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이런 감동을 받으리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다. 그저 독하게 웃고 떠들고 음악 이야기도 하면 좋겠다 싶었는데...
하긴 의외로 음악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가 오가던 프로그램이기는 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김건모가 나와 윤종신의 곡을 가지고 어떻게 곡을 전재할 것이냐를 가지고 웃으며 이야기하던 장면 같은. 그런 장면은 사실 어지간한 음악프로그램에서도 보기 힘들거든. 당시 김건모의 곡센스에 감탄했던 게 기억난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이건...
김현식이라면 내가 인정하는 대한민국 3대 가객 가운데 하나다. 김현식, 전인권, 김광석... 안타깝게도 이 가운데 두 분은 이미 운명을 달리하고 있다. 전인권 하나 남았는데... 어쩐지 전인권의 노래는 그냥 듣고만 있어도 눈물이 나서... 갈라지고 찢기고 부서진, 자기 노래임에도 고음에서 허덕이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렇게 눈물이 난다. 가슴을 울린달까?
김광석의 노래도 그렇다. 서른즈음에를 들으며 울컥하던 것이 또 몇 년 전이다. 그녀가 처음 울던날도 그리 눈물이 났고... 그리고 김현식...
다른 것 필요없는 전설이었다. 아마 대한민국 대중음악 사상 누가 있어 다시 그와 같이 그런 노래를 들려줄까? 오늘 이승철도 김현식의 "내사랑 내곁에"를 불렀지만 역시 아직 한참 못 미친다. 그 가슴 저 밑에서 끌어올리는 듯한, 영혼마저 뒤흔드는 그 목소리에는.
물론 라디오스타답게 감동적인 이야기로만 끝나지는 않는다. 김현식이 통뼈였다던지, 아니면 빗맞아도 한 방이라든지, 무대 위에서 목을 풀더라는 이야기들... 또 또 한 사람의 천재인 유재하가 김현식의 밴드에서 나간 이야기같은 것들... 웃음 가운데 찡한... 아, 이런 걸 페이소스라 하겠지? 라디오스타가 자랑하는 60만원짜리 라이브 무대는 그래서 정말 감동이었다. 김구라의 그 어처구니 없는 노래까지도 눈물이 고일 정도로.
아마 빵 터지는 웃음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오늘의 라디오스타는 낙제점이리라. 그저 독설 날리고, 어처구니 없는 멘트로 게스트 곤란하게 만들고, 그렇게 웃기기만을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지루할 수도 있고 재미없을 수도 있으리라. 더구나 김현식을 모르는 세대라면.
그러나 나는 눈물이 났다. 그냥 김현식의 일대기를 다큐멘터리로 읊어주는 것보다 소소한 이야기 속에, 또 웃음도 담아가며 들려주는 이야기가 어쩐지 가슴 한 구석에 찡하니 눈물을 자아냈다. 웃음이 이리도 감동적일 수 있다는 것을, 웃음이 이리도 슬플 수 있다는 것을...
그리도 다시 한 번 확인한 당시의 가요계의 현실.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과 들국화를 배출한, 김현철과 이소라가 있었던 동아기획의 도산... 수천만장을 팔아치웠다는데도 당시의 대중음악계의 고질적인 부조리로 인해 결국 트랜드의 변화를 견디지 못하고 사라져버린 당대의 전설. 지금의 뻔한 음악들만이 난무하는 시대에 그같은 뚝심있게 자기 길을 걸어가던 기획사의 존재란 얼마나 아쉬운가?
하긴 이하늘도 나와 그러더라. DJ DOC 앨범 1집이 대박이 났는데, 사장이 데리고 가서 뷔페 한 번 사주더라고. 구창모도 솔로로 나오고 나서 처음 보너스라는 걸 받아봤단다. 송골매 시절에는 아예 그조차도 없었고. 들국화가 해체된 이유도 돈 문제였다니... 신정환의 말처럼 당시 음반회사에는 음반을 먹어치우는 귀신이 살고 있었을지도. 웃기에는 너무나도 아픈 촌철살인이었다.
아무튼 대박이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내게는 정말 대박이었다. 라디오스타 사상 전설로 남으리라. 앞으로도 이런 스타일의 방송이 몇 번이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가수인 이승철의 입을 빌어,
"이런 프로그램은 한참 더 오래 갔으면 좋겠어요."
그대로. 무릎팍의 말처럼,
"라디오스타여, 영원하라!"
다른 어떤 프로그램이 있어 이같은 감동을 줄까? 최고였다. 정말이지 고마울 정도로.
오늘 새벽에는 간만에 김현식의 음악을 들어야겠다.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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