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 - 어떻게 해도 남자의 자격은 남자의 자격이다!

까칠부 2010. 9. 5. 19:03

주위에 자신을 맞춰가느냐 주위를 자신에 맞춰가느냐. 나를 타인에 맞춰가는가. 타인을 나에게 맞춰가는가. 그런 것을 두고 힘이 있다 하는 것일 테지만. 중심이 있다.

 

그동안 걱정이 있었다. 남자의 자격과는 조금 거리가 있지 않은가. 이제까지의 남자의 자격과는 확실히 위화감이 있었다. 이것도 남자의 자격이구나 싶기는 하지만. 항상 같을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오늘 비로소 남자의 자격으로 돌아와 있었다. 남자의 자격이었다. 어떻게 해도 남자의 자격과 하는 동안에는 남자의 자격일 뿐이라.

 

얼마나 자연스러운가. 얼마나 스스럼없는가. 그리고 왁자하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들. 우습다. 웃는다. 그러나 특별히 예능을 한다는 생각이 없다. 그저 모여서 수다떨며 노는 느낌? 모이면 당연히 나올 것 같은 떠들썩한 이야기들이다.

 

부산출신이라고 한다. 애써 사투리를 쓰지 않으려 서울말을 쓰고 있으니 그것을 가지고 부산사람들 서울말투 쓰는 것을 포인트로 잡아 웃음을 만든다. 탁월한 감각이었지만 그다지 튀지 않는. 당연히 그런 상황에서 나올 수 있을 법한 이야기들.

 

방송에 출연하면서 유명인이 되어 버린 회사원의 이야기, 방송에 출연하면서 격투기 챔피언으로서보다 더 유명해져서 모자도 반값에 사서 쓰게 되었다는 이야기, 출연자 하나는 김국진과 동갑인 아버지를 갖고 있다 하고, 계은숙의 "토요일밤에"조차 이제는 손담비의 "토요일 밤에"로 더 익숙하다. 그리고 압권인 소녀시대 Oh!의 테너 버전.

 

굳이 그러려 해서가 아니다. 하나도 따로 떨어져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 남자의 자격이 갖는 강점이다. 물 흐르듯 이어진다. 특별히 더 재미있지는 않지만 그 끊이지 않고 흐르는 가운데 공감이 있고 자연스러움이 있다. 소소한 친근한 웃음이 있다.

 

게임도 좋았다. 하모니라는 주제에 맞게 이동하는 동안 각 파트마다 하모니를 만들라. 이 경우에도 굳이 삼겹살과 라면을 대비하는 다른 예능과는 달리 삼겹살과 라면의 조화를 이야기한다. 부활의 리더 답지 않게 허술하기 짝이 없던 테너, 웃기려는 노력은 가상했지만 무언가 어색했던 알토, 그리고 남자의 자격을 훌륭하게 노래로 풀어낸 탁월한 소프라노에, 의외성과 웃음을, 그리고 놀라움을 함께 보여주었던 베이스. 설마 거기에서 Gee 춤을 추는 중년의 회사원이라니. 개성이 드러나고 웃음이 나오고 그러나 어디 하나 끊어지는 것이 없다. 제작진에게 찬사를 보낸다. 아마 천의무봉이란 이런 것을 말하리라.

 

연습에 들어가서도 보기만 해도 닭살이 돋는 유치한 안무를 연습하는 과정이 왁자하면서도 재미있다. 그렇지 않겠는가? 누가 그런 안무를 좋아라 따라하겠는가? 심지어 안무하는 사람마저 외친다.

 

"혼자 하는 나는 얼마나 창피하겠어!"

 

그렇게 서로 얼굴을 붉히고, 부끄러워하고, 쑥쓰러워하고, 킥킥거리고, 그러면서 목소리를 높이고, 다그치고, 또 킥킥거리며 웃고, 그런 것이다. 하나의 동작을 하면서도 이것을 어떻게 할까. 과연 그 동작을 넣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다른 동작이 나을까.

 

합창으로 얼마나 웃음을 만들어낼 수 있겠는가. 하지만 만들어낼 수 있다. 바로 그런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관계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상황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디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아마 남자의 자격이 아니더라도 어디선가는 합창을 하면서 그렇게 웃고 떠들고 있으리라.

 

그리고 이어지는 배다해와 선우에 대한 박칼린 선생님의 하드트레이닝. 선생님이라는 말이 입에 붙어 버렸다. 선생님이다. 과연 이래서 국내 뮤지컬 음악감독으로 1인자의 위치에 있구나. 소름이 돋았다.

 

항상 웃는다. 긍정적이다. 그러나 철두철미하다. 마치 초등학생처럼 벽 구석에 가서 몸을 붙이고 노래하는 배다해는 우스우면서도 뭐랄까 뿌듯함이 있었다. 보기에는 전혀 문제 없이 잘하게만 보이는 배다해나 선우가 박칼린 선생님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그저 학생이 되어 주눅들어 배우는 것을 보니, 

 

뭐라 표현해야 하까? 감독이라기에는 벅찬 - 동경이 있었다. 카리스마? 표현이 잘 안 되는데 아무튼 감동이었다. 어린아이처럼 몰아세우며 그녀들의 강점을 끌어내는 박칼린 선생님과 어린아이가 되어 충실히 그를 따라가며 그동안에도 발전해가는 배다해와 선우의 모습과. 그 자체가 하나의 드라마였으며, 박칼린이라는 카리스마의 존재를 여실히 드러낸 장면이었다 할 수 있다. 그저 웃기기만 하는 예능은 아니라.

 

남자의 자격이기에, 그리고 박칼린 선생님의 개성이 그와 어우러지며 만들어진, 남자의 자격만이 가능했던 장면이 아니었을까. 끝내 배다해가 눈물을 보일 때는 울컥 치미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음악이로구나. 바로 이런 것이 프로의 세계로구나. 클래스라는 것도. 

 

감탄? 맞다. 바로 감탄이었다. 그들이 살아가는 세계에 대한. 그들의 탁월함에 대한. 그렇게나 훌륭하고 그렇게나 대단하고. 그럼에도 저리 철두철미하고. 누군가 예술을 하는 것을 두고 칼날 위를 걷는 치열함이라 표현한 적 있었는데. 그런 그들에 대한 순수한 감탄과 동경이었을 것이다. 내가 느꼈던 그 벅찬 감정이란.

 

물론 남자의 자격 원래 멤버들도 그저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주인공의 자리는 빼앗겼지만 프로그램의 주인 자리는 여전히 그들의 것이었다. 항상 틀리면서도 또 항상 열심이고, 열심이면서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뻗어 자 버리는 이경규. 허술하고 엉터리같은 모습을 보이며 역시나 쉬지 않고 멘트를 날려주시는 김태원. MT에서의 MC는 두 말 할 것 없이 김국진이었다. 윤형빈은 상대적으로 저조했지만 연습장면에서 이윤석의 몸개그는 그가 왜 정통 슬랩스틱의 계승자인가를 보여준다 하겠다. 항상 이윤석의 몸개그에는 감탄하게 된다.

 

역시 가장 압권이었다 할만한 것은 MT를 위해 모이는 장면에서 박칼린 선생님과 그 조수가 다른 멤버들과 나타났을 때 김태원에 내뱉은 한 마디,

 

"박칼린 선생님 부하도 되게 무서워!"


그 표현은 이후 MT장에 가서도 이어진다. '박칼린과 그 부하들'이라고. 김태원이 처음 시작한 것이 아니라 원래 합창단원 사이에 나오던 이야기였을까? 소프라노팀이 짠 하모니 끝에 박칼린을 모사한 상황극,

 

"플랫!"

 

짧지만 웃겼다.

 

남자의 자격 멤버들은 분명 프로그램의 주인이었다. 그러나 합창에 있어 손님과 주인이 따로 없었다. 그만큼 주인들의 손님맞이가 좋았고, 또 그만큼 출연자 사이에서도 하모니가 이루어졌다는 뜻이리라. 그것이 또 가장 남자의 자격스러운 것이라. 자연스럽고, 스스럼없고, 왁자하고, 끊이지 않는다.

 

정말 미친 듯이 웃었다. 그러면서도 음악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감동했다. MT장에 도착해서 물에 발을 담그고 보여준 그들만의 하모니에서도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이것이 음악이로구나.

 

음악이 들려줄 수 있는 아름다움을 제대로 자연스런 웃음으로 승화해내지 않았는가. 이제까지 가운데 가장 남자의 자격 다웠기에 또 가장 감동적이었던. 웃었고. 그리고 감동했고. 즐거웠다.

 

음악은 이렇게 아름답다. 특히 박카린 선생님이 배다해와 선우를 가르치는 장면에서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고 싶은. 그런 치열함과 철저함이. 멋있었다. 바로 이런 게 멋일 게다. 정말 멋스런 남자의 자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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