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멋진 우리의 박칼린 선생님!
내가 남자의 자격을 좋아하는 이유다.
누군가 그러더라.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도전해서 멋진 모습을 보이라!"
하지만 그렇다면 남자의 자격이어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마라톤에 도전해 중간에 포기하기도 하고, 모두가 들어오고 한참이나 지나 비틀거리며 들어오고, 눈밭을 헤매다 끝내 정상에 올라보지도 못하고, 몇 번을 물을 먹으며 끝끝내 웨이크보드에 오르지도 못했다. 그래서 과연 그들의 도전이 의미가 없었는가.
남을 이기기보다 더 힘든 것이 자기를 이기는 것이다.
"그래서 아마 남들보다 잘하는 것보다 그 이상을 바라게 될지도 몰라요."
이기고자 한다면야 딱 상대의 수준에 맞춰 하면 그만이다. 김용의 소설 "녹정기"에서 위소보가 그렇게 무술을 배운다. 상대가 어떤 기술을 쓰면 어떻게 대응하면 되겠다. 그래서 이기면? 단지 이기는 것으로 끝나는 것일까? 반드시 이기고 우승해야 맛일까?
"점수를 준다면 아라비아 숫자가 아닌 아름다움이라 주고 싶습니다."
"지금 이 4분을 위해 1년을 행복했던 거야!"
자기에 충실할 때 만족도 있다. 남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에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에 충실할 수 있을 때.
물론 그렇다고 적당히 타협하며 이만하면 충분하다. 그건 자기도취다. 혼자서 자기 목소리만 듣는 것. 자기란 합창에서 말하듯 주위를 듣고, 주위를 살피고, 그러면서도 오롯한 자기를 찾는 것이다. 본다. 듣는다. 이만하면. 이만큼만 하면. 모델을 찾고 목표를 찾고 그리고 자신을 다그친다. 자신을 완성해간다.
사람은 누구나 타인을 탐한다. 다른 누군가를 탐한다. 그리고 그러면서 자기를 완성해간다. 타인을 통해 자기를 본다. 자기를 통해 타인을 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항상 나. 내가 얼마나 만족하는가. 얼마나 나 자신에 충실했는가. 그것이 순위를 떠나 지난 남자의 자격 밴드가 사람들에 감동을 줄 수 있었던 이유 아니겠는가.
1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한데 모여서 어우러진다는 것. 그러면서 만들어간다는 것. 자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나가는 것. 그리고 그것이 아마추어의 뜻 아닐까? 프로라면 결과가 중요하겠지만 아마추어란 진정한 자기실현, 자기의 가치를 완성해가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망쳐봐야 얼마나 망치겠습니까?"
그런 순수함이. 아마추어만이 갖는 그런 청명함이. 아름다운.
남자의 자격이 다큐멘터리라는 비아냥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높은 시청율을 기록할 수 있는 이유가 그것이다. 한 점 삿됨이 없는 그런 투명함이 어느새 사람들을 끌어들이기에. 마치 나도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이해 못하고 있는 것 같더란 말은 우리가 얼마나 결과에 얽매여 살고 있는가. 이기고 지고, 우승하고 떨어지고, 그렇기에 더욱 남자의 자격만이 갖는 담백함이 빛을 발하는 것일 테지만 말이다.
남자의 자격 제작진이 과연 초심을 잃지 않았다는 게 드러난다. 그리고 지난 합창 오디션편이 결국에 전혀 남자의 자격에 공감하지 못하는 외부인에 의해 편집되었다는 것도.
프로가 중심이 되었다. 배다해, 선우, 박카린, 누구나 감탄할만한 실력을 지닌 다른 출연자들. 진짜 말 그대로 합창을 위한 다큐멘터리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럴 때 사이사이 집어 넣은 KBS직원과 이종격투기선수, 그리고 오디션에 도전했다가 떨어졌던 카메라감독. 아, 이름을 외우지 못하는 것이 나의 한계다. 나중에 확인해 집어넣도록 하겠다.
바로 이런 것이 아마추어다. 열심히 자기 일을 하면서, 자기에 일에 충실하면서, 땀을 흘리고 일에 집중하는 모습과, 그리고 순수하게 합창을 즐기는 모습들. 잘해서가 아니라 즐거워서. 어떤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자체가 너무 즐거워서. 오히려 서툴러서 더 아름다울 수 있는 그런 모습들이.
남자의 자격 멤버들도 그 한 축을 담당한다. 도저히 어쩔 수 없는 두 구멍 이경규와 김국진, 파트를 넘나들며 소프라노를 호시탐탐 노리는 김태원, 그래도 테너라고 으스대며 다른 멤버들을 비웃는 윤형빈, 프로라기에는 부족한 실력들이다. 특히 이경규와 김국진은. 투덜거리면서도 엉뚱한 소리를 내뱉으면서도 서툴지만 합창단에 따라가고자 쉬지 않고 노력을 하는 모습을 보인다. 예능인이기에 어디서 웃겨야 하는가를 알면서도 합창이라는 본질을 잃지 않고 노력도 놓지 않는다. 멋지지 않은가? 이경규 나이가 벌써 쉰이 넘었다.
역시나 기존의 예능멤버이기에 이경규와 김국진, 김태원, 형빈, 이윤석에서 터져나오는 소소한 웃음들과, 그들이 만들어가는 지극히 예능스럽지만 일상적인 장면들. 지루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는 그렇게 예능이 되고 활력이 되고 더욱 가깝게 가슴에 와닿는다. 순수한 물보다는 적당히 다른 것이 섞여야 흡수도 빠르다.
박칼린 선생님의 - 선생님이라는 말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프로페셔널의 모습. 음악이라고 하는 본질을 놓지 않으면서도 예능이라고 하는 상황에 맞출 줄도 안다. 원래 유쾌한 사람이겠지만, 그렇게 스스럼없이 격의 없이 사람과 주위를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여유가 경지에 오른 이의 모습을 보인다고나 할까. 철저하고 엄격하지만 그렇다고 자신만 강요하지도 않는다. 주위를 받아들이고 호응하지만 자기를 놓지도 않는다. 남자의 자격은 정말 훌륭한 리더를 만났다.
예능으로서 가장 훌륭했던 것은 마지막 배다해와 선우의 솔로배틀. 이경규가 제대로 바람을 잡고 박칼린이 확실하게 분위기를 띄웠다. 그저 솔로 하나 뽑는 것일 테지만, 절묘하게 갈등관계를 만들고, 해외 뮤지컬 배우들의 사례를 들어 그것을 심화시키고, 그러나 손잡고 선 배다해와 선우의 사이에는 그런 음습함이 없다. 그리고 다음주에 계속...
"다음주에 꼭 봐야지!"
이윤석의 말처럼. 그렇게 다음을 기대하게 하는 힘이란 것이.
완결되면서 그러나 기대하게 만드는 힘이란 연속극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다. 완결되지 않아서도 안 되고 이어지지 않아서도 안 된다. 시리즈물이란 그렇게 만든다.
끝으로 넬라 판타지아라는 결코 쉽지 않은 도전과제에 합창단 멤버들의 부담을 덜고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용의 또다른 합창곡, 만화영화 메들리. 노래 자체도 상당히 탁월한 선택이었지만, 듣는 내내 떠오른 어떤 추억들이. 이런 것도 남자의 자격이겠지? 언제고 어려서 보았던 어린이프로그램 특집도 해 보았으면.
만화영화주제가를 들으며 그 만화영화들을 보려 골목을 뛰어 집으로 돌아가던 그 시절을 떠올려본다. 감탄하고, 흐뭇함에 웃고, 그리고 옛 기억들도 떠올리고.
다만 배추도사 무도사는 본 적이 없어서. 아마 이경규는 만화영화로 본 작품이 없을 것이고, 김국진과 김태원은 고등학교 시절 코난과 빨간머리 앤, 왕눈이를 보았을까? 워낙 재방이 많아서 이후의 세대라고 보지 못했으리라는 법은 없지만. 하지만 역시 전세대를 아우르는 프로그램이니까. 단지 내가 아쉬울 뿐.
재미있었다. 처음에는 이거 다큐멘터리인가 싶다가 어느샌가 예능이 되고 웃음이 나오고 일상이 보여지고 그리고 다시 수준높은 음악의 세계로. 다큐멘터리와 예능의 경계. 아마도 리얼버라이어티가 추구하는 리얼리티의 한계일 터지만. 그것을 완성한 것은 제작진이 아닌 출연자 자신들. 그들의 스스럼없는 자연스러운 모습이.
사람의 목소리란 이렇게 아름답구나. 사람이 목소리가 만들어내는 어우러짐이란 이렇게 아름답구나. 목소리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어우러지는 것이란 이렇게나 전율스럽도록 아름답구나. 바로 그런 것이 하모니 아니겠는가. 합창이라는 것일 게다. 그런 가슴 찡한 어떤 공감이. 감동이.
역시 오늘도 만족스런 시간을 보내며. 즐거웠다. 나도 그 자리에 있었으면. 질투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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