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끝났다. 길게도 끌어왔던 하모니 미션이.
아마 물을 것이다. 아직 합창대회가 남아 있지 않느냐. 그러나 미션이 무엇이던가. 하모니다.
박칼린도 말했다.
"우리의 목표는 대회에 나가 우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을 하는 것이다."
합창대회란 단지 그를 위한 동기부여에 불과했다. 합창대회에 출전한다. 그를 위해 합창을 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번 미션이 목표했던 바 - 하모니를 이루는 것이다.
모두가 다른 사람들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합창을 통해서 처음 만났고, 그만큼이나 서로에 대해 모르고, 개성 또한 강했다.
잘 하는 사람도 있었고 못 하는 사람도 있었고, 나이 많은 사람도 있었고 나이 어린 사람도 있었고, 남자와 여자와, 프로와 아마추어와,
개그맨도 있다. 예능인도 있다. 음악인도 있다. 누군가는 락음악인이고. 누군가는 뮤지컬을 하고. 누군가는 성악을 전공했고. 누군가는 대중음악을 하고. 어떤 사람들은 합창이 처음이다. 제대로 된 교육이나 훈련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전혀 맞는 것이 없었다. 그리 어색하고 그리 서툴고 그리 맞지 않아 불협화음을 내고 있었다. 과연 이들을 데리고서 2달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합창대회에 출전할만한 하모니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하지만 마지막 연습에서 모두는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두 달간의 기적을.
아니 기적이 아니었다. 그 모든 것들은 스스로 쟁취한 것이었다.
하모니를 목표로 했다. 그리고 하모니를 이루었다. 그러면 남은 것은 무엇일까?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있다. 모든 것을 이루었을 때 마지막 장면에 "The End"라는 자막이 나오고 그 나머지 이야기가 나오는 경우가. 에필로그라 한다. 나는 짜투리 이야기라고 부른다.
합창대회란 단지 에필로그에 불과할 뿐이다. 처음에 합창을 하게 된 동기였으니까. 합창을 시작하게 된 목적이었으니까. 그러나 하모니라고 하는 목표를 이룬 이상 그것은 나머지일 뿐.
이번주로 끝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 주 더는 너무 길었다. 더구나 합창대회 결과가 스포일러로 떠돌고 있고 보면.
하지만 어차피 합창대회란 나머지 아니었는가. 중요한 것은 과연 하모니를 이루었는가. 어떻게 하모니를 이루었는가.
멜로영화라고 해봐야 기껏 남녀가 서로 만나고 사랑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렇다고 두 사람이 만나 사랑을 하게 되고 행복하게 살았다더라... 그것으로 끝인가? 스포일러로 그 결말을 알게 되었어도 끝까지 지켜보고야 마는 영화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사랑을 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 그들은 마침내 사랑을 이루는가. 그것을 스토리라 하는 것일 테지만.
이것도 하나의 드라마다. 각본 없는 드라마. 합창대회라는 목표를 향해 서로 다른 - 어쩌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합창단을 만들고, 혹독한 연습과 훈련을 통해 성장하며 서로 어우러지는. 서로 어우러지며 완벽한 화음을 만들어내는. 합창대회야 그 결과일 뿐. 하모니를 이루었다는 것도 결과다. 그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박칼린이라는 훌륭한 리더와, 그러나 그녀의 지시를 충실히 따라 점차 자신을 성장시켜가는 단원들과,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의 부족한 점을 서로서로 채워나가는 어우러짐과.
MT란 그래서 하모니편의 백미라 할 만했다. 왁자했다. 시끄러웠다. 정겨웠다. 그저 수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소리의 어우러짐과 같은 마음의 어우러짐이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서로 가르치고 서로 배우는 신뢰와 의지가 있었다. 너와 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내가 "우리"로 함께 있음을 확인하고 있었다.
소소하게 이어지는 작은 이야기들과, 그리고 단원들의 또다른 구체적인 이야기들과, 그네들이 살고 있는 현실과 그 현실이 합창과 만나는 아주 작은 짜투리의 여유들이. 최성원과 신보라와 서인국과 배다해와 이슬과 기타 수많은 멤버들의 하찮을 수 있는 그런 이야기들이.
마지막 연습에서도 그들은 여전히 박자를 놓치는 이경규를 위해 모였고, 서로의 실수를 바로잡으며 보다 나은 하모니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합창의 본령,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들으라. 자신의 소리를 놓치지 마라."
적을 알고 나를 알면... 그러나 그것이 적이 아니라 친구이고 동료이고 가족이라면. 마치 가족처럼 언니라 부르고, 형이라 부르고,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고. 함께 밥을 나누어 먹고, 함께 어울려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상의해가며 연습도 하고.
이정진이 중간에 빠지고 만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아무리 노래를 잘 해도 그렇게 만들어온 그들의 역사에 그는 예외인 셈이다. 단지 결과를 위해서라면 이정진이 빠져서는 안 되었을 테지만, 합창이란 단지 노래를 잘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들까지 포함한 것일 테니까.
합창대회란 단지 결과일 뿐. 아니 합창조차도 그저 결과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어우러지며 하나의 조화된 소리를 내는가.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졌다면 당연히 이야기도 끝났다 할 밖에.
합창대회에서 몇 위를 하고... 나도 걱정했었다. 이미 결과가 나왔는데. 그러나 보는 내내 느낀 것은 그런 것이야 아무러면 어떻겠는가. 저렇게 하나로 어우러져가는 소리가 있지 않은가. 하나로 어우러져가는 마음들이 있지 않은가. 그것을 지금 보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역시나 드라마에서 빠질 수 없는 반전 - 솔리스트였던 배다해가 감기로 인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더니 마침내 화음으로 물러나고, 화음을 맡고 있던 선우가 솔리스트로 나서고. 배다해와 선우의 솔리스트 다툼은 남자의 자격에서도 꽤 화제거리가 되었던 터였다.
점차 어우러지며 발전해가는 과정에 한 번의 큰 변화가 주어지고, 그것은 극적인 장치를 만든다. 아마 솔리스트를 맡아 한 것보다 이번의 반전이 배다해에게는 더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사람들은 비극을 사랑한다. 강자보다 약자를 동정한다. 성공한 사람보다 아직 성공할 것 같은 사람을 응원한다. 배다해의 매력은 꽉 짜여지지 않은 듯한 허술함. 처음 나타났을 때도, 다음 모습을 보였을 때도 그녀의 모습은 그리 허술했다.
아마 일부러 그렇게 만들려 해도 그러기가 쉽지 않은 절묘한 반전이었다. 그것도 무리하지 않게. 전혀 어색하지 않게. 단지 서로의 처지와 역량에 맞게 역할만을 바꾸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긴장이 있었고 반전에 이은 성취와 이완이 있었다. 정말 잘 만들어진 드라마와 같다고나 할까?
예능이라기에는 일부러 웃기려는 이경규의 말이나 행동이 오히려 겉돌 정도로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유기적으로 이루어진다. 연습하는 과정에서 자연히 있을 수 있는 그런 헤프닝들이. 아직 서툴고 부족하기에 나타날 수 있는 그런 헤프닝들과 서로가 친해지면서 자연스레 우러나오는 넉넉함이. 굳이 웃기려 들지 않아도 그것만으로도 웃음은 충분치 않은가.
공감의 웃음일 것이다. 어디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을 것 같은. 우리도 MT가면 저렇겠거니. 남자끼리 MT를 가면. 여자들끼리 여행을 가면. 그렇게 자연스런 수다들과 전혀 어색하지 않은 어울림들이 마치 내 이야기처럼.
이윤석은 과연 탁월한 개그맨이다. 그가 보여준 피아노선생님을 사랑하는 가수의 상황극은 가히 그가 아니면 소화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윤석만의 특유의 어색함이 아니면.
그러고 보면 이번 회차의 웃음은 거의 이윤석이 담당한 것 같다. 어떻게 해도 어색하면서, 그러나 그에 구애됨이 없는 낙천적인 모습은 그가 왜 이윤석인가를 알게 한다. 그의 몸개그는 단순히 굴욕만을 보이는 다른 연예인의 몸개그와는 차별화되는 무언가가 있다. 아련한? 그리고 정겨운.
키가 작은 박슬기를 두고 장난을 치는 박칼린 선생이나, 안무를 가르치고 돌아서며 짐짓 땀을 훔치는 모션을 취해 보이던 것이나, 날벌레에 화들짝 놀라는 모습들, 그리고 MT에서 연습을 마치고 야식으로 닭을 돌리던 이경규와, 미션이 모두 끝났다며 손수 만든 요리를 전하던 박칼린.
"태풍 정도는 내가 해결합니다."
"박칼린 선생님의 우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겁니까?"
"아프지 마세요."
원래는 어제 썼어야 했던 내용이다. 그리고 오늘은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려 했었다. 하지만 어제는 약속이 있어 짧게 써야 했고, 오늘은 최종감상편은 아무래도 마지막 합창대회까지 끝나고 나서 종합해 쓰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는 생각에서. 스토리보다 텔링이다. 그 텔링의 중요함을 보여준 회차라 하겠다.
"사랑합니다."
박칼린 선생님의 그 한 마디. 그리고 제작진의,
"Thanks to You"
나 또한 전하고 싶었던 말이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벌써부터 다음주를 기다린다. 그때까지 하모니편에 대한 종합편을 짬짬이 가다듬어볼까? 생각할 것이 많다. 생각도 많고. 쓸 것들도 많고. 그만큼 재미있고 의미있다는 뜻이리라.
한 번 더 봐야겠다. 쓰고 나서도 또 보고 싶어진다. 남자의 자격이란 중독이다. 하모니는 더 큰 중독이다.
덧, 글을 그림에 맞추는가. 그림을 글에 맞추는가. 둘 다 동시에 충족하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덕분에 두 배의 시간을 들여 썼다. 영웅호걸은 단 10여 분만에 그림까지 다 넣었음에도.
남자의 자격은 그림을 넣는데 조금 더 고민을 해봐야겠다. 글이 너무 앞선다.
'남자의 자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자의 자격 - 놓쳤으면 아쉬웠을 2cm... (0) | 2010.09.19 |
---|---|
남자의 자격 vs 슈퍼스타K... (0) | 2010.09.15 |
남자의 자격 - 정겨움, 그리고 디테일함... (0) | 2010.09.12 |
남자의 자격 - 박칼린의 가르침... (0) | 2010.09.09 |
남자의 자격 - 하모니가 여심을 잡다! (0) | 2010.09.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