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찔했었다. 지난주 남자의 자격을 보고. 과연 김태원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겠는가. 그래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리고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중인 록의 살아있는 전설일 텐데...
하지만 보고 있으면서 어느새 걱정은 눈녹듯 사라지고 있었다.
"아, 원래 저런 아저씨였지?"
무언가? 자연스럽다는 거다. 스스럼없다는 거다. 어느샌가 자기가 즐기고 있더라는 것이다.
보면 알겠지만 이 아저씨 은근히 망가지면서도 폼 잡는다. 작년 농사일 하러 가서도 몸뻬에 할머니 패션을 하고서도 자세 잡는 것이 눈에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요정복장을 하고 퍼레이드하면서도 열심히 자세 잡으며 즐기고 있더라. 역시나 기타리스트로서였다. 괴물이 나타났을 때는 역시누구보다 열심히 괴물을 때려잡고 있었다. 이것이 내 일이라는 듯이.
맞다. 일이다. 부활의 리더이기는 하지만 당시는 남자의 자격의 한 출연자 김태원이었다. 음악인이기 이전에 예능인이었다. 음악을 대함에 있어 항상 진지하고 최선을 다하는 그 모습처럼 예능에 대해서도 그런 것이 아닐까. 음악에 대한 진지함 만큼이나 그 또한 예능인으로서의 김태원의 자존심이 아니겠는가.
자존심을 꺾고서 망가지는 것이 아니다. 자부심을 저버리고서 망가지자는 게 아니다. 그 또한 그의 다른 한 부분이고 그 자신이 최선을 다하고 추구해야 할 부분이다. 그런 당당함이. 바로 바로 그런 것이 멋이 아니겠는가. 부끄러워하고, 뒤로 빼고, 움츠려들고, 그러면 어쩐지 보는 사람도 불편해진다. 그리고 질리게 된다. 자기가 싫다는데 보는 사람이 좋을 리 없는 탓이다.
망가지면 망가지는대로. 망신당하면 망신당하는대로. 실수하면 실수하는대로. 강연 때도 뒷말이 이어지지 않는 상황에서도 그리 당당하다. 그늘이 없다. 거리낌이 없다. 자연스레 이입하게 된다. 원래 그런 사람이다. 어느새 시청자 역시 그의 당당함에 이끌리는 것이다. 그래서 김태원에 대해서도 원래 저렇게 재미있는 사람인데 음악을 한다. 그렇게 진지한 음악을 하는 사람인데 원래는 저렇게 재미있다. 전혀 위화감 없이 받아들여진다.
둘이 아니다. 음악인으로서의 김태원과 예능인으로서의 김태원. 아티스트로서의 김태원과 웃겨주는 국민할매 김태원. 기타를 둘고 무대 위에 선 모습과 요정 복장을 하고 물총으로 기타치는 흉내를 내는 모습과. 무엇 하나 소홀히 하지 않으므로. 거리낌이나 그늘이 없으니 그 모두가 김태원이라는 한 사람으로써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다른 매체를 통해 보여지는 음악인으로서의 진지함과 예능을 통해 보여지는 예능인으로서의 유쾌한. 둘이 아니라 하나로써 위화감 없이 대중들에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김태원이 오래 갈 수 있는 이유. 예능에 도전한 아티스트들이 그리 많았지만, 추억에 기대어 예능에 도전했던 대단했던 이들이 그리 많았지만, 그 가운데 유독 김태원 혼자만이 아직까지도 중심에서 활동할 수 있는 것이 그 때문인 것이다. 아티스트로서의 그가 예능인으로서의 그를 지탱해주고, 예능인으로서의 그가 아티스트로서의 그를 이끌어주고.
물론 다른 계산 같은 건 없을 것이다. 그냥 다가오는대로 맞아들인다. 다른 계산 없이 순간순간을 순수하게 즐기면서 맞아들이기에 시청자도 그에 공감하는 것일 테지. 그것이 예능 이외에서의 아티스트로서의 그의 모습과도 거부감 없이 매치될 수 있는 것일 테고. 그래서 더욱 그런 것들이 수월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더불어 아마도 그 위에 남자의 자격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 남자의 자격이 무한도전이나 뜨거운 형제들처럼 과도하게 컨셉을 잡고 웃기고 하는 프로그램이었다면 김태원이더라도 고전을 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웃음보다는 담백한 공감을 위주로 한 프로그램이었고, 다큐멘터리냐 할 정도로 리얼리티에 충실한 프로그램이었다. 출연자의 진정성이 시청자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프로그램이었다. 예능으로 웃기기보다는 사람 자체가 재미있어서 웃는다. 리얼버라이어티의 근본에 가까운 프로그램이라 할 것이다. 그런 만큼 김태원의 웃음에서 작위나 오버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 분명 한 역할 했을 것이다.
"록의 전설인데...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내가 항상 남자의 자격에대해 감탄하는 부분 가운데 하나다. 제작진의 개념이랄까? 마인드랄까? 이정진에게는 배우로서의 자존심을, 김태원에게는 음악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단점을 드러내어 웃기는 것이 버라이어티겠지만, 그 장점을 지켜줌으로써 그 가치를 높여 프로그램에 활용할 수 있는 것은 다름아닌 제작진의 선택이며 역량일 것이다. 오히려 남자의 자격을 통해 웃기면서도 자신의 가치까지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는 것. 웃기는 것만이 아닌 본업에 있어서도 그 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그것이야 말로 정말 대단한 것이 아니겠는가.
아무튼 참 신기한 일이다. 저렇게 망가지고 나면 우습게 여겨져야 할 텐데. 하지만 그럼에도 너무나 자연스러우니까. 요정복장을 하고서도 기타를 치는 모션을 취하며 아티스트로서의 자신을 잊지 않으니. 아티스트로서의 자신을 잊지 않으면서도 예능이라는 현실을 즐기고 있으니.
너무 예능에만 올인해도 좋지 않고. 너무 아티스트로서의 자존심만을 지키려 해도 그리 현명한 것이 못 되고. 둘 사이에 어떻게 절충할 것인가. 아마 그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지 않을까? 그렇게 할매할매 하며 웃어도 무대에서 보이는 카리스마에 동의하고 마는 그런 것처럼.
다시 보아도 정말 어쩌면... 그리고 그런데도 어찌 저리 천연덕스러운가. 바로 그런 것이 리얼버라이어티라는 것일 테지만. 어설픔과 어색함과 그리고 자연스러움. 웃고. 또 웃고. 재미있었다. 멋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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