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스포일러가 문제였다. 하지만 그 스포일러 때문이었다.
내가 남자의 자격을 좋아하는 이유,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도대체 저 인간들 제대로 하는 게 무어냐? 분명히 미션이 주어졌는데 그것을 훌륭히 달성해낸 경우는 그리 없다. 그래서 무한도전과 비교하며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끝이 없다.
하지만 남자의 자격이 끝을 보자는 프로그램이던가. 왜 남자의 자격에 그리 공감할까. 누구나 못 할 수 있다. 처음 하는데 서툴 수 있다. 나이도 많고, 몸도 부실하고, 그래서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고,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도 저만큼 할 수 있다. 단지 한다는 그 자체가. 하고자 하는 그 마음이. 그 과정에서의 디테일함이 우리의 일상과 닿아 있기 때문이었다.
결과가 아니었다. 항상 과정이었다. 그 과정에서의 소소한 감정의 흐름들이. 놀라고 당황하고 곤란해 하면서도 하나씩 도전하고 이루어가는 모습들이. 더 빨리 더 일찍 골인해서가 아니라 서로 초코파이를 나눠먹고, 등을 두드려주며, 서로의 위치를 묻고 돌아보던 그 모습들이 좋았던 것이었다.
늘어지지 않는가. 한 주도 아닌 두 주. 그러나 정작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아, 이것 놓쳤으면 꽤나 아쉬웠겠구나. 그래 이런 것들도 있어야겠다. 이런 장면들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함께 버스를 타고 거제도로 가면서 부르던 넬라 판타지아는 정말 감동이었다. 버스 안에서 이동하는 동안에도 하나가 되어 부르는 그 목소리들이란. 하모니는. 김태원에 의해서, 그리고 이윤석의 지휘로, 이경규의 추임새까지 더해져서, 좁은 버스 안에서 하나로 어우러지며 멋진 소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마치 여행가는 버스 안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듯, 합창대회를 위해서가 아닌 진정한 즐거움을 위해서. 진정으로 즐기며 부르고 있었다. 아마 그것이 하모니였을 것이다. 최재림과 박칼린마저 감탄했던.
소리가 하모니를 이루었다면 이제는 사람이 하모니를 이루고 있다. 버스 안에서의 유쾌한 합창에 이은 숙소에서의 파트별 연습. 마침 여행의 피로도 겹쳐 도저히 연습때와 같은 소리가 나오지 않아 당황하고 긴장한 터였다. 그래서 모여서 연습을 하는데... 각자의 매력들이, 개성들이 그렇게 드러난다.
배다해가 꽤 과격한 성격이었구나. 선우는 확실히 배다해의 동생이었고. 역시나 개그맨인 박슬기와 정경미. 돼지소리를 내며 발성을 연습하고. 역시나 몸치인 김태원과 이윤석, 김국진과 이경규. 이들이야 말로 가장 초짜일 터였다. 오디션도 없이 남자의 자격 멤버라는 이유로 합류했던. 가장 큰 구멍이었고, 여전히 가장 큰 불안요소였고. 가장 예능다웠다. 원래는 이런 모습들이 남자의 자격 하모니편을 채워야 했을 테지. 배다해가 선우의 목을 잡는 장면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뜻밖이었고 그런 만큼 인상깊었으며 털털하고 스스럼없는 매력이 있었다. 이만큼이나 그들을 격의없이 가까워져 있었다.
어찌 보면 여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은 하모니를 만드는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오로지 합창연습에만. 그렇다 보니 가장 중요한 소프라노 솔로의 배다해와 선우만이 부각될 수밖에 없었고, 박칼린과 최재림이 그 중심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동안에도 연습과정에서의 그러한 소소한 웃음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렇더라도 비중은 합창연습에 더 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어느 정도 하모니가 만들어졌으니까. 더 이상 연습에 안달하지 않아도 되니까. 미션은 끝났다. 이제는 즐길 차례다. 이제까지 잘 눈을 돌리지 않았던 그런 소소함들이 바로 눈에 들어오게 된다. 왁자하고 개구지고 다정다감한. 그리고 여기서 빛을 발하는 것은 이경규의 뻔뻔함과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이윤석의 몸개그, 여기에 김태원의 마이페이스도.
이윤석은 확실히 자기가 주인공이 되는 것은 못해도 남을 돋보이는 역할을 잘 한다. 버스 안에서도 합창에서 이윤석은 주인공이 아니었다. 하지만 적절히 박칼린을 흉내내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너무나 자연스런 이윤석만의 몸개그도 남자의 자격이 다큐로 흐르는 가운데 항상 웃음의 포인트가 되어 주었다. 임팩트야 최성원의 "와우!"가 더 컸지만 연습하는 내내 보여준 그 엉성한 몸개그는. 그리고 오늘은 제대로 김태원과 이경규마저 합류했다. 참 오랜만에 남자의 자격 멤버들이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었다. 확실히 김태원과 이윤석, 이경규 세 사람의 토크는 남자의 자격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알게 한다.
마지막 연습이 끝나고 북받치는 - 아니 인터뷰 그대로 이제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연습을 끝낼 때마다 울컥하더라는 그런 이야기들이. 어느새 눈물이 글썽이고, 끝내 눈물이 흐르고... 가족이 피로 이어졌다면 또다른 가족은 땀과 눈물로 이어진다. 그동안 흘린 땀과 그들로 인해 흐르는 서럽지 않은 눈물이.
그리고 대회 당일날 합창대회장에서 보여주었던 설레임과 두려움. 그렇다. 초짜들이라는 그대로 처음 합창대회에 출전하는 경우라면 무척이나 설레고 두려울 것이다. 합창을 경험해 보았다면 기억이 떠올라 또 설레고 두려울 것이다. 감정이 고조되고. 과연 그런 감정의 고조 없이 합창에 임했다면. 마지막 연습을 하며 보여지는 그들의 개성과 매력들이, 그리고 연습을 하면서 북받쳐 흐르던 눈물들이, 그리고 합창대회장에서의 그런 긴장감들이, 그런 모습들이 없이 그저 합창대회에 나가 노래만 불렀다면 과연 하모니란 그렇게 절실하게 느껴질 수 있었겠는가. 마치 인터넷에 도는 동영상으로 본 합창대회의 장면들이 오버랩되어 지나가는 듯한 그런 디테일함이 그곳에 있다. 저들은 저런 과정을 거쳐서 무대에 섰구나.
다른 합창팀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좋았다. 그러고 보면 합창대회의 주인은 그들 합창단들일 것이었다. 남자의 자격 합창단은 단지 그들의 잔치에 초대된 손님들일 터였다. 손님이 주인을 넘어서서는 되겠는가. 어제도 무한도전에서 일곱 남자들은 한 시골마을에 들러 철저히 손님이 되어 있었다. 손님이 되어 주인을 떠받치고 있었다.
하모니라는 것이 단순히 남자의 자격팀만의 하모니를 말하는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60대 이상의 노인들로 이루어진 합창단 - 모두가 여성인 가운데 홀로 한 귀퉁이에 서 있는 할아버지. 남자의 자격 팀들이 환호하고 있을 때 나도 박수를 치고 있었다. 주제가 하모니였다. 하모니란 남자의 자격 합창단만이 독점하는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지루할 수 있지만 그런 의미들을 곱씹어 본다면 그것도 의미있지 않겠는가.
확실히 예술 하는 사람들이라 감수성이 저만하다. 그렇게 눈물을 흘릴 일일까? 하지만 그렇게 감수성이 예민하고 쉽게 감동하고 하니 음악도 하고 연기도 하고 할 수 있을 터다. 자신이 감동하지 못하는데 어찌 다른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을까? 감동할 수 있었으니 남을 감동시키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어떤 눈물보다도 순수해 보였다. 서러워서도 아니고, 아파서도 아니고, 감동을 쥐어짜내려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북받쳐서. 바로 그런 것도 하모니가 아니겠는가. 노래를 부르는 합창단과 그를 보며 공감하는 관객과.
늘어진다? 분명 너무 길다. 지난주에 끊었으면 딱 좋지 않았을까. 하지만 숨겨진 1인치를 찾았듯 하마트면 놓칠 뻔 했던 2cm를 볼 수 있었다. 어쩌면 없어도 상관없었을 것 같은. 그러나 있음으로써 한결 풍성해지는.
그랬겠지. 저런 것 없이도 바로 합창대회 출전해서 노래 부르고 상 받고. 별로 크게 상관은 없을 것이다. 지난주 하모니의 미션은 완료되었다 했으니까. 하지만 없어도 상관없다고 있는 것마저 의미없는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그것이 주가 되지는 못해도 한결 맛을 살려주는 양념과 같은. 분위기를 살려주는 고명과 같은. 별 것 아닌 차를 마시는 한 귀퉁이에 놓인 예쁜 초와 같은. 곱게 접힌 냅킨같은 바로 그런.
원래 그런 게 남자의 자격이었다. 무언가 목표를 정하고 이루고. 그 결과를 보자는 게 아니었다. 그 과정이었고 그 디테일이었다. 그로부터 오는 공감이었다. 큰 재미가 아니라 작은 공감할 수 있는 웃음이었다. 허름한 선술집 벽에 쓰여진 낙서같은 그런 웃음이었을 터였다.
전혀 늘어지지 않았다. 지루하지도 않았다. 정말로 남자의 자격스러웠던. 걱정따위는 이미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뒤다. 웃었고. 기뻤고. 즐거웠고. 어느새 함께 공감했고.
이래서 내가 남자의 자격을 본다. 멋졌다. 훌륭했다. 만족스러웠다. 남자의 자격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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