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착각한다. 리얼이니 리얼리티가 있다. 리얼리티가 있으니 리얼이다.
사기꾼들이 곧잘 노리는 부분이다. 사이비종교, 혹은 정치가들, 미디어가 노리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람은 전체를 가지고 판단하지 않는다. 아주 일부의 특징만으로 전체를 그려낸다. 사실상 내가 보고 있는 자체가 내가 내린 어떤 판단에 기초해 재구성된 형태라는 것이다. 이미지라는 것이다.
바로 그런 부분을 노려 소설도 쓰는 것이다. 영화도 만든다. 사실이 아닌 허구를 마치 실재하는 사실처럼.
사기꾼도 그렇기 심리의 허점을 노린다. 사람을 속이려 들 때 - 심지어 자신마저 그러한 자신의 맹점이 만들어낸 허구에 속아넘어가기 일쑤다.
그럼에도 역시 사람들은 생각한다.
"이렇게 리얼리티가 있는데 설마 이것이 리얼이 아닐리는 없지 않겠는가."
이를테면 자기에 대한 과신일 것이다. 나는 틀릴 리 없다. 내가 잘못 생각할 리 없다. 그러한 맹신이야 말로 더욱 먹이로 삼고자 하는 이들이 노리는 바일 테지만.
내가 보기에 리얼리티가 있으니 타당성이 있다. 도저히 책장을 넘기기도 힘든 히틀러의 "나의 투쟁"과 같은 책도 한때는 많은 사람들이 바이블로 여기던 때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 말도 안되는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유럽에서 좌파 지식인들이 공부하던 때도 있었다.
때론 논리란 직관의 시녀라고도 하고, 이성이란 감정의 노예라 하기도 하고. 그래서 항상 가장 중요한 것이 자기 자신부터 의심하는 것일 테지만.
가장 멍청한 인간이란 항상 가장 똑똑한 인간임을. 가장 사악한 인간이란 가장 정의로운 인간임을.
인터넷에 왜 그리 낚시가 성행하고, 사람들은 낚이면서도 낚이는 줄 모르는가. 사이비종교에 빠진 사람은 패가망신하고 목숨이 끊기는 그 순간에도 오히려 그를 살리려 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저주한다. 다단계에 빠진 사람 구해내려면 일단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는 것은 각오해야 한다. 그런 것들.
안타깝다기에는 워낙 많이 보아 왔기에. 화도 나지 않는다. 짜증만 날 뿐. 차라리 보이지나 않으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뭔 짓을 하든 내가 상관할 바가 무에 있던가.
같잖고. 어이없고. 한심하고. 그러면서 괜히 엉겨붙을까 귀찮기도 하고. 이래저래 민폐.
아침부터 그래서 짜증이다. 참 사람 상대하는 것만큼 피곤한 일도 없다. 복장터진다.
'문화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타블로와 비전문가의 시대... (0) | 2010.08.30 |
---|---|
타진요가 말하는 논리와 타당성... (0) | 2010.08.30 |
일부일 뿐이다, 전부가 아니다! - 어떤 비열함에 대해... (0) | 2010.08.27 |
타블로와 어떤 합리... (0) | 2010.08.27 |
타블로 사태로 보는 어떤 유아적 에고... (0) | 2010.08.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