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첫부분의 전화통화... 스킵하려 했다. 역시 억지눈물짜기는 내 취향이 아니라... 그런데 그만 보면서 같이 눈물 글썽이고 말았네? 나도 어려서 할머니랑 같이 살았거든.
외할아버지께서 나 국민학교 때 돌아가셨다. 외삼촌도 집을 나가고 해서 어머니께서 외할머니 적적하지 마시라고 나더러 함께 살라 하셨는데, 그래서 외할머니와의 사연이 참 많다. 한도 많으신 분이고, 그래서 또 외손주인 내게도 많이 마음을 기대셨고...
울컥 하고 말았다. 아아, 이래서 청춘불패 PD는 전화통화를 고집하는 것일까? 확실히 예능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가슴을 저미는 무언가가 있다. 그래서 더 보기 싫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나도 솔직히 보기 싫었는데 그만...
오늘도 역시나 훈훈하게 내용은 전개되었다. 일만 한다고 투덜대지만 저 나이 또래의 여자들이, 그것도 예쁘기까지 한 처자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가? 화려하게만 보이고, 가식적으로만 보이던 아이돌들이 농촌에서 땀흘려 일하는 모습이란 항상 새롭고 그래서 또 흐뭇하다. 설정이든 무엇이든 서로 위하고 보듬고 또 열심히 하려는 모습들은 그리 예뻐 보이고.
웃자고 보는 예능이라면야 나도 불만이겠지만 청춘불패는 그런 프로그램이 아니지 않은가? 아이돌을 보자는 거다. 첫회에서 보였던 아이돌들의 화장 안한 생얼굴을 보자는 거다. 여자 아이돌들의 매력을 솔직하게 즐겨보자는 거다. 좋지 않은가? 예쁘고.
나는 좋다. 사과를 따다가 꼭지가 끊어지는 바람에 주머니에 몰래 숨기고... 그러고 보니 내가 사과장사를 한 적이 있었다. 덕분에 지금도 사과라면 질색을 하는데, 사과수확철에 사과를 떼러 가면 가끔 사과밭에서 사과 따는 일도 도와주고 그런다. 사과를 날라 쟁여놓는 커다란 창고같은 곳은 아마 냉동창고일 테고. 그야말로 건물 하나가 통짜로 냉장고다. 봄 느즈막이 들어가 냄새를 맡으면 숙성된 사과냄새가... 우웩!!!!
사실 청춘불패 자체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예능을 하기에는 컨셉부터가 무리가 있다. 아이돌 데려다 게임을 하자고? 아이돌 뒤에는 수많은 팬덤이 있다. 여기에 아이돌끼리 설정해서 갈등관계 만들고? 팬덤끼리 인터넷에서 전쟁하는 모습 보자는 걸까? 더구나 아이돌이란 이미지가 생명이다. 엉뚱한 것도 좋고, 털털한 것도 좋고, 궁상인 것도 좋지만, 결코 나쁘다는 생각이 들어서는 안된다. 짓궂어도 상관없지만 못되어서는 안된다. 아이돌의 한계다. 그런 아이돌을 데리고 보여줄 수 있는 게 무엇이겠는가? 오늘과 같은 흐뭇함. 훈훈함. 그것 뿐일 것이다.
오늘도 제법 훈훈하고 재미가 있었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사과깎기 시합도 재미있었고, 사과를 따면서 벌어지는 소소한 일들도 웃겼고, 통편집을 피하고자 사과 가지고 웃겨보자던 유리, 나르샤, 효민, 선화의 모습도 좋았고, 울타리작업을 하면서 어찌 보면 썰렁한 개그를 날리며 분위기를 주도한 구하라나, 써니와 현아의 친목질, 또 뻔뻔하기 이를 데 없는 노촌장의 모습도 참 재미있었다. 확실히 내공이 그냥 쌓이는 건 아닌게, 노촌장은 악역이 없는 청춘불패에서 유일하게 악역을 자처해 맡고 있다. 하는 일 없이 버럭버럭... 덕분에 또 그에 대한 나머지의 분량이 나오고 있다.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역시 구하라의 자전거 삥뜯기. 순간 나도 움찔 했다. 이야말로 학교에서 삥뜯는 일진의 포쓰가 아닌가. 자전거를 거의 강탈하듯 빌리고서는 자전거 원주인에게 던지는 한 마디,
"너 살 좀 빼야겠다?"
아아, 누님~! 개구지게만 보였던 구하라의 악녀적인 모습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물론 자전거를 빌려준 중딩? 초딩? 입장에서야 황홀하기 그지 없었을 테지만.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우연히 마추진 마을 어르신들과의 정겨운 대화들...
아, 그러고 보니 자전거를 강탈하기 전에 아득히 멀기만 한 가게까지 가기가 깝깝해 지나가는 차를 세우려 몸뻬를 걷어올리고 다리를 드러내는 장면도 웃겼다. 계산하고 한 것일까? 정말 가지가지로 털털하고 시원스런 매력이 있는 아가씨다. 빵빵 터졌다. 그리고 이어진 일진 누님 포쓰.
확실히 청춘불패 통틀어 혼자서 이만한 분량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구하라가 유일할 것이다. 오죽하면 그 분량을 뽑기 위해 구하라가 일부러 독 묻기 시합에서 졌다는 소리까지 나올까? 이제까지 예능을 통틀어 구하라의 최초의 참패였다. 딱 하나 삽질은 못하는구나...
그런데 이해하는게 저번 해머 드는 걸 보니 구하라가 힘은 없다. 그리 힘이 좋은 편은 아니다. 단지 힘을 집중력 있게 효율적으로 쓰는 법을 알 뿐이다. 오히려 힘이 좋기로는 선화나 써니가 더 좋지 않을까? 아마 현아도 구하라보다는 힘이 좋을 것이다. 삽질은 요령 붙기 전까지는 역시 힘이다. 그러나 덕분에 재미있는 분량 나왔으니...
그리고 마지막 밖에서 일하고 돌아온 조 가운데 아마 선화였던가? 땀으로 흥건히 젖은 양말. 냄새도 지독할 것 같지만, 솔직히 귀여웠다. 아름다울까?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양말이 멀쩡하다면 그게 더 이상할 테지. 그만큼 열심이었다는 것이고, 그만큼 최선을 다했다는 뜻이다. 그 훈장인데 보기 흉할 게 무얼까?
초반 감동모드가 조금 에러이기는 했지만 그 또한 할머니 생각에 나 또한 눈물을 글썽이고 말았으니 넘어가고, 일단 내용 자체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하겠다. 예능감이 부족한 효민이나 선화 등도 나름대로 분발하려는 것이 보이고 - 그 분발이 또 재미요소가 되기도 하고, 구하라는 알아서 분량 만들어내고, 김태우는...
"얘들아, 유리가 사과도 깎아준다!"
내가 군대 후임이면 실탄 들고 탈영한다. 다행히 그 시간이 군인들은 텔레비전을 보지 못하는 시간이지만...
아마 청춘불패 하면서 가장 안티가 늘어날 사람은 김태우인 듯. 나부터도 밉상이다. 유리가 깎아준 사과를 낼름하고, 구하라의 어깨에 손을 얹고, 더구나 구박까지... 화장실덕후 같으니라고.
또 하나 확실히 남희석이 괜히 MC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하라의 말했듯 어찌 보면 썰렁한 개그들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적절히 리액션을 보여줌으로써 재미를 극대화시키고 있었다. MC가 웃기라는 게 아니지 않은가? 남희석의 굴욕은 구하라를 돋보이게 했고 방송을 재미있게 만들었다. 처음부터 리얼버라이어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군민엠씨로 시작한 이유가 그것인 것 같다.
아무튼 재미는 있었다. 초반 분량은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후반은 확실히 탄력이 붙었다. 이대로만 간다면 청춘불패도 금요일 심야시간에 안착할 수 있을 듯.
끝으로 효민이 예능감을 걱정하자 노무현 아이돌촌장이 한 한 마디를 덧붙여 볼까 한다.
"그냥 네 일상의 모습을 보여주면 되는 거야. 그러면 웃을 거야."
구하라가 그러고 있다. 구하라가 웃기려 해서? 그보다는 자연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그 자연스러움이야 말로 청춘불패가 나갈 방향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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