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록이 한국대중과 유리된 이유...

까칠부 2010. 9. 28. 07:17

원래는 한 두어개 쓰고 바로 결론을 내리려 했었다. 그런데 뭐 이리 쓸 게 많은가? 하나짜리로 대충 정리해 쓰려던 것을 계획을 바꾸기를 잘했다. 어디까지 가나 한 번 볼까? 결론은 이미 나와 있다.

 

아무튼 어느 앨범에선가 잡지에선가 그런 문구를 본 기억이 있다. 만화일지도 모르겠다.

 

"록의 제단에 바쳐진 순교자들에 대해서..."

 

예전 지인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차라리 누구 한 사람 죽었다면..."

 

언젠가도 썼지만 비극은 신화를 만든다. 살아있는 전설은 죽음으로써 신화로써 완성된다.

 

죽음은 인간의 인지가 닿지 않는 영역이다. 죽음으로써 모든 것은 완결되게 된다. 살아서의 모든 것들이 죽음으로써 완결되어 멈춰버리게 된다.

 

하지만 비극이란 - 억울한 죽음이란 결코 그것을 그대로 완결짓지 못하도록 만든다. 남은 사람들의 안타까움이, 슬픔이, 그를 부여잡고 죽음마저 초월하여 계속해서 이어지기를. 죽음마저 뛰어넘어 그것이 끝이 아닌 영원이 될 수 있기를.

 

엘비스 프레슬리가 죽은지 벌써 여러해가 지났어도 아직도 살아있는 엘비스 프레슬리를 보았다는 사람들이 있다. 죽은 마이클 잭슨에 대해서도 그의 유령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많은 이들이 죽음으로써 신이 되고 신화가 되었다.

 

관제 관우와 악왕 악비, 우리나라의 임경업과 장보고. 억울함이 큰 만큼. 원한이 큰 만큼. 하다못해 처녀귀신이며 몽달귀신이며 한이 많은 귀신이 강하고 힘도 세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었는가. 지미 핸드릭스, 존 레논, 프레디 머큐리, 커트 코베인... 약물중독으로, 자살로, 암살당하고, AIDS로. 죽음이 그들을 제단에 올려 버렸다. 제단에 올리고는 숭배하기 시작했다.

 

록의 문화는 사실 종교의 그것과 많이 닮아 있다. 아니 팬문화라는 자체가, 아니 아이돌이라는 자체가 록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최초의 아이돌은 록에서 나왔다. 엘비스 프레슬리, 비틀스, 모두 아이돌이었다. 그야말로 숭배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안타까움을 남기고 죽은 이들이 있다. 남은 이들이 서럽도록 비극이 있다.

 

그래서 록에는 신화가 있다. 전설이 있다. 그리고 신이 있다. 우상이 있다. 그것이 대중으로 하여금 더욱 록에 열광하게 만든 이유였다. 그것은 마치 종교적인 열정과도 같았다.

 

오히려 비틀스에서 음악적으로 더 뛰어나기는 폴 매카트니일 것이다. 하지만 존 레논이 더 유명한 이유. 더 숭배의 대상이 되는 이유. 그는 제단에 올려진 순교자이며 남아 있는 이들의 신이기 때문이다. 죽은 전설은 살아있는 전설보다 앞서 신이 되고 신화가 된다. 살아 있을 때보다 더 큰 영광과 권능이 그들에 주어졌으며 그는 곧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해체되었기 때문에 전설이 되어 버린 밴드와 해체되지 않고 여전히 이어지고 있기에 조롱거리가 되어가고 있는 밴드와. 현실과 마주한 전설이란 더 이상 전설이 될 수 없지만 죽은 이라면 영원히 전설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죽은 이들은 우리나라에서도 신격화되었다. 우상화되었다. 그들의 모든 말이나 행동이나 그들의 음악은 곧 전설이 되고 신화가 되었다. 단, 해외의 죽은 전설들에 대해서.

 

차라리 아무 일이나 없었다면. 단지 아무 일이라도 없었다면 그저 해외의 신을 받아들여 받들면 되었을 것을. 하지만 우리의 전설들에게 주어진 것은 영광이 될 죽음보다 더 치욕적인 죄인이라는 딱지였다.

 

아마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처럼 대마초에 대해 파렴치한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인성을 의심받고 인격을 부정당한다. 원래 그러자는 목적에서 대마관리법도 만들어진 것이었다. 군사정권에 의해 청년문화를 억압할 목적에서.

 

원래 대마관리법이 국회를 통과한 것도 신중현이 잡혀들어가고 난 다음해인 1976년이었다. 몇 개월이나 시차를 두고 나중에 만들어진 법에 의해 당시 아티스트들은 단죄당했던 것이었다. 다시는 사회로 돌아올 수 없는 인간실격자들로서. 그에 비하면 약물을 달고 살고, 약물중독으로 죽었어도 신화가 되어 버린 해외의 아티스트란 얼마나 축복받은 환경인가.

 

1975년의 대마초파동과 1986년의 또 한 번의 대마초파동. 많은 아티스티들이 잡혀갔고 죄인의 딱지가 붙여졌다. 신중현과 전인권과 김태원과 신해철... 아직도 그들은 그 일로 비난을 듣는다. 전설이 되기 전에 파렴치한 범죄자가 되어 단죄받게 되었달까?

 

서울전자음악단의 음악을 듣다가 짠해졌었다. 죄인의 자식이라며 선생으로부터도 따돌림당하던 신윤철의 어린시절의 이야기가. 과연 그렇게 더럽혀진 이들이 신이 될 수 있었을까? 한국에서의 록에 대한 어떠한 부정적인 편견들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생각해 본다면. 록에 대해 왜 그리 안 좋은 편견들이 많이 생겼는가를 생각해 본다면 더욱. 그렇게 록은 철저히 더럽혀지고 말았었다.

 

사실 록만이 아니었다. 힙합에도 무수한 순교자들이 있었다. 우리나라 발라드에도 한 사람 순교자라 할만한 이가 있었다. 바로 유재하. 비록 절정의 순간에 목숨을 잃은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신은 되지 못했지만 그는 여전히 사람들의 입에 회자된다. 김현식과 김광석의 경우는 그들 개인은 신이 되었으되 블루스와 포크가 모두 쇠퇴해 있던 상황이라 장르 자체를 끌고가기는 실패한 경우였다.

 

사람은 결국 비극을 사랑하는 때문이다.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기억한다. 완결된 것은 기억하지 못한다. 즐겁고 행복한 것은 쉽게 잊어 버린다. 그리고 비극은 신이 되어 살아있는 사람들 사이에 남아 그들을 지배하게 된다. 죽은 이가 신이 되는 과정이다. 그들이 순교자가 될 수 있었던 과정이다.

 

그러면 지금 누군가 죽는다고 그는 신이 되겠는가? 그냥 신이 되는 게 아니다. 첫째 누구나 알만한 유명인이어야 하고, 영향력이 커야 하며, 무엇보다 개인으로서 신이 되는 것이 아닌 그 장르 자체를 이끌고 가자면 장르 자체가 붐을 이루어야 한다. 안타까워하고 아쉬워할 이들이 많이 있어야 한다. 숭배할 신도들이다.

 

아무튼 록처럼 인신숭배가 강한 장르도 또 없는 터라. 그것은 록의 태생과도 관계가 있다 하겠다. 그러나 신이 되기보다 죄인이 되어 나락으로 떨어져야 했던 한국의 음악인들. 그래서 하는 말,

 

"차라리 누군가 죽기라도 했다면..."

 

흉악한 말이지만 차라리 죽일지언정 욕은 보이지 말라는 말도 있으니까. 그만큼 욕보이고 더럽혀졌다는 것이다. 한국의 록은. 한국의 아티스트들은. 부정한 시대에 의해. 철저히.

 

과연 옳은가? 말했듯 이것은 하나의 가능성이다. 여러가지 가능성을 늘어놓고 있다. 결론은 나와 있는데 이것저것 쓰다 보니 생각만 넓어져서. 어디서 읽은 것들, 어디서 들었던 것들, 어디에서 보았던 것들...

 

그런 이야기도 있다는 것이다. 록의 순교자들. 록의 제단에 바쳐진 순교자들에 대해. 살아 있는 이들의 신이 되고 우상이 되어 버린 이들에 대해. 그렇지 못했던 이들에 대해서도. 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