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내 떠오른 것은 그 생각이었다.
"운동량이 많아야 근육량도 많아지고 근육량이 많아야 데미지도 흡수할 수 있는데 운동량이 절대 부족하니 사고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지난주던가? 후플러스에서 프로복싱의 현주소에 대해 방송하며 한 복싱 관계자가 나와 한 말이었다. 워낙 어렵기만한 현실에 운동에 전념을 하지 못하는 선수들이 그만큼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당연하다. 무술계에서도 그래서 전하는 말이 있다.
"근육이 곧 기술이다."
근육이 곧 파괴력이며, 근육이 곧 맷집이라는 것이다. 헤비급 복싱선수들 보면 목 둘레가 거의 허리둘레다. 그렇게 근육을 만들어두지 않으면 같은 헤비급 복서의 주먹을 견딜 수 없다. 한 방만 제대로 맞아도 도저히 서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복서의 주먹을 경기 내내 맞으면서도 끝까지 버티고 서 있을 수 있는 것도 평소 단련해 두었던 근육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한 방에 보내는 것도 근육이다.
WWE를 쇼라 한다. 엔터테인먼트라고. 하지만 WWE 선수들을 보더라도 근육량이 장난이 아니다. 바로 그 근육이 있기에 그런 과격하고 파괴력있는 기술을 구사하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설사 합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런 위험한 기술에 걸리고도 멀쩡할 수 있는 것이다. 근육이야 말로 링 위에서 선수를 보호하는 최고의 보호구라 할 수 있다. 몸을 만드는 것은 자신은 물론 동료를 지키는 전제인 셈이다.
그런데 보라. 누구 하나 몸이 되어 있는 사람이 없다. 도저히 몸들이 안 되어 있다. 박명수나, 길이나, 노홍철이나, 정준하 역시 마찬가지다. 경기를 앞두고 아마도 근육파열로 병원에 누울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충분히 몸이 만들어진 상태에서 기술을 걸었어도 위험했을 것을 갑작스레 근육에 부하가 걸리니 멀쩡할 리 있다. 물살을 출렁이는 그들의 몸상태로 얼마나 기술이 주는 데미지를 흡수할 수 있으리라 기대할 수 있을까? 그러면 근육이 흡수하지 못한 데미지란 것은 어디로 갈 것이고.
더구나 위험한 장면이라든 것도 거의가 몸이 만들어지지 않아 힘이 부족해서. 혹은 체력이 딸려서. 혹은 유연성의 문제로. 거기서 더 잘 하라고 하지만 기본적인 몸이 만들어져 있지 않은데 어떻게 더 잘 할 수 있을까? 박명수가 도저히 못하겠다 했을 때 이해해 버린 것은 그래서였다. 벌써 마흔이 넘은 나이다. 보아하니 근육도 별로 없다. 그동안의 혹사에 어떻게 버텨보기는 했겠지만 과연 그때에도 그런 과격한 기술을 감당할 몸상태가 되었을까? 그만둔 것은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괜히 몸도 안 좋은데 시도했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정신력. 그리고 부상투혼. 맨시니와의 경기에서 김득구 선수가 쓰러졌을 때 어떤 사람들은 그의 투혼을 칭찬했다. 하지만 그래봐야 남은 가족은 뭐가 되는가? 어머니와 약혼녀와 약혼녀의 뱃속에 있던 유복자는? 한 번의 패배다. 고작 한 번의 패배다. 경기에서 지고서도 사람을 살 수 있다. 하지만 죽고서는? 죽지는 않더라도 그래서 몸 다치고 후유증까지 남으면?
야구선수 가운데서도 괜히 투혼 어쩌고 하다가 평생 다시는 야구를 못 하게 된 경우가 꽤 된다. 축구선수 가운데도 부상에도 무릎쓰고 괜히 경기에 나섰다가 여전히 후유증을 겪거나 뛰어난 재능에도 조기은퇴한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야 남은 게 무언가?
더구나 방송인도 프로다. 무한도전 하나만이 아니다. 노홍철만 해도 라디오에 "영웅호걸"에 맡고 있는 프로그램이 여럿이고, 정형돈은 그보다 더 많다. 길도 마찬가지다. 유재석이야 말할 것도 없다. 박명수는? 체리필터의 무대를 기대하고 있는 팬들에게 무어라 하겠는가? 갈비뼈에 금이 가고, 뇌진탕에, 근육에 이상이 생기고, 온몸에 파스를 붙이고, 몸상태도 정상이 아닌데 링 위에 선다?
솔직한 말로 이래서 프로레슬러들이 무한도전 프로레슬링 특집을 두고 프로레슬링을 우습게 여긴다 말한 것이구나 싶었다. 정상적인 몸으로 링 위에 섰어도 사고가 생기기 쉬운데, 몸도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컨디션도 좋지 않은 채로 링 위에 올라 그런 위험한 기술들을 선보인다? 레슬링이 장난인가? 레슬링이 그렇게 우습게 보였던 것일까? 과연 무한도전 팬들은 그런 목숨을 담보로 한 위험한 레슬링 쇼를 바랬던 것일까?
처음에는 그저 적당한 수준에서 쇼로 하겠거니. 아니면 전문 프로레슬러를 데려다 제대로 트레이닝을 거쳐서 경기를 하겠거니.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니고. 일 년이라지만 정작 몸도 제대로 만들지 않은 채 어설픈 기술만 몇 달 겨우 했을 뿐이고. 그나마도 최근 몇 달 집중해 연습한 것이 고작. 그런 결과가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 파스를 덕지덕지 붙이고, 병원신세까지 지고.
그리고 한 가지 이해가 가지 않은 것이, 그렇게 위험한 레슬링 기술들을 연습하면서 의료진 하나 옆에 붙어있지 않았던 것일까? 마사지사가 아니라 의료진이다. 의사. 혹은 간호사. 한의사. 의료적인 처치를 할 수 있는 사람들. 의료적인 진단을 할 수 있는 사람들. 그나마 걸어서 병원까지 갈 수 있었으니 망정이지 갑작스런 사고라도 생겼으면? 임수혁 선수의 경우란 프로야구에만 해당되는 것인가?
하여튼 내내 조마조마해서 재미란 것을 느끼지 못했다. 내내 불안불안해서 가슴만 조이고 있었다. 안다. 그렇게 큰 사고는 없었다. 하지만 저러다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닌가. 그렇게 위험하고, 그렇게 출연자들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가. 그저 근성만으로 칭찬받던 시대는 이미 80년대와 함께 끝났다.
이렇게나 방송이란 무모한가. 그렇게나 많은 이들을 보내 놓고서도 방송이란 여전히 이렇게 무모하다. 사고가 생기지 않아 정말 다행이지만 그래도 이런 무모한 시도를 하는 것이란. 프로레슬링이라는 종목의 위험함에 비해서 이건 너무 허술하고 준비가 없지 않은가.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그저 걱정만. 걱정만.
그나마 무사히 경기까지 마친 무한도전 출연자들에 경의를 보낸다. 그리 겁나고 위험함에도 끝끝내 링 위에서 최선을 다했던 유재석, 정형돈, 정준하 이하 하하, 노홍철, 박명수, 길 모두에게도. 그러나 제작진에게는 어떤 칭찬의 말도 못하겠다. 이건 미친 짓이었다. 진정. 욕 안 나오는 것만도 다행으로 여기라.
버라이어티라는 게 즐겁자는 것일 텐데. 리얼버라이어티란 즐겁게 즐겨보자는 것일 텐데. 내내 불편했던. 그래서 불쾌했던. 웃기기보다 걱정부터 하고, 즐겁기보다 안타깝고 안쓰럽기만 하고. 이런 건 하지 않는 게 좋겠다. 남자의 자격은 절대. 또 볼 게 못 된다. 그나마 다음주는 그래도 경기니까.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었으면.
정말이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아마 수명이 2년은 줄었을 것이다. 예능으로서 최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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