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무한도전 - 잔혹한 감동의 드라마...

까칠부 2010. 9. 11. 22:59

내가 가장 싫어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정신력이다. 거의 만병통치약. 아무런 준비도 대비도 갖추어진 것 없이, 그를 위한 어떤 환경도 여건도 마련된 바 없이, 그러나 어찌되었든 일단 버티고 싸우고 이기라.

 

항상 스포츠 경기서도 그런다. 제대로 인프라가 갖추어져 있나? 제대로 전술이라는 것이 있나? 경기력을 높일 수 있는 아무것도 없는데 일단 정신력으로 버티란다. 그러다 지면 정신력 탓.

 

하긴 그게 바로 우리나라 군대문화의 폐해다. 그러지.

 

"하면 된다!"

 

하면 안 되는 것도 있다. 언 땅을 곡괭이 없이 삽으로만 파고 할까? 그래서 언 땅에 삽질한다는 말이 나온 거다. 곡괭이 없이 언 땅 삽으로만 파라는데 그 순간 삽이 살인무기가 될 수 있음을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그런데 그래도 못하면 정신력이 안 되어 있어서. 군기가 빠져서. 자세가 안 되어 있어서. 그러다 사고라도 나면 그것도 자기 책임.

 

 

그렇지 않아도 집중을 못 하고 있었다. 일단 현재 건강하게 방송활동 잘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난주 토하던 모습이 자꾸 눈에 밟혀서. 더구나 김태호PD의 인터뷰를 보니 제대로 정밀검사를 받은 것 같지도 않다. 당장은 괜찮더라도 언제 이번 일로 인해 후유증이 나타나지 않을까.

 

그런데 느닷없에 눈에 뜨이는 저 자막. 그리고 하필 그 앞에서 그 장면이 나왔었다.

 

 

역시 우려했던 장면이었다. 이름이 손스타 드라이버였던가? 원래는 제대로 낙법을 하며 떨어졌어야 했을 터였다. 그러나 아마추어의 미숙함은 떨어질 때 손부터 떨어지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엄연한 실수였고, 그것은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그것을 단지 정신력이라 말하는 자막의 센스는. 그리고 정형돈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기믹도 아닌 실제의 모습을 길게 보여주는 의도라는 것은. 과연 정형돈의 고통을 가지고 시청자의 감동과 바꾸려는 얄팍한 계산에 의한 것은 아니었는가. 이만큼 고통스러워하는데 이만큼 훌륭하게 버티고 있다. 그렇자면 정신력을 말하기 전에 정신력이 필요 없도록 제작진이 조치해야 했던 것은 아니었는가.

 

하긴 그나마 정형돈은 손이었지 다음 정준하가 손스타에 걸었던 파일드라이버에 이르면 말을 잃게 된다.

 

 

과연 이 장면에서 작은 실수라도 있었다면? 실제 몇 번의 사고로 WWE에서도 금지되었던 적이 있었던 위험한 기술이었다. 더구나 정준하는 허리부상으로 1경기에서도 자이언트 스윙을 제대로 걸지 못하고 있었다. 몸이 정상이 아닌 상태에서 과연 작은 실수라도 있었다면 손스타는 어떻게 되었을까? 과연 그런 상태에서도 무한도전을 감동을 말할 수 있었을까?

 

모른다. 카메라워크도 있고, 현장에서 직접 보는 것도 아니고, TV화면만으로 과연 기술이 제대로 걸렸는지 아닌지. 만일 기술이 제대로 걸리지 않고, 기술을 받는 것에도 작은 실수가 있었다면 그것은 꽤나 당사자에게 큰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 그런 실수가 방송에 나가기도 했다. 더구나 출전선수 가운데 둘은 이미 방송 전 상당히 치명적일 수 있는 부상을 보이고 있었다. 결과가 좋으니 다 좋다 할 수 있는가.

 

저 수많은 위험한 기술 가운데 하나라도 엇들어갔다면. 연습이야 많이 했겠지만 프로선수들에 비해 턱도 없는 연습량과 실전경험으로 과연 그런 만일의 사태에 대해 얼마나 대비가 가능했을까? 연습과정에서 이미 그렇게 다치고 있었는데. 수준에 맞지 않는 지나친 욕심이 아니었는가. 그것도 무척이나 위험했던.

 

물론 당사자로서는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을 것이다. 1년을 죽어라 고생했는데 그렇게 허무하게 시합을 포기하고 싶을까? 준비한 것을 다 보여주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강백호의 그 말처럼,

 

"내게 있어 최고의 순간은 바로 지금이다!"

 

그러나 그것을 용인하며 그대로 카메라에 담는 제작진이란. 그리고 그것이 단지 감동하고 마는 시청자들이란.

 

원래 감동이라는 게 그렇다. 결국 사람이 감동하는 것은 타인의 불행에 대해서다. 타인의 고통을 보면서 사람들은 감동을 받는다. 아무런 어려움도 없이, 아무런 아픔도 없이, 아무런 갈등도 없이, 그렇게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누구에게도 감동을 주지 못한다. 카타르시스란 참 잔혹한 것인지도.

 

어차피 안전문제에 대해서는 그동안도 몇 번이나 반복해 이야기해왔으니 더 길게는 않겠다. 그러나 아마추어 경기로서는 너무 넘치지 않았는가. 제대로 몸도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과욕을 부린 것은 아닌가. 그러도록 방치하거나 혹은 유도했던 제작진의 책임도. 만일 제대로 정밀검진을 받고 의사의 허락 아래 경기에 임했음에도 내보내지 않았다면 제작진의 잔혹극에 대한 욕심일 것이고, 정형돈의 상태가 어떤 극적 효과를 위해 과장된 것이라면 차라리 그것이 나을지 모르겠다. 그조차도 아니고 그냥 링 위에 올랐다면...

 

참 경기는 재미있었는데 말이지. 그렇게 그로기 상태가 되었다가 바로 살아나 역습을 가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어떻게 당시는 저런 것들을 리얼이라 여겼던 것일까? 더불어 그로기 상태에 놓인 정형돈을 손스타와 유재석이 함께 공격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이렇게 비열하고 잔인한 경기에서도 승자니까 - 주인공이니까 열광하는구나. 예전 인터넷에 떠돌던 영웅들에 의해 이지메당하는 괴수의 모습이 떠오른달까?

 

그래도 그동안 노력한 것이 보였다. 위태하고 불안했지만 어쨌거나 얼마나 그동안 연습했고 준비했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안한 것은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그리고 아마추어에게는 때로 너무 넘치는 도전이었기 때문에. 안쓰러워하면서도 감동이라 말하기에는 나는 그런 고통을 즐기는 취미가 없다. 왜 프로레슬러들은 그렇게 하나같이 근육질인가. 결국에 짜고 하는 게임이면서 그렇게 매일같이 운동하고 연습하는가. 그런 것들도.

 

아무튼 아무 일 없다니 다행이기는 하지만 지금이라도 정밀검진을 받아보는 게 어떨런지. 이미 받았다면 좋은 것이고. 혹시라도 인터뷰 내용 처럼 단지 휴식만 취하고 만 것이라면 혹시 모르니 병원에 가 보기 바란다. 뇌에 간 충격은 당장은 몰라도 언제 어떻게 터질 지 모른다. 언제나 건강이 최선이다.

 

재미있기로는 바로 뒤에 붙은 박명수의 게릴라 콘서트가 오히려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물론 만일 내가 록페스티벌에 갔다면 나는 바로 뮤즈 공연을 보러 갔을 것이다. 그리고 록페스티벌에 예능팀이 록도 아닌 예능하러 왔다는 사실에 약간은 불쾌해 했을지도 모르겠다. 뭐냐 그게?

 

하지만 그럼에도 공연을 준비하는 모습이랄지. 무대에 긴장하는 모습이랄지. 그리고 현장에서 호흡하는 모습이란 것이. 일단은 그 자리에 모인 관객이라는 것도 유재석의 말마따나 뮤즈를 포기하고 간 것이니까. 조금은 무한도전스럽지 않았던 간단한 막간극? 하지만 그런 소소함도 좋았다.

 

하여튼 나도 참 오지랖이라. 그저 예능을 예능으로만 즐기면 좋을 것을. 하지만 또 그동안 그렇게 많이 다치고 한 것을 알고 보니 그리 웃고만 지나갈 수 없었다. 무한도전 팬들이 보면 또 한 소리 하겠지만... 하지만 욕먹을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또 쓰고 마는 것은...

 

말하지만 경기 자체는 재미있었다. 출연자들도 그동안 노력한 것이 한 눈에 보였다. 다만 그들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과연 감동이라는 이름으로 그저 소비할 수만 있는가. 성격 탓이다. 그런 건 못 보는. 생각이 너무 많아도 예능이 재미가 없다.

 

무한도전 일곱 멤버들에게 그동안 수고했다는 말을 건네며, 제작진도 이런 위험한 미션을 감동으로 포장하는 것은 그만두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불어 시청자 역시. 다른 예능프로그램에서도 이러기를 바라는, 무한도전 프로레슬링편과 같은 "감동"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고통을 이겨내는 것은 감동일 수 있지만 고통을 만들고 방치하는 것은 단지 가학일 뿐이다. 고통을 이겨내는 감동을 즐기고자 고통을 일부러 만들고 방치하겠는가? 걱정이 깊은 특집이었다. 역시 오지랖이었다. 괜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