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 - 초심은 순수다, 순수는 아름답다!

까칠부 2010. 10. 3. 18:56

물론 그렇게 크게 웃긴 것은 없었다. 하지만 내내 입가에서 떠나지 않는 미소라는 것은...

 

항상 그렇다. 뭐든지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란 항상 아름답다. 좋아서 하고 즐거워서 하고...

 

솔직히 개그콘서트보다는 인디영화 쪽이 더 관심이 갔다. 흥미로웠고. 재미있었고.

 

장소 하나 섭외하는데도... 가로등 불빛을 찾아 손에 들 수 있는 조명 하나로...

 

"우리 오늘 조명도 있어요?"

 

하지만 얼마나 즐거운가. 병원 옥상을 섭외하며 기대에 찼다가, 그러나 섭외에 실패하고서도 실망하지 않는다. 할 수 있는 최선을 찾아야지.

 

"인디영화의 시작과 끝은 감사합니다야."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은 그것을 진심으로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보다 큰 이익을 구해서가 아니라. 단지 그것이 좋아서. 그것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런 간절함이,

 

"감사합니다."

 

하모니편에 이은 주제로는 참 멋지지 않은가.

 

카메라라고는 DSLR. 별다른 장비도 없이. 자본금 200만원. 주위의 도움을 받아가며. 주위의 양해를 구해가며. 스스로 많은 어려움들을 - 아니 그조차도 감사하게 받아들이며.

 

꿈을 쫓는다는 게 바로 저런 것일 텐데. 인생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저런 것일 게다. 다행히 나도 그런 사람들을 알고 있다. 단지 좋아서 하는 사람들. 즐거워서 하는 사람들. 어느새 그에 동화되어버린 김성민도 그 자체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독립영화라는 게 그렇다. 인디밴드나 마찬가지다. 물론 자본의 도움을 받으면 더 멋지게 훌륭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더 편하게 더 좋은 환경에서 만드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마음껏 방송국의 장비를 갖다 쓰는 남자의 자격팀처럼. 하지만 그러자면 방송국의 눈치를 봐야 한다. 윗선의 눈치를 봐야 하고 또 거기에 맞춰야 하고. 광고주에 대해서도 신경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독립영화는 내 영화니까. 우리 영화니까. 인디밴드도 내 음악이니까. 우리 음악이니까. 그래서 보다 자유롭게. 자유롭다기보다는 즐겁게. 오로지 그 자체가 즐거워서.

 

바리바리 다른 스텝 없이 배우 겸 감독 겸 조명 겸 소품 겸 섭외와 마케팅까지 서로 나누어 맡아 직접 한다. 소품을 바리바리 챙겨들고 촬영을 나서는 그 모습이란. 그렇게 어우러져 이야기들을 나누는 모습들이란. 그 웃음과 그 살가움들이.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들이다.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사람들. 스스로 행복을 찾고 만족할 수 있는 사람들. 순간순간에 후회없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사람들. 어느샌가 세상에 부대끼는 사이 잃어버리고 마는 그런 것들이. 어린시절에는 분명 누구나 그런 삶을 꿈꾸었을 텐데.

 

아름다웠다. 조명 하나에도 빛을 찾았다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순수한 열정들이. 진정. 아름다웠다.

 

 

 

확실히 개그코드가 틀리다. 원래 코미디는 정극에서 나왔다. 원로코미디언들은 거의 정극배우 출신이었다. 악극단에서 정극도 하고 코미디도 하고. 때로는 노래도 하고 연주도 하고 MC도 보고. 김희갑, 구봉서, 양훈, 양석천, 송해 이 세대가 바로 만능엔터테이너의 원조 세대였다.

 

그런 까닭에 옛날 코미디들은 정극에 가까운 것이 있었다. 원래의 "웃으면 복이와요"와 이후 "청춘만만세"나 "유머일번지" 등의 콩트코미디프로그램을 비교해 보더라도 그런 것들이 드러난다. 유머일번지는 또 쇼 비디오 자키와는 약간 코드가 다르다. 쇼 비디오 자키 쪽이 아무래도 지금의 개그콘서트와 많이 닮았다. 봉숭아학당이 원래 쇼 비디오 자키의 코너였던가? 최소화된 세트에서 관객과 직접 호흡하는.

 

물론 지금의 공개코미디 형식이 아주 없었느냐? 그건 아니었다. 원래의 "개그"라 하는 자체가 그랬다. 무대에 혼자서, 혹은 둘 이상이 나와 즉흥적으로 단지 자신의 입담과 재치로서 웃기던 것이 원래 개그라 불리던 것이었다. 그리고 원로의 시대에도 만담에서 유래하여 무대 위에서 즉석에서 웃기는 그런 코미디가 TV생방송 시절 방송을 타기도 했었다. 유행어라든가 그런 개념이 처음 나타난 것도 어쩌면 그 때.

 

하지만 그렇더라도 웃음의 코드가 다르니까. 이경규가 재미있다고 내놓는 아이디어에 대해 김국진과 이윤석, 윤형빈의 반응이 전혀 다르듯이. 윤형빈의 말하는 현재 개그콘서트의 트랜드에 대해 이경규와 김국진, 이윤석이 전혀 이해하지 못하듯이. 이경규가 80년대, 김국진과 이윤석이 90년대 초, 윤형빈은 2000년대. 나이대 만큼이나 데뷔하고 활동하던 시기가 그렇데 다르다는 것이다. 윤형빈은 몰라도 나머지 멤버의 개그코드가 지금의 스타일과 어울리기에는 거리가 있지 않을까. 나름 재미있기는 했지만.

 

그래서 더 아쉬운 것이다. 초심이다. 내가 추구하는 개그코드가 지금과 맞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할까? "분장실 강선생님"을 패러디하여 안전하게 답습하는 것이 초심은 아닐 것이다. 물론 시대에도 맞지 않는 개그를 억지로 무대에 올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신인개그맨 하는 것 있지 않은가? 신인개그맨들 처음에는 단역부터 시작한다. 소품이야 무리더라도 기존의 코너에서 배역 하나를 맡아서 그것을 충실히 소화하도록. 굳이 다른 개그맨들이 야단칠 필요 없다. 재미없어 어색한 것만으로도 하늘같은 선배로서 스스로 자기에 채찍질이 될 터이므로. 굳이 "분장실 강선생님"을 "분장실 이선생님"으로 구태의연하게 보여주었어야 했을까?

 

이건 순전히 개그콘서트의 입장에 맞춘 것이 아닌가? 남자의 자격의 미션이라기보다는 단지 이경규, 김국진, 이윤석이라는, 한국 코미디계의 중견이며 원로이며 남자의 자격으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출연자를 통해 화제성을 불러일으키고자.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 같아 그리 내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이디어를 쥐어짜며 고심하는 것이. 서로 아이디어를 내놓고 그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서로 맞춰보는 그런 장면들이. 다만 너무 자신들의 아이디어에 취해 정작 보는 사람은 잊은 것이 아닌가. 현장에서 너무 오래 떨어진 탓에 감을 잃어버린 게 보였다. 그렇더라도 후배들과 함께 무대에 서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참 아름다웠다. 역시 이들은 개그맨이었구나.

 

그리고 괜한 욕심에 덧붙이자면 이런 중견과 원로들도 이제부터라도 다시 코미디 무대에 설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80년대도 양훈, 양석천, 송해, 서영춘, 구봉서, 배삼룡 등 당시에도 원로라 할만한 코미디언들이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후배 개그맨들과 함께 출연하고 있었다. 물론 계통도 다르고 스타일도 다르지만 그러나 그들은 코미디언이었으니까. 웃음이라는 한 가지 코드로써. 그러면 이경규도, 김국진도, 이윤석도, 저렇게까지 감이 떨어지지는 않았을 텐데. 나이를 먹으면 현역일 수 없다는 사실을 보았달까?

 

 

아무튼 다음주가 기대된다. The End 시절의 이태윤이 함께 다시 무대에서 공연을 한단다. 아마 모르지 않으리라. 카라 팬이라면 더욱. 이태윤이라면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베이시스트로서 우리나라 최고의 베이시스트 가운데 한 사람이다. 당시 언더그라운드에서 최고의 인기와 실력을 인정받던 그들이다.

 

다만 드러머는 역시 The End시절에도 함께였고 GAME의 암울했던 시간들도 함께 했었던 황태순이었으면 좋았을 것을. 보컬은 김종서. 세컨드 기타에 이지웅. 김태원, 이지웅, 이태윤, 김종서, 황태순이야 말로 The End 원년멤버들일 텐데. 김종서는 역시 섭외가 힘들었을까? 이지웅이나 황태순이나 어디서 뭣들 하는지.

 

정준교도 좋았을 뻔했다. 지금의 서재혁 이전 가장 오랜 시간을 김태원과 함께 했던 음악적 동지이기도 했었다. 기타 드럼이며 키보드는 워낙 많이 들락거려서. 엄수한과 채제민 들어오면서 겨우 자리를 잡았었다. 보컬이 이성욱인 것은 나름의 배려일지도. 부활 보컬 가운데 가장 인정받으면서도 가장 빛을 보지 못한 것이 또 이성욱이었다. 김종서도 안 되고 이승철은 당연히 안 되고 그러면 아쉬움 때문에라도.

 

독립영화 쪽도 역시 기대가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영화는 어떻게 완성될까? 김성민은 어떻게 연기할까? 그리고 또 이정진의 초심미션에 대해서도. 무엇일까, 이정진의 초심은? 개그콘서트 녹화현장도 이미 결과물을 보았던 만큼 궁금하기도 하다. 과연 모두들 어떤 모습들일지. 어떤 초심의 모습들을 보여줄 것인지.

 

초심으로 돌아간다. 이것이 남자의 자격의 초심 아니었던가. 크게 멋지게 화려하게 보다는 작고 소박하고 소소하게. 진심과 진정을 담아서. 우리의 일상의 이야기들로. 

 

하모니편이 워낙 크다 보니 그에 눌리지나 않을까. 하지만 어느새 이렇게 훌륭하게 자기 자리를 찾고 있다. 원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남자의 자격만의 저력이랄까? 제작진과 출연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내공의.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의미는 있었다. 감동과 공감이라는 것도 있었다. 재미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남자의 자격 자신이 초심을 찾았다는 것이. 아니 초심을 잃지 않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

 

진심으로 고맙고 다행스러웠다. 반가웠다. 이것이 남자의 자격이로구나. 일주일이 벌써부터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