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 - 하모니라는 것, 그리고 리더십...

까칠부 2010. 9. 6. 07:42

사실 어제 분량 가운데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것은 서로 다른 개성과 서로 다른 수준의 사람들을 하나로 엮어가는 과정이었다. 이런게 하모니라는 것이로구나.

 

조화를 이루자면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어떤 사람들이 말하는대로 못하는 사람 잘라내고 잘 하는 사람 채워넣으면 된다. 잘 하는 사람들만으로 채워 넣으면 아무리 조화가 안 맞아도 그림만은 그럴싸할 테니. 조화를 이룬다면야 그보다 좋으 수 없을 테고.

 

하지만 이미 남자의 자격 합창단은 기존의 일곱 멤버 - 이정진이 빠졌으니 여섯 멤버 만으로도 그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차단된 상태다. 합창단에서 가장 구멍이 이 여섯 남자다. 그런데 또 누구를 더 빼고 넣고 하겠는가.

 

그리고 박칼린은 그런 리더십의 소유자가 아니다.

 

"우리는 No!라는 말을 잘 쓰지 않습니다."

"왜 안 된다고만 생각하십니까?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망쳐봐야 얼마나 망치겠습니까?"

 

각자 수준에 맞춰서, 그리고 파트별로 나뉘어서, 부족한 부분을 끌어올리고, 잘하는 부분을 맞춰가며 하나씩 소리를 완성해간다. 그런 과정들이.

 

얼마나 멋진가. 그 중구난방 말도 안되는 오합지졸들이었는데 어느샌가 주위에 맞춰 목소리를 낼 줄 알게 되었다는 것이. 보통의 노력이었을까. 박칼린을 비롯 최재림 등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고, 각자 단원들이 최선을 다해 그에 호응했기 때문이었다. 악보조차 볼 줄 모르는 격투기 챔피언 서두원에 대해서도 그에 맞춰 그 수준에 맞게 주문하고, 서두원은 또한 그에 호응하고.

 

그저 좋게만 나가는 것이 아니다. 가장 책임이 막중한 솔로파트에 대한 박칼린의 엄격함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소름이 돋게 만들 정도였다. 심지어 출연자에 감정을 이입하는 바람에 박칼린에 대한 거부감을 느낀 사람마저 있을 정도였다.

 

하모니라는 것이,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 서로 다른 개성을 맞춰가는 것이라면, 역시 가장 큰 책임을 지울 수 있는 것은 그만한 역량이 되는 이들일 것이다. 기본적인 조건조차 갖추지 못했다면 거기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그리 중요하지 않다면 스스로 따라올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래서 나머지 전체를 이끌어야 하는 입장에 있다면,

 

"사람들을 끌고 갈 수 있는 사람을 원하는 겁니다."

 

배다해와 서우에게 보컬트레이닝을 시키며 요구한 그대로, 모두를 이끌 수 있는 실력이 될 수 있도록 엄격하게 다그칠 밖에. 여러 사람 가운데 한 사람에 불과한 멤버들과 그 가운데 오로지 한 사람 돋보일 수밖에 없는 멤버는 그가 지는 무게부터가 다른 것이다.

 

웃어야 할 때는 웃는다. 즐겨야 할 때는 즐긴다. 농담을 나눌 때는 역시 같이 농담을 한다. 예능이라는 전제에 박칼린은 충실하고 있었다. 예능이라는 것을 결코 무시하거나 소홀히 여기지 않았다. 그래서 예능멤버인 남자의 자격 여섯 멤버에 대해 많은 것을 배려하고 양보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배려가 그 짧은 시간 안에 그 수많은 다른 개성들을 하나로 엮어내지 않았겠는가.

 

리더십이라 할 터다. 지난번 할마에 때도 그랬지만 리더십이란 간단히 버리고 바꾸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나에게 맞도록 다가오기만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먼저 다가가는 것이고, 그러면서도 그를 끌어오는 것이다. 조화란 그런 리더십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박칼린의 경우는 칼린스마라던가?

 

하모니라고 하는 주제. 그렇다 남자의 자격 멤버들은 이번 주제에서 조연이었다. 하지만 조연이면 어떤가. 조연이라고 완전히 프로그램에서 배제되었는가. 손님에게 안방을 내주더라도 집주인은 어디까지나 집주인이다. 그것을 존중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어느새 프로그램이 남자의 자격으로서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는 것. 그래서 하필 이번 주제는 하모니였던 것이 아닐까?

 

그것은 우리 사회에 던지는 화두이기도 할 것이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조화를 이룬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그 리더십이란 과연 어떤 것인가? 너무나 중요한 주제일 테지만 오히려 소홀한 그런 것들에 대해서. 하모니를 통해 그것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갖는 의미라는 것은. 그 방법론에 대해서도.

 

어떻게 남자의 자격은 그렇게 병풍이라 불리우던 멤버들을 데리고도 여기까지 끌고 올 수 있었는가. 웃기지 않는다, 재미가 없다, 열심히 하지 않는다, 그리 하차하네 마네, 멤버를 바꾸네 마네 하는 시끄러운 소리들 가운데 어떻게 초지일관 지금까지 이끌고 올 수 있었는가.

 

벌써 20%에 육박하는 시청율과 방송이 나가고 나면 인터넷이 뜨거워지는 화제성, 이윤석이나 이정진처럼 방송출연을 통해 인지도를 높이고 새로운 기회를 부여받은 사람들도 있었다. 병풍이라 불리우던 멤버들도 어느새 자기 자리를 찾아가고. 어떻게? 폐지 이야기까지 나오던 방송이 도대체 언제 어떻게 이렇게까지?

 

바로 그런 남자의 자격이었기 때문에 보여줄 수 있었던 주제 아니었겠는가? 잘나서가 하모니가 아니다. 잘해서 하모니가 아니다. 못하더라도. 못났더라도. 그럼에도 함께 이루는 것. 함께 하는 것이 바로 하모니다. 굳이 음악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석모도 여행편에서 자막으로 남긴 남자의 자격의 정신과도 같은 한 마디,

 

"강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사람이든 한 바퀴씩 함께 갑니다."

 

더 많이 밟는 사람도 있고, 덜 밟는 사람도 있고, 그것을 중간에서 조율해주는 사람도 있다. 그것이 두드러지는 것이 밴드편에서의 할마에였고 하모니편에서의 박칼린이었다. 모두가 함께. 잘났든 못났든 누구 탓을 할 것 없이 각자의 눈높이에 맞춰 그들 모두가 만들어갖는 하모니를. 앙상블을.

 

하긴 그래서 더욱 남자의 자격 멤버들도 굳이 주인공이어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단지 조연이어도. 조연인 것만으로도. 그런 것까지 포함한 것이 하모니일 것이니. 굳이 누군가 주인공이 되어 돋보이기보다 단지 여럿 가운데 하나인 것으로도 족하지 않은가. 남자의 자격이기에 또한 더욱.

 

리더십이란. 그리고 하모니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란. 지금이기에 더욱. 어쩌면 지금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었던 그런. 그래서 새벽같이 떠오르고 마는 것이다. 그런 감동들이. 그런 깨달음들이. 그들을 통해서.

 

정말 멋스러운 예능이라는 생각이다. 특히 박칼린과의 만남은. 이런 사람도 있었구나. 매력적이면서도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 말 그대로 선생님? 많은 것을 생각케 했던 방송이었다. 항상 그렇듯.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