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남자의 자격은 이 한 마디로 요약된다 할 수 있다.
클래스.
물론 김국진옹도 재미있고, 이윤석옹도 재미있었고, 어울리지 않게 풋풋한 학창시절을 재현한 영보이 3인방도 재미있었지만 역시 압권은 이경규와 김태원 두 전설의 내공. 클래스였다.
이경규옹... 아마 말 그대로일 것이다. 두 시간 전에야 처음 알았다... 그대로. 한국사람 가운데 과연 온역학을 누가 처음 시작했고 그가 주장한 이론 가운데 어떤 것이 있는가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실제 강의한 내용을 보더라도 딱 개론 수준이다. 그러나...
"병균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증세는 눈에 보인다."
"변기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냄새를 떠올렸다."
"바로 내가 변신이다."
그렇게 쏙쏙 들어올 수 없다. 담당교수가 감탄한 이유가 있다. 전혀 모르는 사람도 한 귀에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한 번에 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적절한 유머와 적절한 비유와...
이경규가 왜 전설인가를 보여주는 부준이라 할 수 있다. 생전 처음 보는 내용들과 그래서 생전 처음 접하는 개념들... 그러나 그것을 어느새 자기만의 언어로 녹여 사람들에게 들려준다. 자기만의 언어지만 그것은 누구나 쉽게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언어다. 동년배 가운데서도, 아니 후배 가운데서도 한참 차이 나는 후배들과 함께 여전히 현역을 누빌 수 있는 이유라 하겠다.
하긴 그는 연예인인 동시에 사업가다. 영화제작자이며 프랜차이즈 사장이며, 무엇보다 단순히 주어진 대본을 따라가는 그런 수준이 아닌 스스로 프로그램을 만들어가는 개척자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설명할 때, 납득시킬 때,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스킬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그리고 김태원... 귀도 안 들리고, 눈도 안 보이고, 건강은 걸어다니기도 힘들고, 알콜성 치매에, 수전증까지 있어서 뮤지션으로서는 이미 퇴물에 가깝다... 그런 인식이 있었는데,
"자기가 만든 곡을 자기가 들어서 만족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게 우리 음악이다! 들려주는 거에요!"
아아... 신대철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옛날 음반은 지금 들으면 창피해서 들을 수 없다."
"음반을 내고 나면 항상 생각한다. 왜 이것밖에 만들지 못했는가?"
하긴 나도 블로그에 글 쓰면서 그리 생각한다.
"왜 이것밖에 못 썼을까?"
거기서 끝나면 그때부터는 글같은 것 못 쓰는 것이고, 그렇다고 자뻑 되면 그때부터는 막나가는 것이고.
어쩌면 뮤지션이 - 아니 예술가가 끊임없이 창작에 매진할 수 있는 것은 그러한 아쉬움 때문일 것이다.
"왜 난 지금 이것밖에 못했을까?"
"다음에는..."
"다음에는 더!"
그래서 항상 고민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그것을 구현해 보고 연습하고 학습하고...
그림을 그릴 때도 못 그리더라도 끝까지 완성해 그리는 사람이 잘 그리지만 중간에 멈추는 사람보다 나중에는 더 잘 그리게 된다. 그만큼 향상심이 있다는 것이고, 또 한 번의 아쉬움으로 다음에는 더 나아질 동기를 얻기도 할 터이니.
"이것이 내 스타일이다!"
자뻑하라는 말이 아니라, 그만큼 자신감을 가지고 도전하기를 멈추지 말라는 뜻일 게다.
그리고 드럼에게 조언하면서 한 말들,
"심벌이 너무 높아!"
"차는 힘을 더 길러야겠어!"
이건 무슨 베토벤바이러스의 강마에인가? 동생이 그냥 베토벤이라 하더라. 남 말도 제대로 못 들으면서 어떻게 그런 건 들리는지.
"베이스가 가장 낫네."
"드럼이 길을 잃으면 그걸 붙잡고 가는데..."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컬에게 한 조언,
"드럼인가?"
"그런 뜻이 아니라 보컬이 드럼에 맞추면 어떻게 하나?"
"드럼보다 조금 늦게 가야 여운도 있고 감동도 있는 것이지..."
물론 태원옹의 취향이기는 하겠지만, 확실히 보컬이 너무 기계적으로 맞으면 노래가 재미가 없다. 보컬의 매력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차라리 사운드에 보컬을 싣는다는 느낌으로 보컬을 강조할 수 있어야... 아마 그런 의미일 텐데...
얼마 안 되는 부분이다. 한 5분 정도 나왔나? 그러나 그 임펙트가 장난이 아니었다. 이래서 김태원이구나... 이래서 부활을 25년이나 이끌고 있는 것이구나...
그러고 보면 이승철도 부활 시절 노래부를 때 김태원에 옆에 있으며,
"그게 아니잖아!"
갈구고 그랬었다지? 유영석의 증언이다. 이승철 노래부르는데 옆 소파에 길게 누워 그러고 있더라고. 당시 너무 멤버들을 괴롭혀서 이제는 미안하다고.
지금이야 늙고 몸도 성치 않지만 그래도...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뜻이리라.
이밖에도 영보이 3인방도 재미있었다. 형들의 요구에 따라 미팅을 주선하는 윤형빈과 쑥쓰러워하면서도 그 상황을 즐기는 김성민과 이정진... 의외로 이정진 부끄럼 많이 타더라.
기믹이다. 이건 예능이다. 이건 설정이다. 실제 미팅에 참가한 여학생 한 명은 남자친구까지 있었다. 주위에 제작진도 있었고, 구경하는 대학생들도 잇었고... 모든 것이 예능을 위한 상황임을 분명히 한 가운데 마치 연기처럼 즐기는 미팅이란... 묘하게 리얼스러운 그 느낌이 재미있었다.
그리고 그 전 하늘을 날다 편에서 경험했던 원심가속기가 나오자 그때 당시 했던 호흡조절을 시연해 보이더니 이윤석 기절하던 이야기를 하던 것도 웃겼다. 역시 이래서 김성민일 것이다.
여기에 연예할 때는 떨림, 결혼하고서는 울림, 그리고 지금은 살림... 항상 느끼는 거지만 이윤석은 천생 국문학도다. 특히 남자의 자격에서 그런 걸 자주 보여주는데... 감탄했다. 이런 것이 또 연륜이겠지?
그러고 보면 태원옹도 한 건 하셨다.
"결혼 20년차인데, 이쯤 되면 꽃다발이나 그런 것 감동 안해요. 트렁크 열면 풍선 날라가고 그래도 소용없어. 이때쯤 되면 오로지 이거야!(돈)"
수업하던 교수마저도 공감하고 말았는데...
아무튼 항상 그렇듯 기대한 만큼의 재미에 약간의 재미를 더한 딱 남자의 자격스러원 한 회였다. 웃어서 재미있었고, 재미있어서 웃었고, 어느새 아련한 공감과 가슴찡한 여운이...
역시나 이 남자들은 진짜구나... 특히 이경규옹, 태원옹... 전설이 괜히 전설이 아니라는 것일 게다. 그런 남자들의 이야기라는 것이고.
좋았다.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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