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 - 남아일언중천금...

까칠부 2010. 8. 22. 18:49

언어에는 대개 두 가지 기능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보고이고 다른 하나는 명령이다. 말 그대로 이미 있는 사실이나 사물에 대해 설명하거나 묘사하여 다른 사람들에 전달하는 것이 보고, 말로써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그러한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명령.

 

그런데 여기에 더해 언어에는 한 가지 힘이 더 있다. 언어 그 자체로써 구현되는 힘. 언어 그 자체로써 실자 작용하는 행위로써의 힘이다. 언명이라 한다. 아마 판타지 소설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언령이라는 말로 더 익숙할 것이다. 여기서도 한 번 이야기한 듯 한데.

 

"사랑한다."

 

그 말을 하기까지 과연 나는 사랑하는가. 하지만 사랑한다고 말함으로써 지금의 나의 감정에 대해 그에 대한 사랑으로 정의하게 되며 그에 구속되게 된다.

 

"당신은 이 사람을 평생 사랑하겠습니까?"

 

결혼식장에서 주례가 묻는다.

 

"네!"

 

그리고 그 말은 결혼이라고 하는 약속을 구체화시킨다.

 

명령과 다른 것은 그것은 다른 누군가로 하여금 직접 행동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기가 직접 무언가 하지도 않는다. 단지 말 한 마디로.

 

"나는 금연을 하겠다."

 

선언이다. 하지만 그것은 행위다. 설사 금연이라는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도 그것은 그 순간 담배를 끊겠다고 하는 행위에 들어가는 것이다.

 

사람이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 그런 것이다. 마오쩌둥이 농촌을 순시하다 한 마디 했었다.

 

"참새는 해로운 새다!"

 

중국에 참새가 씨가 말랐다. 그리고 참새가 해충을 잡아먹지 못하자 대기근이 들어 수천만의 사람이 죽어나갔다. 단지 말 한 마디인데.

 

"넌 도대체 뭐가 되려 그러니?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니? 나가 죽어라!"

 

도대체 실제로 한 것이 뭐가 있을까? 하지만 그 말로 아이는 상처를 입고 실제 죽기도 한다.

 

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장소에 따라,

 

재판관이 말한다.

 

"사형!"

 

그런데 그게 술자리다.

 

결국은 약속이라는 것이다. 서로간에 약속이다. 나는 진실만을 말한다. 나는 진심만을 말한다. 그러니 나 자신이 사랑한다 했을 때 그것이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재판정이란 바로 법이 정한 약속일 터다. 결혼식장이란 관습이 정한 약속이다. 그런데 그 약속을 어긴다면?

 

"나는 당신을 사랑해!"

 

하지만 바람둥이의 말이다. 어제도 바람을 피고 들어와 그 소리를 한다.

 

양치기소년의 우화다.

 

"늑대다!"

 

하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소년과 양을 구하기 위해 뛰쳐나오도록 하는 약속이었다. 그런게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은 그러한 약속을 무효화시켜버렸다. 신뢰가 없는 말이란 아무 가치가 없는 소음에 불과했다. 그것이 자신을 살릴 수 있는 말이었을 텐데도.

 

그런 경우 얼마나 많은가. 신뢰를 잃은 탓에 정작 필요한 때 믿음을 구하지 못하는 것이. 정작 자신을 위해 필요한 때 그것이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

 

사람이 말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말이 단순히 말이 아니다. 그것은 행위이다. 실제 현실에 작용한다. 허투루 흘린 말이 언제 어떻게 돌아올 지 모른다. 어떻게 다른 사람에 작용할 지 모른다.

 

더불어 정작 필요할 때 말이 효력을 발휘하자면 약속을 깨뜨려서는 안 된다. 말에 대한 전제, 말에 대한 신뢰가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말로 끝날 일이 행동으로 이어진다. 몇 배의 노력을 기울이고도 신뢰를 얻지 못해 쓸모없이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또 그럼에도 상관없는 것은 양해라는 것이다.

 

"성을 간다!"

 

그런다고 굳이 성을 갈라는 사람이 없다.

 

"손에 장을 지진다!"

 

실제 장을 지지거나 하지 않는다.

 

"올해는 반드시 담배를 끊을게."

 

중간에 다시 담배를 피워도 어쩔 수 없겠거니.

 

서로가 아는 것이다. 항상 말을 지킬 수가 없다는 것을. 적당히 양해하고 그런 가운데 여지를 만든다. 관용적인 표현과 관용적인 대응과. 그런 점에서 이번 미션은 오버라 할 수 있을 테지만. 그렇더라도 한 번 쯤 그런 말들에 대해서도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내가 뱉는 한 마디가, 단지 말 한 마디일 뿐이지만, 그러나 말이란 때로 행위임을. 그것이 실제 현실에 작용하는 행위일 수 있음을.

 

남아일언중천금이라는 이유다. 남자가 더욱 말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 남자에게는 많은 책임이 지워졌으니까. 전통사회에서 남자에게는 매우 많은 짐이 지워졌었다. 가족에 대한, 혈연에 대한, 지역사회에 대한, 그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렇게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가족을 지켜야 하는 등으로써 그 말에 신뢰가 없다면 누가 가장인 남자를 따를까? 무리를 지켜야 하는 남자 입장에서 그 말에 무게가 없으면 누가 그를 우러르며 따를 것인가? 그러나 지금도 그것은 마찬가지라. 가장으로서의 권위란 책임이기도 한 것이다.

 

아무튼 주제보다 더 멋졌던 것은 역시나 남자의 자격 일곱 멤버의 쉴 새 없는 입담의 향연. 자신이 붙은 것인지 이윤석의 멘트가 부쩍 좋다. 윤형빈도 적당히 밉지 않은 독설로 애교스런 역할을 해 준다.

 

사실 상당히 독하다. 아예 이정진이 자리 비우니 그를 잘라내겠다는 양, 전혀 쓸모가 없다는 양 뒷담화를 하는 모습이라니. 그럼에도 그것이 음습하지 않은 것은 역시 그들 사이에 끈끈한 정과 담백한 신뢰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친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짓궂은 험담들. 신뢰가 전제되면 욕도 욕이 아니게 된다. 욕이 오힐려 애칭으로 들리기도 한다.

 

굳이 그러려고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멘트들. 그를 통해 드러나는 캐릭터와 이어지는 관계들. 굳이 예능을 위해서가 아닌 마치 실제 어울려 사담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자연스런 일상의 이야기들이 부드럽게 마치 내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김태원의 공주 분장은 충격이었다. 설마... 그래도 뭐라도 쑥쓰러워하거나 거부감이 있을 줄 알았더니 오히려 즐기기까지 한다. 김태원이 예능인으로써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다. 예능 그 자체를 즐긴다는 것. 음습함이 없으니 음악인으로서의 김태원에 대해서도 소모가 적다.

 

어쨌거나 진짜 한참을 웃었다. 도대체 어쩌면 이렇게 수다가 끊이지 않는가. 허튼 말장난이 아니라 일상에서 들을 수 있는 그런 정겨운 짓궂음들이. 예능이 아니라 그저 일곱 형제가 모여 노는 것을 살짝 훔쳐보는 것 같다. 이경규의 순발력은 그야말로 최고이고. 김국진의 리액션은 항상 사람들의 호감을 자아내고, 김성민은 에너지가 넘치다 못해 폭발할 지경이고, 퍼레이드가 끝나고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모습들은 얼마나 남자의 자격다운 모습들인가.

 

조금 산만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뭐랄까 쉬어가는 미션이라는 그런 허술함이나 엉성함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이리 재미있을 수 있는 것은 프로그램과 나와의 사이에 형성된 신뢰 때문이리라. 화면을 통해 보여지는 일곱 남자의 마음이. 즐거운 시가닝었다.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