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B사이드...

까칠부 2010. 9. 23. 19:00

싱글이라는 게 음반에 노래 한 곡 넣어 팔기에 싱글이다. 그런데 LP는 앞뒷면 양면으로 음악을 넣는 게 가능하다. 카세트테이프도 마찬가지다. 아깝지? 양면에 음악을 넣을 수 있는데 달랑 노래 하나 넣으려니.

 

그래서 앞면인 A면은 말 그대로 팔아먹기 위한 싱글로, 그리고 나머지 B면에 대해서는 그냥 아무거나 짜투리로. 음반작업하던 가운데 버려지는 노래일 수도 있고, 나름대로 자신은 있는데 상업적인 이유로 밀린 노래일 수도 있고. 어차피 파는 것은 A면이니까.

 

앨범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앨범이란 한 장의 음반에 여러곡을 담아 내놓는 것이니까. 어디나 타이틀곡만 듣는 사람들이 있고, 따라서 팔아먹는 용도로는 타이틀곡 하나만 괜찮아도 좋은 것이다. 나머지야 대충 분량만 채우면 되는 것이고.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는 타이틀곡 하나만 들으려는 대중이 그리 많았고, 음반제작자도 타이틀곡 하나만 신경썼기에 나머지 노래들은 말 그대로 "까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워낙에 대중으로부터도 외면받고, 음반제작자들로부터도관심을 받지 못하다 보니, 이 B사이드는 전적으로 음악인의 공간으로 남는 경우가 또 적지 않았다. 이를테면 신중현이 The Men 시절 자신의 음반에서 B사이드 전체를 "거짓말이야" 잼으로 꾸민 것처럼.

 

무려 20분이 넘어가는 잼이었다. 그것을 도대체 누가 듣는다고? 하지만 A사이드에 "내곁에 있어주오"와 "거짓말이야"가 있었으니까. 지연의 "그대 있는 곳에" 앨범에서도 B사이드에서는 "안갯속의 여인"이라는 11분이 넘어가는 연주곡이 있었다. 어차피 A사이드의 타이틀곡을 들으면 되니까 B사이드는 들을 사람만 들으라. 그렇게 오히려 음악인의 음악적 역량과 지향이 담긴 노래가 심심찮게 포함되는 것이다.

 

사실 B사이드라는 말이 많이 쓰이는 것도 이런 부분이다. 달리 바꾸면 숨은 명곡 정도? 음반을 듣다 보면 타이틀곡은 아닌데 왠지 더 끌리는 음악들이 있다. 더 독특하고 더 개성이 있으면서도 완성도라든가 지향점에서 생각지 않은 만족을 주는.

 

그래서 가끔은 정작 A사이드에서가 아닌 B사이드에서 히트곡이 나오기도 한다. 노사연의 "만남"이 그런 경우였다. 원래는 다른 노래가 히트곡이었다는데. 부활 3집에서도 원래 타이틀곡으로 밀려 했던 노래는 A사이드의 "소나기", "사랑할수록"은 당시 녹음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곡이라 B사이드에 머물고 있었다. 길고 어렵고 무겁고 과연 대중음악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 하지만 대박.

 

앨범 듣는 즐거움이기도 하다. 분명 상업적인 목적에서 넣어졌을 타이틀곡을 지나 순수하게 음악인 자신의 열정과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음악이라는 것이. 요즘처럼 단지 곡단위로 MP3로 다운받아 듣는 경우에는 그다지 즐길 수 없는 즐거움이기도 하다. 하긴 MP3가 아니어도 어차피 예전에도 굳이 앨범 전부를 듣고 하지는 않았으니까. 그래서 B사이드라는 것도 가능했던 것이고.

 

물론 지금에 와서야 LP가 아닌 CD니까. A면과 B면이 나뉜 게 아니라 CD 한쪽 면에 모두 들어가 있다. 굳이 A사이드 B사이드 나눌 것 없이, 그래서 정작 타이틀곡이 한참 순위에 밀려 들어가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타이틀곡이라면 A사이드 정도에 위치하는 것이 지금도 일반적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B사이드라는 말이 쓰이는구나. B사이드란 이제 카세트테이프도 나오지 않아 거의 쓸 일이 없을 터임에도. 바로 관용어구라 하는 것이라. 처음에는 LP의 B사이드를 뜻했지만, 지금은 단지 음반 가운데 타이틀곡 이외에 상업적인 목적을 띄지 않은 까는 노래라는 뜻으로. 그 가운데 좋은 노래가 있으면 더욱.

 

다만 차이라면 최소한 B사이드라는 말을 쓰려면 음반을 내놓는 자신이 음반작업에 대해 어느 정도 영향력을 가져야겠지. 음악인의 의지가 담겨 있지 않은 B사이드가 B사이드인가. 하긴 그래도 프로듀서나 작곡가의 의지라는 게 있을까? 기획사의 의지도 들어 있을 테고. 그래도 역시... 아이돌 음반이나 기획사에 의해 기획된 음반에서 B사이드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아무튼 남들 모르는 나만의 명곡을 찾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다. 나는 좋은데 다른 사람들은 전혀 알지 못한다. 뿌듯한 우월감? 그것이 내가 지금도 앨범단위로만 음악을 듣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B사이드의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