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놀러와 - 세시봉 친구들과 예능감...

까칠부 2010. 9. 22. 05:46

아니나 다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것을 가지고도 예능감이라 부르는구나.

 

물론 원래 김세환은 유쾌한 사람이었다. 농담도 잘 하고, 넉살도 좋고. 사람이 선하다.

 

하지만 송창식과 윤형주에게 예능감이라... 그동안 여러차례 방송 나와서 보여준 모습을 떠올리면...

 

아마 단지 그냥 논 것에 불과하지 않았을까. 조영남이라는 형이 있고, 그 아래 송창식과 윤형주라는 친구가 있고, 막내 김세환이 있었고. 40년이라지 않은가.

 

아무리 재미없는 사람도 마음 맞는 친구와 함께 있으면 재미있어진다. 거리가 사라지고 마음의 벽이 사라지면 언제 그랬냐 싶게 농담도 하고 장난도 치고 그렇게 즐거워진다. 보기에도 즐겁다.

 

그런 것이었다. 조영남은 괜히 형 노릇 하고 싶었던 것이고, 송창식과 윤형주는 그런 조영남을 존중하면서도 놀리고 싶었던 것이고, 막내는 언제나 형들의 놀림감인 것이고.

 

원래 유쾌한 사람이던 조영남이나 김세환이나, 하지만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있다면 그리 딱딱한 표정이 어울리는 윤형주도 농담 몇 마디는 던질 수 있지 않겠는가. 독하게 쏘아 붙일 수 있는 것도 그간의 믿음이 있으니까. 그런 정도는 괜찮으리라는 격의없음이 누구 못지 않은 독설을 가능케 했던 것이었다.

 

전반적으로 과연 예능을 하려 했는가. 유일하게 있었다. 조영남. 하지만 오히려 예능을 하려 했기에 그것이 어색해서 웃겼던 것이 조영남이었다. 예능이라고 이름이 바뀌고 한 번도 출연해 본 적 없다는 송창식, 아마 윤형주도 비슷할 것이다. 김세환은 의외로 여기저기 자주 얼굴을 비쳤으니. 아니 무엇보다 도대체 저 사람들이 예능 나와서 사람들 웃긴다고 뭐 더 생기는 게 있겠는가?

 

벌써 환갑이 넘었고, 못 이루어 본 것 없이 최고의 순간을 누려 본 이들이다. 이제 와서 새 앨범을 홍보하겠는가? 새삼스레 인기를 탐하겠는가? 뭘 더 이루어 보겠다고. 예능을 하는 것도 욕심이 있어야지.

 

그냥 논 것이었다. 오랜만에 방송에서 친구들을 만나서. 사적인 자리에서 만나는 것과 방송에서 만나는 것이 같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오랜 친구들이 만나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그러나 오랜 시간을 곰삭은 관계가 그렇게 매끄럽게 맛깔나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야기보다 더 감동적인 노래들과.

 

내가 항상 주장하는 예능이론이다. 사람이 좋아서 웃는 것이 예능이다. 억지로 웃기려 해서가 아니라 단지 사람이 좋아서, 사람이 매력적이어서 웃음을 짓고 마는 것이 예능이다.

 

억지든 어쨌든 웃음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는 더 자연스런 웃음이라는 것이. 그가 어떤 사람인가 그 매력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남자의 자격이 강한 것이 바로 그런 부분일 것이다.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살아온 그들이기에 가능한 다채로움과 굳이 꾸밀 필요 없이 보여지는 그런 자연스런 모습들이 좋은 것이다.

 

내가 주장하던 예능이론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예능감이라는 단어로 단정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이 보였다. 아직까지도 형이고, 아직까지도 막내고, 그러나 어느새 나이를 잊고 친구가 되어 버린 그들의 스스럼없고 격의없는 모습들이 굳이 계산하지 않고서도 웃음을 자아낼 수 있는.

 

앞으로도 다른 예능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하지만 그러면 또 격이 떨어지겠지? 소중한 시간은 그것이 한 번이기에 더 소중한 것이다. 매번이면 소중할 것도 없겠지. 소모네 바닥이네 하며 찧고 떠들어댈 인간들도 보기 싫고. 예능감이더라도 또 그대로도 좋지 않겠는가.

 

하여튼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게 매번 보며 웃고 감동하고 있다. 왁자하게 웃고 눈물을 그렁이며 감동하고. 오래 묵은 술처럼 향기만으로도 취하게 만들어버리는 그런 깊이가. 넓이가.

 

MC인 유재석조차 달리 할 것이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그들만을 위한 무대였던. 아니 그런 것조차 유재석의 역량일 테지. 자기가 주인공이 되어야 할 때와 조연으로 머물러야 할 때를 아는. 따라 부르고 싶은데 차마 망칠까봐 입만 뻐끔거리는 모습에서 새삼 유재석이라는 사람을 보게 되었다.

 

아마 앞으로 몇 년은 이와 같은 예능은 없지 않을까.

 

"나보다 먼저는 죽지 마!"

"그러면 같이 죽지 뭐. 까짓거"

"그건 한 번 생각해 볼만 한데..."

 

아무렇지 않게 흘려듣는 그런 이야기들이. 그들의 삶만큼이나 더께더께 쌓인 정들이 마음들이. 그리고 그들이 들려주는 음악이. 음악을 좋아한다면 더욱 소중하고 귀한 시간이 아니었겠는가.

 

마침 송창식 노래도 흐르고. 놀러와 보고 바로 음원사이트서 찾아 듣고 있는 중이다. "한번쯤""피리부는 사나이""우리는""참새의 하루"... 내가 그리 좋아하며 듣고 따라부르던 노래들. 고양이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고 인적 없는 새벽의 밤거리가 어쩌면 더 어울리는지 모르겠다.

 

10년 뒤에도 오늘과 같이. 그때도 지금과 같이. 감동을 예약할 수 있었으면. 부디 건강하시길.

 

사람이 아름다워 아름다웠던 프로그램이었다. 음악이 아름다워 아름다웠던 시간이었다. 영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