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일반

영웅호걸 - 대본이라도 좋다, 재미만 있어라!

까칠부 2010. 8. 30. 07:44

대본인 것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장면이 홍수아 치질. 뭐랄까... 그다지 재미도 없는데 굳이 애써서 홍수아의 치질을 강조하는 분위기랄까? 고기를 훔친 것을 몰랐다면 과연 치질 이야기가 예능으로써 재미가 있었겠는가. 더구나 그것은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관계된 것인데. 하물며 여자연예인이.

 

아마 불가에서 신봉선이 홍수아더러 엉덩이를 숯불쪽으로 향하게 하는 장면이 아니었으면 그냥 그러려니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지나쳤다. 차 안에서야 어차피 편집이라는 게 있으니 진심으로 그랬다 치더라도 상황이 그 상황이 아니다. 웃기지도 않고 아주 애매한. 그러나 고기를 훔친 것을 알았다면 아닌.

 

김치찌개에 소금을 넣는 지연의 연기도 어설펐다. 밥이야 나도 예전에 그렇게 지었었으니까. 물 적게 넣어 꼬들꼬들하게만 지으면 좋은 것인 줄 알고. 하지만 밥의 맛이란 물과 만났을 때 극대화되는 것이다. 처음 밥을 지을 때는 그런 걸 모르지. 하지만 소금을 부어 넣는 장면은 확실히 어색하고 작위적이었다. 지연의 표정부터가 실수로 소금을 넣은 표정이 아니었다.

 

그렇더라도 어떤가. 고기 훔치고, 엉덩이에 훔치고, 그것이 축구를 하다가 축구공에 맞고 - 그 부분도 얼마간의 의심이 있다. - 그래서 굳이 홍수아가 엉덩이를 불편해 하고, 그것을 다시 치질이라 오해하고, 그로부터 이어지는 이야기들. 나는 그런 걸 좋아한다. 대본이야 아니냐가 아니라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 연기더라도 그것이 자연스럽기만 하다면.

 

밥을 지으면서 사소한 일에 좋아하고 신기해하며 기뻐하는 아이유와 지연의 모습이란 얼마나 귀여운가. 그 또래가 또 그렇기도 한 터라. 처음 하는 밥이기에. 그것도 동갑내기 아닌가. 나이가 더 많거나 더 어리면 허세라도 부릴 테지만 동갑이기에 더 솔직해질 수 있다는 것이. 그러고서 뿌듯해 하는 모습이.

 

전체적으로 오늘도 재미있었다. 박가희와 서인영의 출연자 내에서의 인기대결이라는 컨셉 자체도 박가희와 서인영의 캐릭터, 관계와 어우러져 흥미를 자아냈고, 아이유와 지연의 선택에서는 드라마틱한 긴장마저 느끼고 있었다. 아이유와 지연 모두 서인영과 인연이 있다는 설정에서, 그러나 결국 둘 다 박가희 쪽으로 가버리는 것까지. 아무리 지연이 생각이 없다고 - 좀 천연스러운 성격인 것 같기는 하지만 - 과연 서인영 앞에서 대놓고 배신하고 다른 팀으로 가겠다 할 수 있을까? 이휘재가 느닷없이 조카를 데리고 나온 것도. 하지만 결국 이 둘이 박가희의 팀에서 사건을 일으키고 마니까. 적당한 사건의 기점, 이야기의 발단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바로 이어진 반전. 지연마저 떠나버리고 홍수아와 유인나, 니콜, 노홍철까지 다섯명만 남은 서인영팀이 오히려 기차로 가면서 더 편하게 가고, 머릿수가 9명이나 되어 교통수단을 선택할 수 있었던 박가희 팀은 이휘재의 실수로 더 오랜 시간을 더 불편하게 가고.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멤버가 많은 만큼 그 안에서 일어나는 분란과 갈등, 음모의 드라마들. 출발은 박가희 팀이 좋았지만 전개는 서인영 팀이 좋았다.

 

그러나 말했듯 과연 이것이 모두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전개인가? 스물스물 풍겨나는 대본의 냄새에, 그럼에도 출연진의 매력이 드러나는 장면장면에. 귀여움 그 자체인 듯한 아이유와 엉뚱한 먹보 캐릭터가 되어 버린 지연, 이휘재를 속이려다 자신까지 속아넘어간 나르샤, 노사연과 홍수아의 말 그대로 짜여진 듯한 갈등관계에, 그러나 재미있지 않았는가. 대본이라 의심하면서도 출연자 하나하나가 매력적이고 이야기가 재미있으니까. 예능이 그러면 재미있는 것 말고 그 이상의 가치가 있겠는가.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가 있고, 배역이 있고, 그로 인한 갈등이 있고. 최고의 수훈갑은 이휘재. 확실히 이휘재는 이런 스타일의 예능에서 탁월한 감을 자랑한다. 디테일하며 스스럼없다. 잘 어울리면서도 곧잘 당해준다. 뺀질뺀질해 보여도 어쩐지 당해주는 모습이 더 잘 어울리는 그런 MC. 같은 눈높이에서 어울리는 노홍철의 공격적인 활력과는 다른 초식동물적인 안정감을 보여준다. 역시 노홍철이 소수파인 서인영팀을, 이휘재가 다수팀인 박가희팀을 맡은 이유가 있다. 노홍철은 이휘재같이 다수의 사람들이 앞에 있을 때 아직은 안정감이 떨어진다. 확실히 사건을 만들지 않는가. 자기 캐릭터로써. 자연스럽게.

 

다만 아직 아쉽다면 캐릭터가 잡히지 않은 멤버들이 있다는 것인데, 이진은 박가희가 조금 더 캐릭터를 굳히고 나면 박가희와 함께 관계를 만들어가면 되겠다. 이진은 나르샤와 박가희와 함께다. 나르샤는 청춘불패에서의 이미지소모가 있기에 더 치고 나오기가 곤란하고. 그래도 리얼버라이어티인데 청춘불패에서와 영웅호걸에서의 캐릭터에 괴리가 생기면 몰입하기가 힘들어진다. 그렇다고 같으면 빨리 소모되어 버리고. 역시 나르샤가 기댈 것도 박가희, 혹은 다른 멤버들과의 관계.

 

그 밖에 니콜의 경우는 몸으로 때우는 일이 많을 것 같은 영웅호걸의 특성상 굳이 말을 많이 하지 않고서도 할 일이 많을 것 같고, 정가은은 남을 공격하는 것보다 공격받은 쪽이 더 어울리는 캐릭터다. 어제는 이휘재가 그 역할을 맡는 바람에 캐릭터를 잃어버렸다. 약간의 대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조금 어정쩡한 것이 있다. 그렇더라도 일단 기본적으로 당해주는 역할로써 그 비중은 높다.

 

결국은 조금 더 프로그램이 자리를 잡고 나서라는 말인데. 이런 종류의 프로그램은 캐릭터와 관계가 안정되기까지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 여러가지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출연자 개인의 개성과 매력을 알리고, 사건등을 통해 서로의 관계를 구축하고. 지금 당장만 가지고 이야기하기에는 이르지 않을까.

 

아무튼 영웅호걸의 강점이라면 역시 사건의 기점이 되는 출연자가 많다는 것일 게다. 일을 꾸미는 모사형의 노홍철, 신봉선과, 당해주는 역할의 이휘재, 정가은. 굳이 악의를 가지고 있지 않아도 가진 바 캐릭터로 없는 악의까지 그대로 흡수해 버린다. 더불어 악의를 가지고 장난을 쳐도 악의가 느껴지지 않을 가장 어린 막내 아이유와 지연까지. 아직 관계가 분명하지 않아 사건의 기점이나 전개가 단순하지만 앞으로 더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를 갖게 된다.

 

재미있었고. 매력있었고. 그리고 덧붙여 제작진에 당부하고 싶은 말. 웃음으로써 사람들이 보게 할 것인가. 아니면 매력으로써 사람들을 유혹할 것인가. 굳이 남자 연기자가 아닌 여자 연예인이 출연하는 예능을 선택하는 이유를 생각해 볼 일이다. 웃음을 주기 위한 예능인보다 미모의 여자연예인이 대거 캐스팅된 것도. 아무리 상대가 1박 2일이어도 조급하거나 주눅들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대본이면 또 어떤가? 재미만 있자. 아예 대놓고 대본을 쓰더라도 출연자 개인의 매력을 드러낼 수만 있으면. 그녀들을 좋아할 수만 있으면. 그것이 바로 디테일이라는 것일 테지만. SBS치고는 썩 괜찮은. 특히 어제는 많은 부분에서 그런 생각을 굳힐 수 있는 회차였다.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