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타고
비교 될 수 있도록 자유롭게 가는 거야
억눌렸던 마음이 날아가게 가는 거야
어떤 보호조차도 그 어떤 혜택조차도
날 위한 신호는 아니야
날 막지마 내버려둬 바람처럼 갈 수 있게
어두운 꿈이지만 남겨진 나의 세계
기죽을 순 없잖아 나도 같이 사는 거야
내가 흘린 땀들이 값싼 것은 아닌 거야
너의 자랑보다도 내 가진 가난보다도
날 무시하는 네게 화가 나
날 막지마 내버려둬 바람처럼 갈 수 있게
어두운 꿈이지만 남겨진 나의 세계
날 막지마 내버려둬 바람처럼 갈 수 있게
어두운 꿈이지만 남겨진 나의 세계
폭주족으로 여겨지는 어느 오토바이 배달원과의 인터뷰로 시작되는 뮤직비디오의 오프닝이 인상적이었던 곡이다. 아마 1996년이었던가? 당시 케이블 차트에서 꽤 높은 순위까지 올라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비슷한 무렵 나왔던 김기하의 "나만의 방식" 역시 내 애창곡이기도 하다.
아무튼 내가 블랙홀을 좋아하는 이유일 것이다. 허세가 없다. 메탈을 한다는 허세보다는 단지 메탈이라는 형식을 빌어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한다. 그리고 그 메탈이라는 형식 속에 담아내는 것은 어쩌면 어려서 수도 없이 듣고 자랐을 우리의 통속적인 멜로디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친숙할 그런 정서들.
메탈이란 물 건너서 들어온 음악이다. 정형화된 음악의 양식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렇게 받아들여졌고, 그렇게들 여겨지고 있었다. 그러나 블랙홀의 음악을 들으면 처음부터 이 땅에서 나사 자랐겠거니. 원래 메탈이란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음악이겠거니. 그렇게 친숙하고 토속적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블랙홀의 음악을 들으면서 메탈을 듣는다고 생각한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가요를 듣듯 그냥 멜로디를 듣는다. 주상균의 보컬을 듣고, 시적인 가사를 듣고, 그리고 더불어 멤버들의 연주를 듣고. 단지 메탈의 연주가 가미된 대중음악일 뿐이라. 아니 원래 메탈이란 자체가 대중음악 아니었던가. 한국에 들어왔다면 한국의 대중음악이어야 하겠지.
바로 그것이 블랙홀은 되었다. 마치 통속가요와 같은 친근한 멜로디에, 그리고 귀에 쏙쏙 들어오는 직관적인 가사들, 그리고 메탈로써의 본연의 모습을 잃지 않는 후련한 연주까지. 특히 이 노래에서는 그 특유의 질주감이 속도무제한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 같다.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함께 폭주족이 되어 내달리는 것처럼 호쾌하기 그지없다. 역시 블랙홀이라. 기분이 우울하게 가라앉아 있어도 한 방에 날아가 버린다.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나.
아마 어쩐 사람은 그러겠지. 뭐하는데 폭주족을 미화하고 그러느냐. 물론 보편적인 시각에서 폭주족은 범죄자다. 사회적으로 많은 피해를 주는 일탈적 존재이기도 하다. 당연히 비판을 하자면 그들이 그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폭주족을 미화하는 노래다..
그러나 그런 건 사회적인 문제일 뿐이라는 것이다. 굳이 개인까지 나서서 동참해야 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폭주족 자신은 물론이고 폭주족에 우호적인 개인들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폭주족의 주장에 공감하는 개인들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이 그런 자기 개인적인 생각을 이야기한다는데.
그것이 록이다. 그것이 메탈이다. 그것이 록이 말하는 사회비판이다. 더 정확히는 자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속엣 말을 음악을 통해 털어놓는다. 지극히 주관적이고, 지극히 사변적이고, 그러면서도 절대적이다. 그래서 원래 젊은이들은 그렇게 록에 열광했던 것이다.
어떤 가사들은 그리 철학적이라는데 나이 먹고 보니 그렇게 유치할 수 없다. 흔히 말하는 허세다. 그냥 어린 녀석들 허세떠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가. 그 나이 또래에게는 그것이 진리일 수 있는 것을. 진리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순간적인 것이며 직관적인 것이다. 그것을 록스타들은 당시의 젊은이들을 대신해 무대 위에서 외쳐주었던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별 시답잖은 이야기들이, 뭔 저런 소리를 하나 싶은 것들까지도, 하긴 힙합은 더 심하다. 그래서 대중은 그들에 열광하는 것이다. 록음악을 듣고, 허구헌날 사고나 치는 힙합 음악인들을 영웅으로 떠받들고. 대중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뭐 대단한 게 있어 그럴까?
마치 록이 말하는 사회비판이 어떤 객관적인 정의의 투사인 양. 그런 것 없다. 단지 내가 생각하기에 이렇다.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없다. 그리고 그것을 무대를 통해 관객과 소통하는 것이다. 음악을 통해 말하고 음악을 통해 듣고. 그렇게 무대위에서 소통하는 것이 록일 것이다.
음반으로 듣다가 무대를 보게 되면 깨닫게 된다. 음반이란 록이 아니었다. 록이란 무대에 있었다. 작렬하는 그 에너지에. 미친 듯 날뛰며 듣는 지 마는지 빠져드는 자기 세계에. 어쩌면 그것은 다른 세계로 인도하는 주문과 같은 것일지도. 록스타란 사이비종교의 교주와도 같았다.
하지만 그래봐야 한국이라. 한국에서 록스타라고 해봐야 뭐가 있겠는가. 블랙홀이 가장 많이 판 앨범이 10만 장. 당연히 지금은 그렇게까지는 안 된다. 콘서트 열었더니 관객이 20명. 관객이 단 두 명만 되어도 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연주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마음가짐이란 어떤 현실을 말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와서는 공연을 찾아가려 해도 현실적인 여건이 안 되어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
참고로 나도 들은 이야기인데 확인은 못 해봤다. 블랙홀이 EMI라는 그래도 메이저 레이블에 속해 있을 때 해외진출의 기회가 있었단다. 블랙홀의 가능성을 높이 보고 아시아를 중심으로 해외에서의 프로모션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런데 마침 EMI에는 박진영이라는 또다른 가수가 있어서 아시아 시장을 개척하려 준비중에 있었다. 박진영이 성공하면 블랙홀도 간다. 그런데... 아다시피 박진영은 지금 미국에 있다.
개인적으로 참 안타깝게 생각하는 팀이다. 어느모로 보나 해외에 나가도 전혀 꿇릴 게 없는 밴드인데. 오히려 한국만의 독특한 음악세계를 들려줄 첨병으로 이보다 나을 수 없다 할 것이다. 제대로 된 사운드에, 그리고 지극히 한국적인 멜로디와 정서에. 하지만 여건이 받쳐주지 않으니.
그리고 지금은 철저히 인디밴드로써다. 소속사도 없이 프로모션과 매니지먼트를 모두 스스로 알아서 해결한다. 그야말로 뼛속까지 록커인. 아마 죽어 영혼이 되어서도 주상균과 이원재, 정병희, 이관욱은 메탈을 연주하며 저승길을 질주하지 않을까. 헌혈하러 가면 피대신 록음악이 흘러나올 것 같다. 그냥 록 자체라 할 것이다.
끝으로 아마 이 앨범에서인가 주상균과 트윈기타를 이루는 이원재가 합류했을 것이다. 원래 블랙홀이라 하면 보컬이자 기타리스트인 주상균과 베이스 정병희, 세컨드기타 이원재, 드럼 김응윤이었을 텐데, 그 네 사람의 팀이 처음으로 어우러진 것이 이 앨범에서였다. 이전 4집에서 세션으로 참가했다가 5집에서 정식으로 합류했을 것이다. 이 가운데 김응윤은 지금 다른 밴드에서 활동하고 있고 이관욱이 드럼을 대신 맡고 있는데. 솔직히 아직도 이관욱보다는 김응윤이 나로서는 더 익숙하다. 어쩔 수 없이.
아무튼 그야말로 대중적인 음악을 하는 대중적인 밴드일 텐데도 정작 그렇게 인기를 얻고 있지 못하는 것이 신기하기만 한 밴드. 아무리 생각해도 대한민국에서 이들보다 대중적인 음악을 하는 밴드는 없는 것 같다. 비판이 아니다. 메탈도 대중음악이다. 대중이 듣기 좋은 음악이라는 것이 칭찬일 테지. 그렇다고 메탈이라는 본연의 정체성을 소홀히 하는 것도 아니고. 감히 블랙홀 앞에서 메탈을 말할텐가.
메탈이기 이전에 대중음악으로써 그 친근함이 좋아 지금도 자주 듣는 음악이다. 특히 여름이면 창문을 열고 크게 틀어놓고 싶은.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렇게가 안 되지? 언제고 한 번 블랙홀의 공연을 보러 가야 할 텐데. 마음만 앞서지 항상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무더운 밤이라 음악이 더욱 시원하게 후련하기만 하다.
덧, 이 앨범에 뒷부분에 실린 블랙홀 버전의 "물 좀 주소"도 한 번 들어볼만 하다. 전혀 블랙홀스럽지 않게 블랙홀의 멤버 전원이 돌아가며 부르는 노래인데, 어쩐지 한대수의 "물 좀 주소"보다는 지금은 이 버전을 더 즐겨 듣는다. 멤버들의 날 목소리가 참 정겹다. 김응윤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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