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가게 아가씨 - 송창식
1.우리동네 담배가게에는 아가씨가 예쁘다네
짧은 머리 곱게 빚은 것이 정말로 예쁘다네
온 동네 청년들이 너도나도 기웃기웃기웃
그러나 그 아가씨는 새침떼기
앞집의 병열이 녀석은 딱지를 맞았다네
만화가게 진원이 녀석도 딱지를 맞았다네
그렇다면 동네에서 오직 하나 나만 남았는데
아 기대 하시라 개봉 박두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담배 하나 사러가서
가지고 간 장미 한 송이를 살짝 건네어 주고
그 아가씨가 놀랄 적에 눈싸움 한 판을 벌인다
아 자자자자자자자자
아 그 아가씨 웃었어
2.하루 종일 가슴 설레이며 퇴근시간 기다렸지
오랜만에 말끔히 차려입고 그 아가씰 기다렸지
점잖게 다가서서 미소 띄며 인사를 했지
그러나 그 아가씬 흥 콧방귀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나면 대장부가 아니지
그 아가씨 발걸음 소리 맞춰 뒤따라 걸어간다
틀려서는 안 돼지 번호 붙여 하나 둘 셋
아 위대한 손 나의 끈기
바로 그때 이것 참 야단 났네 골목길 어귀에서
아랫동네 불량배들에게 그 아가씨 포위됐네
옳다구나 이 때다 백마의 기사가 나가신다
아자자자자자자자자자
으 하늘빛이 노랗다
우리동네 담배가게에는 아가씨가 예쁘다네
지금은 그 때보다도 백배는 예쁘다네
나를 보며 웃어주는 아가씨 나는 정말 사랑해
아자자자자자자자
아 나는 지금 담배 사러 간다
가사 출처 : Daum뮤직
아마 노래를 듣고 한 귀에 반한다는 것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것일 게다. 하긴 내가 한 귀에 반한 노래가 어디 한두곡이겠냐만.
노래방 가면 항상 이 노래를 부른다. 한창 노래를 부르고 놀다가 마지막은 이 노래고 끝난다. 그렇게 흥겹고 그렇게 신난다. 노래를 부르는 것이 이렇게나 즐겁구나. 음악이라는 것이 이렇게나 신나는 것이로구나. 마음껏 리듬을 타며 소리를 지르고 유쾌하게 웃으며 마무리한다.
가사가 재미있다. 원래는 "와이셔츠 가게 아가씨"였다지? 매부가 어딘가 와이셔츠 가게 아가씨가 그렇게 예뻐사 장사가 잘 된다는 말을 송창식에게 들려주었다 한다. 그런데 아무래도 운율이 맞지 않아 단촐하게 "담배가게 아가씨"라 바꾸었다고.
그런 이야기가 실제 있다. 신림동 고시촌의 전설일 것이다. 약국인가 딸이 그렇게 미인이었는데, 그래서 근처 고시생들이 모두 그 약국만 찾았다고. 맞나?
바로 그림이 그려진다. 동네 모퉁이 작은 담배가게에는 아마 그 집 딸인가 아름다운 아가씨가 앉아 손님을 맞고 있을 것이다. 그 아가씨를 보기 위해 온동네 청년들이 - 아니 멀리 다른 동네에서까지 찾아와 기웃거리며 피지도 않는 담배를 사고. 그냥 아무 담배면 될 것을 괜히 무리해가며 비싼 놈으로.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주위를 맴돌고 대쉬를 해 봐도 쉽지는 않으리라. 이미 담배가게에 들어서는 순간 그 속내가 훤히 보일 것이니.
그렇게 하나둘 경쟁자들이 떨어져나가고 남은 것은 나 하나, 어찌할 것인가? 퇴짜를 맞는 장면도 디테일하다. 무모하게 대쉬하다 살짝 지어 보인 웃음에 지레 김칫국부터 마시고, 잔뜩 기대를 하고 아가씨를 찾아갔을 때는 돌아온 것은 콧방귀 뿐. 착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남자가 되어 그대로 물러날 것인가?
"이대로 물러나면 대장부가 아니지."
당연한 말이다.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결코 한 번의 거절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인내와 끈기와 의지와,
"그 아가씨 발걸음 소리맞춰 뒤따라 걸어간다."
요즘이면 스토커 소리를 들을 판이다.
"틀려서는 안 되지 번호붙여 하나둘 셋"
하지만 혹시나 발걸음 소리를 놓칠까 번호까지 붙여가며 뒤따라가는 모습이란 또 얼마나 귀여운가. 어떻게 하겠다는 게 아니다. 단지 그렇게라도 함께 하고 싶이 때문에. 발걸음소리라도 함께 맞춰 걸어가고 싶기 때문에. 차마 들이대지 못하는 수줍음과 넉살이 그대로 보이는 듯하다.
"아, 위대할 손 나의 끈기"
그리고 "대장부가 아니지"에 이어지는 자화자찬. 차이고 단지 뒤를 졸졸 쫓아다니는 비참한 상황이지만 그조차도 남자다운 끈기라 스스로 위로한다. 그 낙천이 정말 남자답다. 괜히 허세를 부리고 싶고 그런 자신에 또 도취되어 버리는 그런 바보같은 모습이.
여기서 반전이 일어난다. 이제는 진부해서 누구도 쓰지 않은 시퀀스. 아름다운 아가씨가 불량배들에게 잡혀 위험에 빠지고 그것을 누군가 정의의 용사가 나타나 구해주는. 요즘은 코미디물에서나 웃기려고 쓴다.
아니나 다를까. 여기서도 송창식은 특유의 낙천과 유머를 잃지 않는다. 그저 단지 좋아하는 여자를 지키려는 목적으로 달려드는 남자. 소리도 요란하다. 아자자자자자자자. 평생의 용기를 있는대로 쥐어짜며 아가씨를 위해 달려가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이어지는 능글맞은 "하늘이 노랗다."
아마 맞았을 것이다. 제대로 저항도 못해보고 흠씬 두들겨맞았을 것이다. 정신을 잃었겠지. 좋아하는 여자 앞에 여자를 지키지도 못하고 못난 꼴을 보였을 것이다. 참 볼썽사납다.
그러나 어찌할 것인가. 이야기는 해피엔드가 되어야 한다. 내내 이어지는 밀고 당기며 쥐고 푸는 송창식의 능글맞은 목소리는 아마도 성공한 사랑의 무용담을 전하고 있을 터였다. 실연의 이야기를 그렇게 부르기에는 너무 짓궂지 않은가.
그대로. 어떻게 되었는가? 담배가게 아가씨가 그리 예쁘단다. 전보다도 백 배는 더 예쁘단다. 나를 보며 웃어주는 그녀가 그리 사랑스럽단다. 나는 지금 담배를 사러 가고.
단정지어 이야기하지 않는 여운이. 에둘러 말하면서도 오히려 더 노골적이고 구체적인 묘사가. 그리고 이제까지의 능글맞은 낙천과 긍정이 그대로 묻아나는 유쾌함이. 하지만 역시 포인트는.
"아자자자자자자자자!"
이 아자자자자자만 제대로 불러도 하루 스트레스는 다 날라간다. 앞서의 뻔뻔한 능글맞음도, 뒤의 승자의 여유도 모두 이 아자자자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여자를 위해 용기를 쥐어짜 달려가면서. 그리고 지금의 행복에 겨워 벅차하면서. 마치 샤우팅처럼 저 아래로부터 끌어올려지는 그 외침이라는 것이.
아마 기타를 사랑과 평화 출신의 최이철이 쳤을 것이다. 단단한 펑크리듬 사이로 기타라인이 섬세하게 리듬을 타며 들려온다. 국악 리듬이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가사가 그렇게 멜로디와 리듬과 맞아떨어진다. 그냥 가사가 멜로디와 함께 외워진다. 리듬과 함께 불려진다.
노래하는 사이 들려오는 기타 솔로는 무척 매혹적이며, 블루지한 하모니카에 이어지는 기타의 마무리는 환상적이다. 가사도 재미있고, 멜로디도 재미있고, 재미있기 전에 착착 달라붙는다. 연주마저 그렇게 착착 달라붙어 하나인 양 야무지게 마무리된다. 그저 재미있기만 한 노래는 아니지 않을까. 음악적인 완성도가 들으면 들을수록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 얼마나 멋진 연주이며 사운드인가.
우리나라 록넘버 가운데 개인적으로 손에 꼽는다. 이렇게까지 음악 자체를 즐길 수 있는 노래도 쉽지 않으리라. 단지 노래 자체만으로도 이리 즐겁고 이리 행복할 수 있는 음악도. 단지 들어서가 아니라 함께 부름으로써 신명나는 - 말 그대로다. 신명. 이 노래에는 신명이 있다. 어느새 함께 어울리는 신명이다.
개인적으로 그래서 가장 싫어하는 버전이 YB의 메탈버전. 듣는 순간 없는 시디라도 사다가 부숴버리고 싶었었다. 도대체 이 노래를 어떻게 하면 그렇게 만들 수 있을까. 이 개구지고 장난스런 노래를. 유쾌한 낙천과 긍정이 있는, 반전이 있는 드라마를. 그저 거칠게 내달리기만 해서 그 정서를 살릴 수 있을까?
하지만 워낙에 원곡이 좋다 보니. 그래서 YB의 리메이크도 살았다. 심지어 YB의 노래인 줄 아는 사람들마저 있더라. 내가 YB를 싫어하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다. 나는 지금도 그 리메이크를 용서하지 않는다.
간만에 송창식의 라이브를 들으며. 여전히 능글맞도록, 자유자재로 노래를 가지고 놀며 관중까지 마음대로 요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노래스킬로만 따진다면 올타임넘버원이리라. 최고라는 말조차 부족한 최고의 가수이며 음악인이다. 새삼 확인한다. 현장을 통해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통해서.
여전히 나는 노래방 가면 이 노래를 부른다. 노래방 마지막 타임은 항상 이 노래다. 어느샌가 어깨를 들썩이며 따라부르고 싶은. 혼자 부르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노래. 그대로. 즐거울 락樂, 음악樂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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