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보았던 가장 재미있었던 장면이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오던 김성민과 이정진이 문득 가게 유리에 붙어 있는 유이 포스터를 본다.
"유이다, 유이!"
"달라고 하면 안되나?"
심지어 김성민은 아예 포스터를 떼려 꼼지락 거리고,
그러자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가져가세요."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두 남자, 고이 유이 포스터를 접어 옆에 끼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너랑 나랑 하루씩 번갈아 보는 거야?"
"형 드릴게요!"
"진짜지?"
그리고 장보기의 하이라이트 - 군것질을 맛있게 하던 두 남자, 이정진이 어딘가 전화를 한다.
"유이 갈테니까 방 치워놔!"
집에 남아 있던 윤형빈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유이라는 말이 강의가 있다던 이윤석마저 학교로 가는 것을 미루고 집에서 기다리는데,
"유이다! 유이!"
그러나 잔뜩 기대를 하고 기다리던 윤형빈과 이윤석에게 내밀어진 것은 예의 유이 포스터.
"난 산 사람을 원해!"
잔뜩 실망한 이윤석의 절규 속에 가장 좋은 자리를 찾아 유이의 포스터는 걸리고,
"어딜 만져요, 유이!"
포스터를 붙이는 이정진 옆에 어느새 윤형빈이 따라와 포스터 속의 유이를 보고 있다.
보고 있던 이윤석의 한 마디,
"경규형이 보고 있었다면 '허접한 것들!' 했겠다."
마치 어느 시트콤의 한 장면 같지 않은가? 차라리 대본대로 연기를 했다 해도 좋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장면과 장면이 이어진다.
연예인 같지가 않다. 버라이어티 출연자 같지도 않다. 그냥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청년들, 아저씨들. 마치 형제처럼 아웅다웅하면서도 인기 여자아이돌에 열광하는 일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치 한 편의 말 그대로 잘 짜여진 시트콤처럼.
비슷한 장면은 전에도 있었다. 김국진과 이경규가 집안일 할 때 가전제품을 다루는게 얼마나 무서운가를 이야기하는데 윤형빈이 말한다.
"그러니 아내분들이 얼마나 훌륭해요. 그런 것을 더 무서울 텐데도 가족을 위해 열심히 해주니."
이경규가 갈군다.
"너 왜 여성시청자들 듣기 좋은 소리 하는데?"
이윤석이 거든다.
"개그콘서트에서 나빠진 이미지 왜 여기서 관리하려는 거냐?"
윤형빈이 대답한다.
"그렇지 않아도 여기서 이미지가 좋다고..."
그러나 이정진의 한 마디,
"이미지가 좋다고? 너와 내가 여기 있는 거 아무도 몰라!"
마치 자연스럽게 물이 흐르는 것처럼,
그렇다. 최근 남자의 자격을 보면 마치 이야기들이 물처럼 흘러가는 것 같다. 어디 머물지도 않고, 어디 갇히지도 않고, 끊이거나 멈추는 일 없이 굽이굽이 먼 바다로 흘러가는 강물처럼.
처음은 샘이다. 그러나 그 작은 시작에 여기저기서 한 마디씩 더하면서 방향이 정해지고, 흐름이 정해지고, 때로 격하게 흐르다가, 또 때로는 잔잔해지다가, 마침내 한 방에 팡!
그렇다고 그게 그렇게 재미있느냐? 사실 하나하나 떼어놓고 보면 그렇게 재미있을 것도 없다. 또 하나 어제 재미있었던 장면이 그것이다.
YB와 OB로 팀이 나뉘고, OB는 OB대로 삼선볶음밥과 자장면을 시켜먹고는 그대로 한껏 늘어져 뒹굴고 있다. 말 그대로 뒹구는 거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뒹굴거리며 텔레비전을 보거나 자거나...
그런데 그 장면이 어찌나 웃기던지. 다른 것 없었다. 다른 말도 없었고 행동도 없었다. 재미있을 것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앞서 보여준 이미지들이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며, 차라리 준 돈으로 소주 먹고 자버리자며 다 귀찮아 하는 허접한 남자들이 있었다. 전혀 집안일이라고는 해 본 적 없을 것 같은, 집안일을 할 어떠한 의지도 보이지 않는 그냥 그런 보통의 남자들이다. 바로 그 모습 그대로.
바로 이런 것이 남자의 자격의 강점이라 하겠다. 개그콘서트처럼 출연자 개개인의 개인기나 능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흐름 안에서 서로의 개성이 더해지고 더해지면서 시너지효과를 일으켜 웃기는. 웃음을 강요하기보다는 어느새 표면으로 끌어올려진 공감으로 인해 자연스레 웃음을 머금고 마는.
거기에는 바로 그동안 쌓여 온 출연자 사이의 끈끈한 관계가 있다. 아버지 이경규, 어머니 김태원, 큰형 김국진, 작은 형 이윤석, 그리고 두 배우 밑에 막내 윤형빈...
더 이상 계산할 것도 없고 짜맞출 것도 없다. 그냥 일상에서 하듯 보여주면 된다. 이경규는 버럭거리고, 김태원은 뒤로 빠지고, 김국진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이윤석은 수줍어 하고, 김성민은 오버하고, 이정진은 아예 손을 놓아 버리고, 윤형빈은 악착같이 자기 분량을 찾으려 하고...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캐릭터에서 벗어난들 그건 또 어떤가? 윤형빈과 자기는 여기 출연하는 줄도 모른다는 이정진의 자폭성 개그는 그래서 파괴력이 있었다.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소심하게 이경규에게 반항하는 이윤석의 모습이나, 진공청소기 코드가 자동으로 감기는 모습을 김태원에게 보여주고 자랑하려는 귀여운 아저씨 이경규나, 의외의 가사능력을 보여주는 김태원 등...
또 한 번 빵 터졌던 장면,
예전 웨이크보다를 타면서 김태원이 김성민을 두고 그리 말한 적 있었다.
"저렇게 완벽한 남자가 왜 아직 장가를 못 가?"
그 말은 남자의 자격 팬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어 거의 일상어처럼 쓰이게 되었는데,
"김성민이 못하는 건 도대체 뭐야?"
"저렇게 완벽한 남자가 왜 아직 장가를 못가는 거지?"
이 말을 어제 윤형빈이 받았다.
"이렇게 완벽한 남자가 왜 여자친구가 없어요?"
여기에 김성민이 발끈하며 항변한다.
"나도 여자친구가 있었어! 있었다구!"
이윤석이 거들고, 이정진이 끼어들고, 그리고 그때마다 김성민을 발끈하고.
약점 잡았다. 모든 일에 적극적이고 자신만만한, 어린아이처럼 천진스럽고 수다스러운 김성민에서, 여기에 더해 그럼에도 여자친구에게 차여 현재 솔로인, 그것에 예민한 그냥 남자로. 솔로부대여 영원하라! 그 또한 솔로부대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 갇힐 것 없고, 특별히 고정될 것도 없고, 그냥 보이는대로. 그냥 있는대로. 그래서 시트콤이다. 이경규와 김국진과 김태원과 이윤석과 김성민과 이정진과 윤형빈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시트콤이다. 여기에 제작진은 조연일 테고...
아아, 웃었다. 김태원이 기껏 장을 보고 돌아오니 이경규, 김국진과 함께 낮잠이 들어버린 제작진과, 안티팬도 팬이라며 웃음소리 때문에 안티가 생겼다며 VJ를 놀리는 이윤석, 윤형빈과...
이들 일곱 남자가 가족이고, 그들 연출자, 작가, VJ들이 가족이다. 그리고 시청자도 가족이다. 그들과 함께 웃고 울고 화내고 즐기는. 마치 이 모든 것이 하나의 거대한 장치처럼 프로그램을 시트콤으로 만든다.
다른 프로그램을 이야기해서 안됐지만 내가 청춘불패에 바라는 모습이 바로 이런 것이다. 구하라, 유리, 써니, 나르샤, 현아, 한선화, 효민, 김태우, 노주현, 남희석, 김신영... 가진 바 개성 그대로, 가진 바 매력 그대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기를. 그들의 가진 날모습 그대로가 서로 어우러지며 이같이 가족과 같은 정겨움을 보여줄 수 있기를. 별로 비호감이던 써니에게도 요즘 호감이 생긴 탓에.
아무튼 스케일이 크고 임펙트도 컸던 만큼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기름이 쪽 빠진, 담백한 본연의 모습을 보여준 편이었다. 지나치게 웃기려고도 하지 않고, 지나치게 무언가 보여주려 하지도 않고, 어깨에 힘을 쫙 뺀 너무나도 자연스런 그 모습 그대로.
항상 그렇지만 그래서 더욱 정겹던 한 화였다. 기대했던 대로. 늘 보아왔던대로. 재미있었다. 즐거웠다.
덧) 그리고 어제 방송분을 통해 한 가지 확인할 수 있었던 의외의 사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윤형빈이 갖고 있는 고민이었다. 왕비호와 인간 윤형빈 사이의. 그리고 오래 가고 싶은 연예인으로서의.
확실히 왕비호의 캐릭터는 너무 강했다. 강해도 너무 강한 탓에 심지어 이제는 윤형빈이라는 이름보다 왕비호가 더 그의 이름처럼 들릴 정도가 되었다. 그렇다고 왕비호로 계속가기에는 왕비호라는 캐릭터 자체가 비호감이기 쉽고. 걸핏하면 막말논란으로 구설수에 오르는 왕비호인데 평생 왕비호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윤형빈이 굳이 왕비호라는 쉬운 캐릭터를 버리고 성실한 청년의 이미지로서 병풍이라는 비난까지도 감수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라 생각된다. 남자의 자격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왕비호라는 정형화된 캐릭터를 벗어던지고 보다 오래 달 수 있는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려는 것이리라. 물론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조급하게 굴지 않고 윤형빈을 그대로 믿고 지켜 보아준 제작진이 있었기 때문이겠지만.
덕분에 지금의 윤형빈은 개그콘서트의 왕비호와는 전혀 차별화된 다른 캐릭터로 완성되고 있다. 어딘가 어수룩해 보이는 성실하고 예의바른 착한 청년으로. 크게 웃음은 주지 못하지만 아저씨들 뿐인 방송에서 적절한 양념 역할을 해주고 있다. 윤형빈의 말처럼 왕비호의 독한 캐릭터를 중화시키기엔 최선의 선택이었던 셈.
그리고 김성민의 경우도, 이번 화를 통해 김성민의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생각하는데, 이경규와 김태원 등 항상 그의 대척점에 놓이던 캐릭터가 사라지자 그저 수다스럽고 어수선한 그런 캐릭터가 되어 버렸다.
모두 자는데 혼자 일하고, 또 다른 사람 내버려두고 혼자 일을 만들어 하고... 그러나 재미있느냐면, 이래서야 다큐멘터리 아니겠는가 말이다. 그나마 윤형빈과 이정진이 병풍답지 않게 적절히 역할을 해줌으로써 분량이 나온 것이지. 역시 김성민의 원맨플레이는 한계가 있다 하겠다. 마치 시합 내내 일정하게 뿌려지는 100마일 강속구와 같다고나 할까? 매번 100마일이면 언젠가는 친다. 변화구도 있고, 또 공의 속도도 변화가 주어지고 해야 타자들이 못치고 하는 것이지.
확실히 그래서 어제 방송분에서는 YB에 대해 OB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집안일이야 YB가 훨씬 잘했지만 재미는 압도적으로 OB쪽에 있었다. 역시 아무래도 예능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니까.
어딘가 서툴고, 빈 것 같고, 어색하고, 어수룩하고... 그래서 멍하니 앉아만 있어도 그림이 되더라는 것이다. 하는 일 없이도 함께 웃을 수 있고. 그게 바로 남자의 자격의 매력이겠지만. OB의 매력일 테고.
그나저나 역시 어제 방영된 MBC의 스타랭킹에서 김구라와 김태원이 전화통화를 하는 장면을 보니, 아무래도 김태원이 그동안 병원에 입원했었던 것 같다. 하긴 방송에 보이기에도 마르기도 너무 말랐고, 목소리도 갈라지고 힘이 없는 것이 정상적인 몸상태는 아니었던 것 같았다. 남자의 자격을 좋아하고, 또 부활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다. 내가 돈이 있었다면 개인트레이너라도 고용해서 건강관리를 책임지도록 해주었으면 좋겠지만...
김태원이 건강했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아도 다른 예능출연도 다 쳐내고 했으니 건강관리도 하면서 앨범준비든 방송출연이든 하셨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바란다. 항상 건강하기를. 오래사시기를.
원래는 어제 써야 했는데 자느라 처음 시작부분을 놓쳐서. 그리고 또 바빴고. 그래서 방금 전 다시 찾아보고 어제 느낀 것에 더해 써본다. 늦었지만 어째 그래야 하는 의무감 같은게 있어서. 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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