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반전이었다. 그저 합창대회 모습을 보여주겠거니. 하지만 대회 당일 아침에 막 일어나 메이크업을 하고 단복을 갖춰입는 장면에서 새로운 설렘의 시작을 경험할 수 있었다.
얼마나 떨리겠는가. 얼마나 두려우며. 그리고 아쉽고. 설레고. 긴장되고. 저 박칼린 감독마저 긴장해 떨고 있었다. 화면 너머까지 전해지는 듯한 그 떨림이. 떨림을 이겨내려 서로 맞잡은 손들이. 함께 끌어안고 의지하고 있는 그런 모습들이.
항상 느끼는 거다. 이윤석이야 말로 남자의 자격의 주인공이다. 바로 그때 필요한 감정들을 이윤석은 가감없이 전해준다. 마지막 리허설을 마치고 박칼린 앞에서 사시나무처럼 손을 바들바들 떠는 모습은 나 자신의 모습이 아닐까. 누구나 그 자리에서는 그런 모습이 되지 않을까.
확실히 이래서 연륜이라는 것이로구나. 관객을 믿으라. 관객에게 자신의 목소리가 전해질 것을 믿으라. 무대에만 26년을 서 왔던 김태원의 가르침이다.
자신이 즐겨야 관객들을 잡을 수 있다. 먼저 스스로 즐기라. 데뷔 30년차가 되어가는 이경규옹의 말씀이다. 누가 단장 아니랄까봐 앞장서서 멤버들을 다독이며 긴장을 추스려나간다.
과연 그런 과정 없이 눈물은 설득력이 있었을까? 대회가 끝나고 끝내 선우를 선두로 눈물을 터뜨렸을 때 - 아니 이미 선우는 합창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감정이 북받쳐 눈물을 그렁이고 있었다. 눈물을 참아내기가 그리 힘들어 했었다. 최재림의 눈물처럼.
그동안의 시간들이 있었다. 그동안의 노력들이 있었다. 그리고 함께 쌓여 온 마음들이 있었다. 꿈이 있었고, 열정이 있었고, 그것을 함께 나누던 마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보여주려는 순간이다. 모두의 앞에, 아니 자신 앞에 그것을 보여주려는 순간이다.
마침내 합창이 끝났을 때 터져나온 눈물은 그 마음들인 것이다. 그 시간들과 그 노력들과 그 꿈들과 그 열정과 그리고 자신을 모두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들. 하모니란 그렇게 목소리만이 아닌 사람까지 이어주는 것이다. 단원들은 물론, 그 자리를 함께 하던 관객들까지도.
오로지 한 가지 최선을 다 할 수 있었던 사람들만이 눈물을 흘릴 자격이 있다. 오로지 자신의 꿈을 위해 최선을 다 했던 그 눈물만이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다. 어느새 박칼린마저 눈물짓게 만들던 서두원의 눈물처럼. 그의 눈물은 그렇게 진했다. 울컥 함께 울고 싶어질 정도로.
눈물이 터져 나오고, 한데 어울려 울고, 그것은 바로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쓸모없는 시간이 아니었다. 왜 굳이 합창을 앞두고 리허설을 한 번 더 보여주어 김을 빼는가? 바로 직전 리허설에서까지 여전히 불안한 채 한결 긴장하고 있던 모습들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렇게 무대에 올랐고 그들은 노래를 불렀다. 하모니를 이루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마치 영화같았다. 맞다. 영화였다. 단지 합창대회에 나가 우승하는 소년만화가 아니었다. 합창대회를 통해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그런 영화가 아니었다. 합창을 통해 성장해 나가는. 합창을 통해 서로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드라마였다. 하모니라고 하는 드라마.
솔직히 마지막은 조금 사족이 아니었을까. 아니더라도 충분히 감동적이지 않았을까. 여운을 남기는 쪽이 좋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만큼 오고 났으면 뒷풀이라는 것도 있는 것이니까. 이제껏 한 번 단독샷을 받아보지 못한 출연자들에 대해서도 그들만을 위한 시간과 공간을 허락할 필요가 있다.
One For All, All For one.
반주며 안무며 박칼린 선생님의 대단한 부하들과 함께.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이 아니겠지요.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일 거야.
함께 했던 시간은 이제 추억으로 남기고
서로 가야 할 길 찾아서 떠나야 해요."
영화는 끝나고, 꿈도 깨어나고, 이제는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 아쉬움들을. 이제까지 함께 꿈을 꾸어 온 이들을 위해서. 박칼린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를 위해서. 지켜보던 이들까지도.
사람의 마음은 항상 빈 자리를 찾아 들어간다. 부족한 자리. 남는 자리. 딱딱 맞아 떨어지면 무슨 감동이 있을까. 늘어짐이 여운이 되고 여백이 되고 마음을 머물게 한다. 남자의 자격다운. 감동은 그렇게 찾아온다.
배다해와 선우의 상황극이 참 재미있었다. 그만큼 가깝다는 뜻이겠지. 예능이라기보다는 어울려 노는 것이었다. 원래 그렇지 않은가. 친한 사람들끼리도 모이면 가끔 그렇게 상황극 하며 논다. 하나는 일진 언니가 되고 다른 하나는 그에 주눅든 후배가 되고.
"꼭 한 번 이런 것 해 보고 싶었어!"
해맑게 웃는 모습에서. 함부로 대하는 듯 거친 말과 행동과 그 끝에 터져나오는 웃음이라는 것이. 아마추어들도 이렇게 되는구나. 하지만 그것은 그만한 신뢰가 형성되었기 때문일 테지.
아마 오늘 방송분의 주제가 아니었을까. 남자의 자격을 통해 처음 만난 사람들이 어느새 저런 과격한 놀이를 웃으며 할 만큼 가까워졌다. 미리 맞추지 않고서도 자연스럽게 나올 정도로.
사이사이 보이던 작은 장면들. 서로 손잡고, 서로 대화를 나누고, 서로 끌어안고, 서로 의지하며, 서로가 긴장하고, 서로가 격려하며...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던. 하모니란 곧 감동일 것이다. 멋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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