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작년 남자의 자격 마라톤편에서도 한 번 했던 이야기다. 어이가 없었다. 병원에서 퇴원한지도 얼마 안 된 사람더러 마라톤을 완주하라? 완주로 감동을 자아냈던 이윤석마저 원래는 더 이상 달리지 못하도록 말렸어야 했다. 도대체 뭐하자는 것인가?
물론 최선을 다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누구를 위한 최선인가? 남자의 자격 마라톤편에서도 한 아마추어 마라토너가 무릎연골 부상으로 힘들어하는 이정진에게 말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를 위해 달리는 거야. 그런데 다치면 무슨 소용이 있어?"
말 그대로다. 보기에는 좋다. 감동적이다. 저렇게 힘든데도 마침내 마라톤 완주라니. 하지만 과연 이윤석이 하프마라톤이나마 완주할 수 있는 몸상태였는가? 마라톤을 완주하는 내내 보여주었던 이윤석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들이 감동이라는 한 마디로 마무리지어질 수 있는 것인가?
아니나 다를까. 생각이 다를 뿐이겠거니. 입장이 다를 뿐이겠거니. 그러나 내내 불편함을 감출 수 없는 것은 그런 것을 어느새 당연하게 여기는 대중들이다. 두려워하고 겁내고 그리고 사리고. 당연한 것이다. 성치 못한 몸으로 마라톤 완주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김태원처럼 그리 위험한 프로레슬링을 준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끝까지 도전한다는 것은. 프로레슬링이 그렇게 만만한 운동이었던가.
솔직한 말로 이건 프로레슬링에 대한 우롱이라 해도 할 말 없는 상황이었다. 얼마나 프로레슬링을 우습게 보았으면. 전문 프로레슬러도 몇 년을 오로지 이 한 가지로만 연습하고 훈련해서 링에 서는데, 1년이라지만 그동안 무한도전만도 독자적인 미션이 여럿에, 각자의 스케줄로 연습할 시간조차 없이 몸도 제대로 만들지 않고 링에 서고. 더구나 부상까지 입었다. 그렇게 작지 않은 부상까지 입은 몸으로 레슬링이라는 게 가당키나 한가?
묻고 싶은 것이다. 누구를 위한 투혼인가? 누구를 위한 부상투혼인가? 누구를 위한 감동인가? 물론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있다. 자기가 그러고자 해서 하는 것도 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주위에서 만일을 위해 그것을 말려주는 것이 기본적인 상식일 것이다. 내 형제다. 내 가족이다. 그런데 그렇게 부상까지 당한 몸으로 그 위험한 프로레슬링의 링 위에 서는데 그냥 지켜만 보고 있으려는가? 감동이라고?
결국 또다른 이기인 것이다. 링 위에 오른 출연자야 그것이 자기의 존재와 관계된 것이니까. 최선을 다해 왔고 이대로 포기하기 싫을 것이다. 보는 사람이야 어떻든. 주위에서 걱정하든 뭐하든 내가 하던 일이니까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 좋다. 인간에게는 자기파괴의 권리도 있으니까. 그래서 다치고 어쩌고 결국에 자기가 감당할 몫이니 누가 뭐라 할까?
하지만 왜 그것을 강요하는가 말이다. 박명수에게 강요하고, 길에게 강요하고, 노홍철에 강요하고. 길과 노홍철은 정말 아니었다. 아무리 봐도 그들은 프로레슬링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몸도 몸이지만 정신도 그랬다. 박명수야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다 사고라도 나면? 자기가 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은 상관이 없지만 그런데 정작 자기가 하는 일도 아니면서 그러다 사고라도 나면 누가 책임지는가?
작년 남자의 자격에서도 성치도 않은 몸으로 김태원이 마라톤을 완주했다. 완주나 가능했을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라? 차라리 완주하다 쓰러져 앰뷸런스에 실려가라. 실제 나왔던 소리들이다. 그 책임은 누가 지는가? 그 결과에 대해서는 누가 감당하겠는가?
가만 보면 감동이라는 이유로 다른 이의 희생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아닌가. 자기가 바라는 어떤 감동이라는 판타지를 위해 다른 이의 고통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마는 것은 아닌가. 내 일이 아니니까. 정작 내가 당하는 고통이 아니니까. 내가 바라는 어떤 모습들을 위해 너희가 희생하라. 단지 출연자들의 고통을, 그 위험함을 감동이라는 말로 치장하고 마는 것은 그러한 보다 솔직한, 출연자를 어떤 도구로써 소모품으로 여기고자 하는 심리가 있지 않겠는가.
그러다 사고라도 나 보라.
"어째? 어째?"
"그러길래 조심했어야지!"
"안전에 대한 대비도 없이 너무 무책임하다!"
"안전불감증이다!"
하지만 왜 그동안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예능을 위해 다치고 심지어 죽어갔는가? 그런 것을 요구하는 대중이 있으니. 마치 콜롯세움에서 목숨을 담보로 겨루는 검투사를 구경하던 로마 시민들처럼 그런 아슬아슬함을 감동이라 포장하여 즐기는 대중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김태호 PD의 글을 보더라도 얼마나 자아도취에 빠져 있었는가. 그러다 진짜 한 번 제대로 삐끗해서 사고라도 났다면.
결국은 화면 너머란 별세계라는 것이다. 화면 너머의 연예인이란 나와 상관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이란. 그들 앞에 놓인 위험이란. 전혀 남의 일이라. 그래서 마음 놓고 그저 감동이겠거니. 그래서 도저히 되지도 않는 일을 태연히 아무렇지도 않게 비난하고. 손스타로 하여금 못 하겠다는 박명수를 그리 다그치도록 만든 것은 누구인가. 굳이 무리해서 위험한 기술을 쓰도록 하는 것은. 손스타의 과욕도 불편했지만 그러나 그를 그렇게 내몬 것은, 제작진을 그렇게 만든 것은 결국 그들 대중이 아닌가.
과연 방송의 안전불감증을 방송국만 탓할 것인가. 이렇게 부상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프로레슬링을 하고 있으니 한국프로레슬링 연맹의 비판은 틀렸다. 한국프로레슬링연맹의 비판은 그런 식으로 프로레슬링의 기술을 쓰다가는 다친다. 위험하다. 제대로 준비를 갖추고 배우고 훈련해 하는 것이다. 하지만...
물론 나 혼자만의 생각일 수는 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보면 나는 주류와는 약간 비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번도 마찬가지겠지. 감동적이라는 다수에, 그 감동이 위선아리고 하는 극히 소수인 하나에. 하지만 무한도전보다 더 불편했던 것이 감동이라며 찬사 일변도인 대중들. 과연 누가 연예인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가. 누가 연예인들로 하여금 그런 위험과 고통으로 내몰려 하고 있는가.
보는 내내 그들이 겪는 고통이 불편했고, 그러면서도 링 위에 오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고, 그렇게 내모는 제작진이 미웠고, 그리고 방송되고 나서는 단지 감동이라는 말로 그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을 말하는 대중의 무심함이 섬뜩하도록 무서웠고. 내가 이상한 탓이리라. 아마도. 그렇게 생각하련다.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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