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진다고 한다. 달리 망신이라 한다. 자기를 망치는 것이다.
누가 좋아할까? 저런 분장을? 바보흉내를 내고, 어딘가 모자른 모습을 보이고, 때로 신체적인 고통까지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되고. 그러나 웃으니까. 웃어주니까.
페이소스일 것이다. 바로 그것이 페이소스다. 슬픔이 있기에 웃을 수 있다. 아픔이 있기에 웃을 수 있다. 다른 이를 망신주고, 다른 이를 상처주고, 그 이전에 내가 망신당하고 상처를 입고. 그것이 광대일 터다. 그래서 삐에로는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어쩌면 잘못 생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맞다. 아이디어 내서 까이면 할 수 있는 것은 분장개그밖에 없다. 아이디어 내서 안 되면 독한 분장으로 몸으로 웃기는 밖에. 그래도 안 웃으면 어쩔 수 없는 것이고. 그야말로 초심이 아닐까. 무한정한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기간 안에 아이디어를 내지 못하면 기존의 코너에 분장이나 우스꽝스럽게 하고 몸으로 웃기는.
분장 하나에도 신경을 쓰고, 대사 한 마디 동작 하나, 그리 긴장하고, 그리 떨려 하고, 오랜만에 서는 무대여서일까? 아닐 것이다. 매일 서는 무대라고 설레임이 없을까? 떨림이 없을까? 아마도 잊고 있었을 무대 위에서 분장을 하고 연기를 하는 그 시절의 기억이란.
확실히 이경규와 김국진, 이윤석이 저리 분장하니까 빵 터지는구나. 과연 이들이 아니어도 저렇게까지 웃음을 줄 수 있었을까? 솔직히 이경규, 김국진, 이윤석이기에 가능한 웃음이었다 생각한다. 설마 저들이 저렇게까지 망가지며 웃기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을 테니. 아마 신인 때는 저 정도 분장으로는 저렇게까지 웃음을 주지는 못했을 텐데. 모두가 웃음을 참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이제껏 이루어 놓은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개그콘서트를 나도 봤기에. 저렇게까지 열심히 최선을 다해 연기했구나. 까이고 웃음거리가 되고 전혀 해보지 않던 연기들로 저렇게까지 웃음을 주었구나. 삐에로임을 알겠다. 광대임을 알겠다. 최대의 찬사다.
밴드 구성이 참 좋다. 김태원이 기억을 잘못하고 있는 것 같다. 1997년이면 박완규다. 1999년 김기연이었고, 이성욱은 2000년이다. 2001년 7집이 쫄딱 망하고서 이성욱은 자기가 왜 잘렸는지도 모르고 부활에서 잘리고 말았다. 뭐 김태원 자신도 공장에나 들어갈까 하던 시절이었다고 하니.
1983년 처음 캬바레 밤무대에 섰을 때의 드러머, 1986년 처음 언더그라운드에서 The End를 함께 결성했던 시절의 베이시스트, 그리고 가장 어려울 때 끝까지 함까 하지 못했던 보컬. 그나마 베이시스트 이태윤은 잘 풀렸다. 당대최고의 송골매를 거쳐 위대한 탄생의 베이시스트로. 현재 프로는 김태원과 이태윤 아마 둘 분일 것이다. 이성욱도 회사 다니고 있고, 드러머 분도 자기 사업을 하는 것 같고. 거기에 밤무대 경력이 오랜 듯한 구수한 느낌의 키보디스트. 시간이 거슬러간다. 10년 전, 26년 전, 27년 전으로.
브레이크를 주라 하니 춤 추는데 방해된다는 김태원. 한 번 시작하면 그냥 가야 한다는 이태윤. 브레이크를 주고 나면 어찌 말리느냐는 드러머 아저씨. 브레이크 하나를 가디고도 왁자하게 다툼이 나오고, 오랜만의 드럼연주에 허둥대는 드러머에 이런저런 말들이 나오고 충돌이 일어나고. 원래 그때도 밴드는 이런 모습이었을까?
실력이야 김태원이나 이태윤이나 이성욱이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키보디스트나. 그러나 어쩌면 드럼을 놓은 지 오래되어 보이는 드러머로 인해 초심의 모습이 보인다. 어색하고 어눌하고 주눅들고 그러나 어느새 좋아 리듬을 맞추고. 단지 좋아서 돈도 안 되는데도 악기를 들고 무작정 무대에 서던 시절의 열정이 바로 그런 데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나온다. The End 시절 멤버들이 끝내 흩어지게 된 이유. 이태윤은 모르겠고 김태원은 확실히 70년대 소프트록쪽에 그 뿌리가 있다. 아마 이태윤도 그런 데 의기투합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김종서는 당시 헤비메탈에 경도되어 있었고. 차라리 이승철이었으면 모르겠는데 김종서라면 팀의 분위기도 그리 간다. 또한 헤비메탈이 대세이던 시절 김태원 역시 속주테크니션을 추구했던 것 같고. 부활 1집에서의 이질감은 아마도 그런 영향이 아니었을까. 다만 아이러니라면 이태윤으로 하여금 김태원과 갈등하게 만든 김종서도 함께 부활을 떠나고 있었다는 것. 그만큼 그로 인한 음악적 갈등이 컸고 김태원의 독선도 심했다는 것이겠지. 결국 1집에서 함께 했던 멤버 모두가 이승철을 제외하고 2집에서 교체되고 만다.
"벌써부터 음악적 갈등이 시작되었다."
"팀을 나간 이유가 있었네!"
둥글해진 지금과는 다른 - 그러나 당시와는 전혀 다른 엉뚱하고 허술한 이유로 일어나는 다툼들이. 시간이 흐르고 나니 사람들도 둥글둥글해지는 것일까. 연륜이 묻어나는 넉넉한 웃음들이 또 시간을 당긴다.
아무튼 김태원의 간만의 기타연주곡 게리무어의 파리지앵 워크웨이스도 좋았고, 이성욱의 안녕도 좋았고, 이태윤의 베이스는 물론. 의외로 이태윤 아저씨도 입담이 있다. 김종서를 두고 배뱅이굿이라. 원래 당시 김종서의 보컬에 대한 평가가 호불호가 많이 갈렸다. 적당한 여유와 적당한 웃음과 그 시절의 이야기까지. 한결 넉넉해진 지금의 모습들도.
하지만 역시 가장 의미있었던 것은 독립영화가 아니었을까? 이것은 과연 김성민을 위한 "초심" 미션이었을까? 아니면 제작진을 위한 미션이었을까? 오히려 김성민보다 더 제작진들이 독립영화를 만드는 가운데 초심을 떠올려 버린 것 같다. 처음 카메라를 잡았을 때. 처음 콘티를 짜게 되었을 때. 앵글을 잡고 편집을 하고. 그때의 그 심정들을.
아마도 방송국에 있으면서는 그리 큰 어려움 없이 쓸 수 있는 장비들일 것이다. 굳이 필요가 없어 쓰지 않는 장비를 - 다른 장비 한 대 값에 겨우 하루 빌리는 장비를 가지고 촬영을 하게 되었을 때 진심으로 좋아하며 기뻐하는 그 진솔한 웃음들이. 한 번 빌리기도 어려운 것들을 남자의 자격 덕분에 쓸 수 있게 되었을 때 다른 무엇보다 더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었던 그 모습들이.
"초심을 잃어봤으면 좋겠다."
초심을 되돌리기에는 그들은 아직도 어린아이 아니던가. 아이의 천진한 눈처럼 꿈을 쫓으며 진정으로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그런 모습이야 말로 가장 아름다운 모습 아니던가. 그들의 웃음이야 말로 진정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웃음이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남자의 자격 미션으로 독립영화나 연극 같은 것을 하나 따로 떼어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한정된 예산으로 장비를 마련하고 세트를 만들고 장소를 섭외하고... 어차피 시나리오와 제작은 이경규가 있으니까. 음악은 김태원이 있고. 연기경험은 이정진, 김성민, 김국진 다 있다. 진짜 독립영화를 만드는 분들과는 같지 않겠지만 이러한 순수를 영화 속에 담아보면 좋지 않겠는가.
감사할 줄 아는 마음. 어쩌면 이번의 주제일 것이다. 개그맨임을 다시 떠올렸던 김국진과 개그콘서트 멤버들처럼. 과거 무대에 처음 서던 시절을 떠올리던 김태원과 그 밴드멤버들처럼. 그리고 독립영화 스탭들처럼. 그들을 도와 영화를 찍으며 자신들도 그 속에 몰입되어 버린 제작진들처럼. 처음에 그리 기쁘고 감사하던 마음을. 그리 즐겁고 행복하던 마음을. 오늘에 되돌리자면.
아마 맞을 것이다. 출연자들을 위한 동시에 제작진 자신을 위한 미션이. 10% 남짓하던 시청율에서 어느새 1박 2일을 위협하는 높은 시청율까지. 하모니편은 그야말로 누구도 예상 못한 대박이었다. 홈런을 치고 나면 스윙이 커진다. 그리고 삼진을 당할 확률이 높아진다. 과연 남자의 자격은 하모니편의 후유증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결국은 초심이 아닐까? 처음 남자의 자격을 만들던 그대로.
남자의 자격 그대로였다. 소박하고 진솔하고 누구나 공감하는 그런 일상들이. 가끔은 과거를 떠올리고, 때로는 지금을 돌아보고, 잠시 잊고 있던 주위를 둘러보고. 나의 초심은 무엇인가? 나의 처음은 무엇이었던가?
우려를 씻어내는 가장 남자의 자격다웠던 미션이 아니었을까. 하모니편의 후유증이 솔직히 나도 남아 있기는 하지만 붕 떴던 마음이 어느새 가라앉는다. 이것이 남자의 자격이었다. 함께 초심을 떠올리며, 그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감사해하며 행복해하던 그 기억들을 떠올리게 되었고.
3주 미션이었구나. 정말 기대가 된다. 다음주의 이정진은. 그리고 김태원의 밴드는. 재미있었다.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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