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마니아 가운데는 반전주의자들이 많다. 물론 전쟁이란 필연이라 여기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워낙에 전쟁을 간접적이나마 가까이에서 대하는 사람들이기에 전쟁이 주는 참혹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들이 밀리터리 마니아들이다.
그래서 어떤 딜레마 같은 것이 존재한다. 마니아로서 전쟁이 주는 드라마와 화려함에 대한 탐닉과 그러나 그것이 주는 참혹함과 비참함에 대한 분노. 이성은 이런 것을 과연 좋아해도 좋은가 경고하는데, 감성은 그러한 것들에 대해 어떤 감동마저 느끼고 있다.
무한도전 6월 화보촬영을 보면서 느낀 것이다. 전쟁의 참혹함이라 하지만 과연 어디에 그런 참혹함이 있는가? 있다면 유일하게 눈물을 흘리던 정준하에 있었을 것이다. 그 순간 나도 역시 울컥 하고 있었다. 여러 의미가 있는 눈물일 테지만 죽음에 이르러 흘리는 병사의 눈물이란 그만큼이나 전쟁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을 테니.
하지만 나머지는 거의 드라마를 위주로 하는 것이라. 전쟁의 참혹함보다는 전쟁의 드라마에 도취되어 버린 느낌이었다. 아니 촬영하는 과정 자체가 그랬다. 무언가 즐기듯이. 무언가 전쟁놀이를 즐기듯이. 엄숙함보다는 어쩐지 들뜬 느낌이 강했다. 특히 마지막의 노홍철. 오히려 위화감을 느꼈다고나 할까? 자막이 너무 붕 떠 보였다.
물론 시의성 있는 적절한 소재이고 주제였다. 6월이라는 상징성으로도. 그리고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어떤 문제들 때문에라도. 하지만 그런 식의 들뜬 분위기나, 드라마를 추구하는 자세등은 오히려 전쟁에 대한 다른 생각들을 자극할 수 있지 않을까. 기우이기를 바라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반드시 그러한 장면들이 문제이기만 했는가? 문제의식은 좋았다. 주제 자체도 적절했다. 무엇을 의도했는가, 그 목적 역시 아주 괜찮았다. 더구나 무한도전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예능이니. 예능이 너무 무거워도 문제인 것이다. 예능이면서 또한 주제를 확실히 전달하자면? 미흡하지만 다른 대안이 없다면 역시 김태호PD가 추구하는 바를 받아들일 밖에.
아주 약간 모자랐다는 것이다. 아주 조금 부족했다는 것이고. 그것이 내내 걸렸지만 예능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아쉬움은 있지만 그러나 충분했다.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괜찮은 시도였다.
동물과의 사진찍기도 좋았다. 오히려 마음에 들었던 것은 처음부터 동물과 친했던 정형돈이 아니라 처음에는 겁을 먹고 거리를 두다가도 어느샌가 동물들에 가까이 다가가던 유재석, 정준하, 노홍철이었다. 특히 마지막 보여준 유재석의 눈빛은. 과연 사람들이 어떻게 동물들에 다가가야 하겠는가.
사실 기린이 노홍철에 해를 끼친 것은 전혀 없었다. 호랑이 새끼도 정준하에 위협이 되지는 않았다. 오랑우탄이 박명수에게 뭔 해꼬지를 했을까? 심지어 펭귄들은 귀엽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지레 겁먹고, 지레 거리를 두고, 거부하려고만 드는 것은.
물론 자연계에서 만난다면 위협이 될 것이다. 자연계에서 호랑이 새끼를 만난다? 오랑우탄도 만만한 동물이 아니다. 하지만 안전한 동물원인데. 인간의 손에 의해 길들여진 동물들이다. 그나마 그 밖의 다른 동물들은 위협적이랄 것이 전혀 없었고. 아, 코끼리 제외. 그런데도 막연히 동물을 거부하고...
이미 만물의 영장이란 것이다. 동물 가운데 가장 세다. 위협이 될만한 동물이 없다. 조금은 여유를 가져도 좋지 않을까? 조련사가 보장한다면. 두려움이 곧 혐오감이 되는 것이다. 두려움이 혐오감이 되고 거리감이 거부로 이어지고. 그것이 동물에 대한 학대로 이어지기 쉽다.
무한도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무한도전이 잘 보여주었다 말하는 것이다. 동물과의 교감. 눈과 눈을 마주치는. 마음과 마음을 잇는. 마음을 열고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이 전혀 자신들에 위협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위협이 되는 동물을 그대로 남겨둘 인간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이 아니나다를까 2위로 뽑혔던 유재석. 유재석의 인간성이 드러난다고나 할까? 길의 사진은 재미있었지만 유재석의 사진은 아름다웠다. 정형돈 역시. 그에 반해 박명수는... 하긴 그런 것도 하나의 개성으로 받아들여야 할 테니까.
아무튼 의미가 있었던 주제들이 아니었을까? 단순히 달력을 위한 화보촬영이 아닌 적절한 메시지가 있었다. 그것이 무척 마음에 들었던. 흠... 무한도전이었다고나 할까? 대단히 만족스런 시간이었다.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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