 본선이 다가왔다.
확실히 마지막 순간까지도 남자의 자격은 드라마를 놓지 않았다. 그들은 아마추어다. 그들에게는 각자의 본업이 있다. 김태원은 음악인이고, 이경규는 예능인이자 MC였으며, 이윤석, 김국진, 윤형빈 모두 예능인으로 방송출연중에 있었다. 이정진은 일본에서 드라마 녹화중이었다. 김성민은 뮤지컬 연습중이었다. 그나마 시간이 한가한 김태원과 이경규만이 처음 대회 본선이 있던 날 카메라 앞에 서서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있었다.
아마 이윤석의 프로그램이 먼저 끝났을 것이다. 이윤석은 밴드 연주 문제로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김국진과 윤형빈의 프로그램이 끝나고 그들 역시 긴장과 불안을 안고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멤버들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김성민이 뒤늦게 합류했을 때 그는 다시 합창을 비롯 뮤지컬 연습으로 목에 무리가 가 있었다. 그래서 미리 김성민의 목에 무리가 갔을 경우 부담을 줄여주려 윤형빈과 합을 맞춰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이정진은 비행기에 몸을 싣고 공연장으로 바로 오고 있던 중이었다.
다른 밴드가 모두 리허설을 끝내고 나서야 뒤늦게 도착해서는 베이스도 없이 리허설을 마치고, 다른 밴드가 한참 공연중에 있을 때 마침내 이정진이 도착하고, 예상 이상의 다른 밴드의 탁월한 실력에 주눅들어하고 긴장은 더욱 강해진다. 말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이런 저런 말들이 오가며 긴장은 더욱 되었다. 결과를 이미 알고 있음에도 심장이 옭죄일 정도로.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실전. 무려 1년 넘게 목표로 해 왔던 대회의 무대에 서게 되는 것이었다. 수천 관중 앞에 자신들의 실력을 보여주려. 인정받으려. 그리고 여기서도 실수가 나왔다. 무려 드럼의 메트로놈이 빠지며 박자가 빨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멤버들이 그것을 무난하게 받아내며 실수는 실수같지 않게 멤버들은 마치 자신들의 모든 것을 불태운 듯한 열정의 무대를 마치고 내려온다. 잠시의 침묵이 있었다. "내일의 죠"에서 모든 것을 불태운 죠처럼 그들은 한 동안 허탈함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참 편집이 잘 되었다. 첫방송은 중학교 2학년 수준의 틀리지 않는 연주가 목표였다. 두번째는 부활 콘서트에서의 첫실전공연이었다. 세번째는 예선, 마지막 본선. 매회마다 시청자들은 남자의 자격 멤버들과 함께 하나씩 목표를 이루어나가는 짜릿함을 경험했었다. 마지막 하나 승리였다. 승리하고, 승리하고, 비록 3위지만 예선에서도 승리하고, 4위에 머물렀지만 본선에서도 그들은 이미 승리하고 있었고,
이보다 더 훌륭한 드라마가 있을까? 다시 없을 생초보들이 점차 능숙해져간다. 한 번도 악기라고는 잡아본 적 없는 생초보 아마추어들이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더니 마침내는 대회에서 이제까지 가운데 가장 멋진 모습을 보이며 4위로 입상까지 하고 있었다.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그리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던 것들이, 각자의 스케줄에 쫓겨 처음부터 함께 하지 못하고 하나하나 차례로 합류하는 모습들이, 그리고 마지막 무대에서 보여주었던 실수마저. 마지막 무대에서 공연에 들어가기 직전 서로의 눈을 마추지는 모습은 얼마나 작위적이면서도 장르적 문법에 충실한가. 그러나 그런 모습마저 더없이 어울릴 정도로 그들 사이에 흐르는 신뢰와 정이란 그동안의 방송에서 충분히 보여지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러면서 항상 서로 소통하며 배려하는 마음을 잊지 않고, 그리하여 함께 노력하고 함께 성장하며 어느 순간 그들이 목표로 하던 모습에 가까워져 있었다. 어느 한 순간이 아니었다. 무려 416일에 거친 시간이었고, 시청자들과는 지난 2월 말부터 함께 하고 있었다. 서툰 모습에서 더 나아지는 모습까지, 그리고 대회에서 입상을 하기까지. 마치 연속극처럼. 시리즈 영화처럼. 그러나 전혀 꾸며지지 않은 본연의 모습 그대로.
바로 그것일 게다. 예로 든 작품들이 쓰여진 대본에 따른 것이라면, 이것은 단지 상황만 주어졌을 뿐 그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각본없는 드라마라는 것이다. 음악을 소재로 만들어지는 작품이란 대개가 비슷하다. 뻔하다.매번 비슷한 포맷이어도 여전히 성공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결국 그만큼 그런 것들이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무언가를 갖고 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무언가가 그 안에는 있다는 것이다. 우정이라고 하는 관계와 노력이라고 하는 치열함과 승리라고 하는 성취감. 그것이 전혀 각본 없이 바로 앞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니.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으니.
누가 있어 이런 멋진 드라마를 - 아니 이런 너무나 노골적인 내용이면 유치하다고 욕을 먹으려나? 그러나 그것이 진심임을 알기에. 그동안 보여주었던 진정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기에. 드라마보다도 더 감동적인. 드라마보다도 더 재미있는. 드라마 이상의 드라마였다고나 할까? 버라이어티 이상의 버라이어티일 것이다.
정말이지 그 어떤 장르물보다 장르적 문법에 충실했던 드라마였다 할 것이다. 내내 눈길을 떼지 못하고 순간순간에 항상 놀라고 감탄하고 감동했던. 허구보다도 더 허구스러웠으며 그 어떤 실제보다도 진정이 느껴졌다. 아마 음악을 통해 보여줄 수 있는 감동의 한계치에 가깝지 않을까. 최고라는 말 밖에는. 단연. 말을 잊는다.
다만 한 가지 우려라면 합창은 어찌할 것인가. 확실히 합창과 밴드는 많은 부분 겹친다. 초보라는 것. 성장이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음악이라고 하는 것이. 다행스럽다면 합창의 경우는 어느 정도 실력이 되고 경력이 되는 게스트가 더 많다는 것. 그리고 박칼린이 보여주는 개성은 김태원과는 다르다는 것. 그렇더라도 과연 영향은 없을 것인가. 글쎄... 그래서 또 기대가 되기도 한다. 그들이 보여줄 새로운 개성과 답에 대해.
어쨌거나 정말 재미있었다. 내내 울고 웃고 감동하고 기뻐하고. 그것은 꿈이었던 터라. 음악을 좋아하고, 만화를 좋아하고, 영화며 드라마를 좋아하고, 또 항상 꿈을 꾸었고. 어려서 밴드를 꿈꾸어 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꿈이 현실이 되는 느낌이란. 허구가 실제가 되는 그 짜릿함이란.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아직도.
사랑해서 사랑해서 (LIVE ver.) - 남격밴드
늘 거리를 혼자 걸었지 곁에 누군가 있는것처럼
너무 오래된 기억이지만 항상 나에게넌 위로였어
* 늘 아픔을 숨겨왔었지 항상 넌 내곁에 있는거라고
너무 힘겨워 지쳐 갈 즈음 다른 사랑이 다가 온다는
**다시 사랑을 하겠지 많은 이별을 했기에
한걸음 한걸음 힘겨운 시간이겠지만
이제 사랑이 오겠지 홀로 힘겨워했기에
한번더 한번더 사랑을 기다리는 날에...
* Repeat
가사 출처 : Daum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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