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 하모니편 보기 - 하모니라고 하는 드라마...

까칠부 2010. 9. 20. 21:39

아마 관점의 차이일 것이다. 합창을 함으로써 무엇을 이룰 것인가. 합창을 하게 된다면 과연 그 안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간단히 상상을 해 보자. 일곱 남자가 있다. 합창이라고는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남자들이다. 어느날 갑자기 합창을 해 보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됐다. 그러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먼저 지휘자를 구해야겠지. 멤버도 뽑아야 할 것이다. 문외한들이니만큼 자신들을 이끌 지휘자는 확실해야 하고, 멤버들도 실력이 있는 쪽이 나을 것이다. 실력있는 지휘자의 도움을 얻고, 오디션으로 재능과 실력을 갖춘 멤버들을 뽑고... 당연히 합창의 중심은 지휘자와 새로운 멤버들이 될 터다. 합창이기 때문에 보다 실력있는 멤버들이 중심에 서게 될 터다. 그러면 나머지는?

 

실력과 재능을 갖춘 멤버들이 모여 혹독한 훈련 끝에 마침내 합창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그런 건 스포츠 드라마에서나 쓰일법한 스토리고. 원래 주인공들이 합창에 문외한들이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인공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대로 합창을 들려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성장만 할 수도 없다. 항상 열심히만 할 수도 없다. 그런 건 주인공의 몫일 터였다. 합창에서의 주인공은 지휘자와 실력있는 누군가일 테지만, 드라마에서의 주인공은 바로 그들, 합창이라고는 해 본 적 없는 문외한들일 터다. 실망하고 좌절하고 뒤로 물러서기도 하고 포기하기도 하고 갈등도 하겠지.

 

과연 어떤 드라마가 만들어질가? 문외한들이 성장하여 누구도 넘보지 못할 탁월한 실력으로 전국대회에서 우승하는 모습? 세계대회에 나가 최고의 합창단들과 겨루는 모습?

 

물론 그런 것도 재미있기는 하다. 지옥훈련 끝에 문외한들이 그래도 어디 내세울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다른 이들과 경쟁한다. 하지만 리얼리티가 없다. 리얼리티를 살리자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그동안에도 역시 그런 작품들이 많았다. 성공이 아닌 그 과정을 그리는 작품들이.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에 집중하는 작품들이. 결과는 단지 주어지는 훈장일 뿐. 심지어 결과조차 없이 그 과정만으로 이루어지는 이야기들이다.

 

어려서 보았던 어느 야구드라마였다. 리틀야구였는데, 동네 꼬마녀석들 아홉명이 어느날 리틀야구단을 만들어 꾸려나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첫시합이 무려 27대 0 콜드게임. 마지막 시합에서도 9대 1로 큰 점수차이로 지고 있었다. 어디 나가서 우승하거나... 없었다. 단지 9대 1이라는 점수차이로 좁히기까지. 그들이 제대로 된 시합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 그렇게 되기까지의 좌절과 분노와 절망과 우정과 희망이라고 하는 다양한 감정들이 그 안에는 디테일하게 담겨 있었다.

 

아마추어들이 합창단을 만들면 이렇게 되겠지? 아마추어들이 합창단을 만들어 합창대회에 나가려면 이럴 것이다. 경력자도 아닌 초보자들이 합창단을 만들려면, 그러고서 대회에 나가려 하면 이런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지난주 하모니가 만들어졌다 미션이 끝났다며 선언하고서는, 정작 거제도에 도착해서 다시 흐트러진 모습에 당황해하는 모습들 그대로.

 

원래 그렇다. 연습때 한 번 완성되었다고 그것이 바로 실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한 번 제대로 만들어지고 나면 방심하게 되고, 흐트러지게 되고, 더구나 오랜 이동에 지치고, 긴장감에 눌리고, 전처럼 되지는 않는 것이다. 그것이 더욱 당황하게 만들고, 불안하게 만들고, 긴장하게 마늘고,

 

합창대회장에서 연습하는 다른 팀들을 보며 잘한다면서 부러워하고 두려워하는 모습같은 것도 그런 것이다. 다른 팀들의 합창하는 모습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숙소에 도착해 파트별로 연습하면서 여전히 모르겠는 부분들을 마지막까지 묻고 고치고, 그럼에도 도저히 안 되는 것들에 대해 민망해 하고 난감해 하고, 그러면서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연습하는 모습들이. 그 과정에서의 왁자한 장난이라든가, 짓궂은 놀림같은 것들도. 정이 쌓이고, 마음이 쌓이고, 복받쳐 눈물도 흐른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남자의 자격 "하모니"편에서 주인공은 다름아닌 합창이라고는 해 본 적 없는 일곱 남자들이었다. 그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합창이기에 실력이 뛰어나고 리더십이 뛰어난 박칼린과 배다해, 선우등이 돋보였던 것이었다. 왜? 문외한이니까.

 

하지만 과연 그들로써 대회에 나가 어떤 결과를 내는 것이 목표인가. 나중이라면 모를까 당장에 문외한인 일곱남자가 추구하고자 할 것은 하모니일 터였다. 팀을 만드는 것. 합창단을 만드는 것. 그렇다면 드라마도 그 사이의 과정에 집중해야겠지. 결과가 아닌 그 과정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가.

 

아마 여기에서 차이가 나는 것일 게다. 전혀 늘어짐 없이 여전히 그 과정에서의 소소한 이야기들에 울고 웃으며 즐거워하는 사람들과, 이미 결과도 발표되었는데 너무 늘어진다는 사람들과.

 

어떻게든 결과를 보고 싶은 것일 테고, 그리고 한 편에서는 결과야 상관없이 그 안에서의 이야기들을 보고 싶은 것일 테고. 남자의 자격 멤버들에게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도 그래야 결과가 나올 테니까. 반면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조차 그런 디테일의 한 부분으로 보고 있는 것이고. 합창이 중심인가. 일곱 남자가 중심인가. 누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가. 누구의 미션인가.

 

원래 남자의 자격에 남자들이 - 특히 아저씨들이 그리 공감하고 나섰던 것도 바로 그런 부분에서였다. 남자의 자격 멤버들이 매번 잘했다면 과연 아저씨들이 그리 남자의 자격에 공감하고 했을까? 나와 마찬가지로 서툴고, 나와 마찬가지로 어색하고, 나와 마찬가지로 어딘가 비어 보이고,

 

하모니편을 보면서도 일곱 남자가 금새 실력을 키워 다른 멤버들과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다면 그만큼 마음의 거리는 멀어졌을 것이다. 몸치이고, 박치이고, 음치이고. 하지만 그들도 하니까. 그들도 하고 있으니까.

 

그런 것이 리얼버라이어티 아닐까. 바로 그런 것이 리얼버라이어티가 만들어내는 각본 없는 드라마일 것이다. 나도 저들과 같다. 저들도 나와 같다. 꾸며지지 않은, 바로 내 곁에서 어디선가 반드시 있을 것만 같은 그런 일상의 모습들이. 그래서 더 잘하고 더 훌륭한 다른 누구보다도 더욱 그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끄는 것이다.

 

말 그대로다. 리얼버라이어티란 드라마다. 상황만 주어지고 각본 없이 출연자들이 각자 자기의 역할이 되어 만들어가는 드라마. 더 대단할 것도 없고 더 특별할 것도 없이 있는 그대로. 그대로의 모습으로.

 

50대 아저씨라면 이경규 같겠지. 40대 중반에 처음 합창을 한다면 김국진 같지 않을까? 몸이 부실하니 김태원일 것이다. 30대 후반에서는 이윤석도 있다. 전혀 주인공이 아님에도 결국에 주인공일 수밖에 없는. 주인공이 아닌 이들이 주인공이라면 그런 모습들이 더 어울릴 것이다.

 

합창대회 나가려면 저렇게 해야겠구나. 합창을 연습한다면 저렇게 하는 것이겠구나. 그렇게 한 데 어우러지는 과정들과 그런 감정의 흐름들에 대해서도. 역시 더 대단할 것 없는 일상의 모습들로.

 

충분하지 않을까? 열혈드라마가 아니다. 열혈이 되기에도 나이들이 너무 많다. 그들은 현실의 존재이며, 현실의 리얼리티로써 보여지고 있다. 그들이기에 가능한 것이 있지 않을까? 바로 그런 그들이기에 가능한 모습이라는 것도 있지 않겠는가? 그런 모습들을 보고자 하는 것 아니었을까?

 

이해는 한다. 불만이야 없을 수 없겠지. 하지만 이렇게도 볼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것이 이제까지의 남자의 자격이었고. 남자의 자격이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이야기일 것이고.

 

앞만 보고 달리다가도 가끔은 멈추어 주위를 둘러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멈추어 자신이 선 자리를 살피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그런 드라마일 것이다. 남자의 자격 하모니편이란. 그렇게 보자는 것일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