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몇 년 전이다. 3년이나 됐나? 한창 디워로 뜨거울 때 하여튼 영화나 문화 좀 보고 비판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거의 맹폭을 당했었다. 이유인 즉,
"대중이 재미있게 보는데 늬들이 뭐라고 떠드냐?"
솔직히 나 역시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 많지만 그래도 전문적인 음악비평이라고 뜨고 할 때도 마찬가지다.
"듣는 사람이 좋다는데 참 오지랖도 넓다."
물론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돌이나 아티스트에 대한 좋은 평이 실리면 입장은 달라진다. 얼마나 논리적으로 구체적으로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비평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자신의 기호에 충실했는가.
요즘 한창 방영중인 슈퍼스타K 역시 마찬가지다. 하도 말이 많아서 직접 봤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오만하고 독설인가? 하지만 적절하던데? 매우 전문적이었다. 적확했고. 그래도 프로인데 그런 말도 못하나? 하지만 역시나 보고 판단하는 것은 나일 테니까. 내가 보고 내가 판단한다.
문득 타블로에 대해 써놓은 것을 보다 깨달았다. 전부터 지인과 나누던 이야기다.
"지금은 전문가가 필요 없는 시대다."
미네르바 사건 때도 그랬다. 미네르바가 무슨 경제전문가인가? 미네르바가 떠들어댄 내용들도 전문가들이 한 번 거쳐간 것들이다. 인터넷을 통해 자료를 모았다는 미네르바는 과연 무엇에 의지해 그런 예측을 하고 적중시킬 수 있었던 것일까? 하지만 미네르바에 대한 맹신은 결국 개인적 피해로 이어지고 마는 경우마저 있었다.
뭐냐면 너무 쉽게 정보를 얻는다는 것이다. 너무 쉽게 정보를 얻고 너무 쉽게 정보를 생산한다. 전문가라면 정보를 얻기도 그것으로 새로운 정보를 생산하기도 너무 힘들다. 여러 해를 반복해서 학습하고 연구하고 훈련해야 하고, 한 가지 새로운 주장을 하기에도 이것저것 걸리는 것이 너무 많아 어려움이 있다. 반면 대중이란 그들을 통해 너무나 쉽게 그들이 생산해낸 지식과 정보를 얻고 그것을 자기것으로 여기게 된다.
바로 거기에서 착각이 일어난다. 나도 이제는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갖추게 되었다. 나도 전문가 수준의 정보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더구나 주위에서 그것을 부추기고 인정해 주니. 워낙에 인터넷이란 개인의 거리를 0에 가깝게 만들기에 너무나 가까워져버린 거리는 객관적이고 냉정한 판단 자체를 흐리게 된다. 지식을 얻기도 쉽고, 정보를 생산하기도 쉽고, 그것을 받아들이기도 너무 쉽고. 그렇게 받아들인 사람들에 의해 더구나 그것은 권위로써 정당성마저 갖게 된다. 타당성마저도.
타블로가 바로 그런 대표적인 경우였다. 그런 자신감이 때로 전문가에 의지하지 않고도 스스로 지식을 만들고 정보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는. 설사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최소한 직접적인 당사자에 의해 생산되었어야 할 정보가 전혀 국외자에 의해 생산되고 받아들여질 수 있다. 믿어질 수 있다.
우연히 생각이 미치고 말았다. 확실히 정작 타블로의 학력에 의혹을 갖는 스탠포드 출신은 드물다. 타블로에 적대적이던 한 스탠포드 출신 역시 타블로의 성적증명서를 보고 자기도 성적증명서를 떼어 보고서는 최소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문제 없다 인증하고 있기도 했었다.
사실 그렇다. 성적표 위조 의혹이네 뭐네 하기 전에 스탠포드 출신이 있어 성적표를 바로 다운로드받아 확인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끝나지 않겠는가. 졸업장 역시 스탠포드 출신 가운데 같은 해 졸업한 학생이 있어 졸업장을 비교해 볼 수 있었다면. 아니면 최소한 그에 정통한 전문가던가. 하지만 하는 말이란,
"내가 아는 상식으로..."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보통 그렇지 않나?"
스탠포드와는 전혀 상관없는 국외자의 편협한 경험에 기초한 판단 뿐. 스탠포드 언저리도 가 보지 못한 사람들이 스탠포드에 대해 자기가 갖는 협소한 상식을 바탕으로 단정짓고는 그 위에 분석이라는 허구의 탑을 쌓아 올린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따로 스탠포드에 대해 제대로 전문적으로 연구하거나 조사한 것도 아닌 그저 자신이 생각하기에 그렇겠거니. 그러고서도 스탠포드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래서 어느 대학교수도 괜한 소란에 말려들어 자기 유학경험을 바탕으로 타블로를 비난했다가 바로 사과하고 있기도 했다. 스스로 말했다. 스탠포드의 방식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너무나 당연한 것을.
어떻게 3년 반만에 석사학위까지 딸 수 있는가? 논문도 없이 석사학위를 받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뉴욕대 학점은 무엇인가? 수강했다는 과목이 수상하다. 성적표의 씰의 모양이 이상하다. 그래서 묻는 것이다. 그렇게 스탠포드에 대해 잘 아는가? 스탠포드의 이름으로 나온 성적표에 대해 위조라 단정지을 수 있을 만큼?
그래서 또 더 어이가 없는 것이 그래도 스탠포드에서 학적관리를 책임지는 토머스 블랙이라고 하는 스탠포드 담당자조차 전산관리자네 뭐네 하며 폄하하는 오만이다. 토머스 블랙이 어찌 타블로가 스탠포드 재학생인 것을 알겠는가. 그러면 스탠포드 언저리도 가 보지 못한 그들은 어찌 그리 잘 알아 확신하는가? 심지어 토비어스 울프마저도 시간강사라던가? 뭐라던가?
그럼에도 통한다. 왜? 말했잖은가? 전문가 부재의 시대라고. 비전문가의 시대라고. 누구나 정보를 얻고, 누구나 정보를 생산하고, 모두가 그 정보를 접할 수 있다. 전문적이지 않더라도 정보는 생산될 수 있고, 그것이 대중에 수용될 수 있다. 전문가란 그저 잘난 체 하기 좋아하는 이상한 사람들일 뿐. 대중의 기호를 충족시켜주는 사람들이야 말로 진정한 전문가다. 바로 그들이 바라는. 심지어 스탠포드에 대해서마저도. 스탠포드와 상관 없는 사람들에 의해. 그에 대해 자세히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도.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서울 사는 사람하고 강원도 두메산골 사는 사람하고 숭례문 가지고 싸우면 두메산골 사는 사람이 이긴다던가? 스탠포드에서 실제 근무하고 있는 당사자보다 전혀 상관없는 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더 설득력 있고 가치가 있다. 오히려 그들이 더 권위자 같다. 그렇게 받아들여진다.
말했을 것이다. 내가 타블로에 관심을 갖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 타블로 사태에는 우리 사회의 수많은 모순과 병폐들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사회의 썩은 치부들이 타블로와 관련해서 제대로 곪아 터져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 역시 마찬가지. 스탠포드 가보지 못한 사람이 스탠포드에 대해 더 잘 안다. 너무나 당연한 이 시대의 어떤 관념에 대해서다.
그리 문제삼는 국적법에 대해서도, 정작 법무부장관이 문제없다 밝히고 있는데도 여전히 수상하다. 의심이 간다. 심지어는 성류층의 국적세탁 때문에 은폐하려 드는 것이다. 기껏해야 벌금형 정도에 불과한 것을 가지고 병역기피니 국적세탁이니, 어째 이것도 법무부 관계자보다 더 많이 정확히 알고 있는 것 같으니.
항상 보면 그렇다. 타블로 의혹에 대해 타블로를 옹호하는 쪽은 대개 전문적이거나 당사자들이었다. 그러나 정작 스탠포드 동문이 나서서 타블로 스탠포드 다닌 게 맞다 그래도 지인이니까. 주변인이니까. 심지어 그의 학력조차 믿지 못하겠으니까. 그러나 그를 의심하는 네티즌은 철석같이 믿고.
타진요만이 아니다. 타진요와는 상관없다 여겨지는 사람들마저도 그들이 만들어낸 정보를 철석같이 믿고 오히려 토머스 블랙이나 토비어스 울프를 의심한다. 스탠포드를 의심하고, 스탠포드 동문들을 의심한다. 언론도 의심한다. 오로지 의심받지 않는 것은 네티즌. 그것이 사태를 지금까지 키워 오지 않았겠는가.
물론 이해할 부분이 아주 없지는 않다. 얼마전 신문기사 그대로 긁어다 붙여 글을 하나 썼더니만, 영어 알파벳이 틀려 있더라. 이런 놈들이 기자다. 위장전입에 탈세에 온갖 불법과 탈법을 저지르는 인간들이 고위공직자라고. 학자라는 인간들은 논문표절에 중복기재에. 믿음이 가지는 않겠지. 그러나 과연 그렇다고 그들 자신은 믿을 수 있는가? 바로 그런 근본에 대한 것이다. 전문가는 믿을 수 없으면서 비전문가인 자신은, 혹은 우리 자신은 그렇게 전적으로 믿을 수 있는가?
차라리 권위를 믿을 수 없거든 권위 그 자체를 깨부숴 버리던가. 권위따위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리던가. 그러면서도 스스로 권위가 되고자 하는 모순이. 권위를 부정함으로써 권위로부터 벗어나 독자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것은 좋은데 그것이 다시 권위가 된다. 그나마 전자의 권위는 근거라도 있지. 근거도 없이 주관적인 믿음으로 만들어진 권위다. 그것을 추종하는 것도 단지 주관적인 감정이기 쉽고.
그래서 내가 항상 하는 말이다. 인터넷따위 믿지 마라. 내가 하는 말도 믿지 마라. 조금은 권위에 기대어도 좋지 않을까. 권위에 기대어 그들이 하는 말을 귀기울여보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주관적인 믿음을 쫓지 말고 그나마 사회적으로 인정된 권위의 힘을 조금 빌려 보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그쪽이 휩쓸리기보다 보다 오롯이 세상을 보고 듣고 판단하기에 도움이 될 테니.
하여튼 스탠포드 직접 다녔던 사람보다 스탠포드 가보지도 못한 사람이 스탠포드에 대해 더 잘 안다더라. 스탠포드에 다녔던 사람보다 스탠포드에 다녀본 적도 없는 사람이 말하는 상식이 더 정확하고 합리적이더라. 슬픈 이야기지만 그러나 슬퍼할 수만은 없는 것은. 참 서글픈 현실이라 할 것이다. 한심한 것이다.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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