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창력이라는 말에 뜨악해진 것은 역시 팬심 때문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가 조관우인데, 그런데 조관우가 가창력 면에서 그리 높은 평가를 못받는 것이었다. 가성이라고...
그러나 가성이더라도 과연 조관우만한 표현력을 갖는 가수가 우리나라 가요계에 몇이나 되겠는가? 고음이 얼마나 올라가고의 문제가 아니라 노래가 갖는 감정을, 감수성을 그렇게까지 처절하게 전달할 수 있는 가수는 아마 몇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래서 이후로 가창력 운운하면 무시하게 되었다. 도대체 그놈의 가창력이 무언지...
아무튼 그럼에도 가창력이라 하면 흔히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기준이 있으니, 대충 이 셋이다.
첫째는 음역.
음역이란 마치 팔렛트와 같다. 팔렛트가 크면 그만큼 더 많은 색을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다.
간단히 부활의 론리나잇... 아니, 같은 앨범의 마술사... 지금 부를 수 있는 가수가 몇이나 되겠는가? 박완규도 마술사는 그 느낌 그대로 못 부른다. 왜? 음역이 안되니까.
3옥 레까지 나오면 3옥 도 이하는 그냥 부를 수 있다. 3옥 도까지 나오면 2옥까지의 노래는 일단 부른다. 그러나 3옥 도가 3옥 레까지 올라가기란 참 힘들다. 키를 낮춰 부르려 해도 저음에서 고음까지가 3옥 정도라면 그 이상의 음역을 갖는 노래는 키를 낮춰도 아예 음정을 고치지 않는 이상에는 불가능하다 할 수 있다.
둘째는 성량.
성량이 중요한 것은 일단 기본적으로 성량이 받쳐주어야 전달이 제대로 된다는 점 때문이다. 성량이 안되는데 억지로 쥐어짜봐야 귀를 기울이게는 할 수 있을 지 몰라도 그 노래의 감정을, 감수성을 듣는 이에게 제대로 전달하기는 힘들다.
무엇보다 뭐라도 기교를 부리려 해도 성량이 되어야 기교를 부린다. 성량이란 기본적으로 힘이다. 자동차로 따지면 엔진이다. 엔진출력이 나오지 않는데 차가 제대로 갈 리 있나. 차야 어떻게 가더라도 커브를 돌거나 고개를 넘으려 해도 휘청휘청 겨우 앞으로 나가는 게 전부다. 차라리 음역이 안되더라도 충분한 성량이 받쳐주는 쪽이 표현력이 좋은 것은 그래서다. 한 음을 내더라도 풍부하게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으니.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꼽는 부분 가운데 하나다. 기본적으로 성량이 안되는 가수는 가수할 자격이 없다.
셋째는 기술.
두성이니 비성이니 흉성이니 하는 것도 발성의 기술이다. 바이브레이션을 넣고, 꺾고, 늘리고, 다 기술이다. 같은 음을 표현하더라도, 같은 멜로디를 부르더라도 거기에 맛을 부여하는 것.
앞서의 음역이나 성량이 중요한 것도 바로 이것 때문이다. 비행기가 곡예비행을 하자면 충분한 에너지를 확보해야 한다. 더 빠른 속도와 더 높은 고도와, 마찬가지로 노래를 부를 때도 기본적으로 음역과 성량이 받쳐주면 그만큼 기술을 발휘하기도 쉽다. 3옥 도 가까스로 올라가는 가수가 2옥 시까지 올라가는 노래에서 발휘할 수 있는 기교란 얼마나 될까? 겨우 마이크 가까이 대고서야 목소리가 들리는 가수가 바이브레이션을 넣고 꺾고 해봐야 그게 얼마나 맛이 날까?
대표적인 노래가 그래서 네버엔딩스토리... 네버엔딩스토리, 사실 그렇게 음이 높지는 않다. 아마 2옥 시? 3옥 도? 그런데 그렇게 어려운 것은 고음에서 여력을 남기고 불러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김경호나 김종서의 고음은 내지르는 것이기에 어느 정도 기술만 있으면 그냥 힘껏 내지르면 어느 정도 비슷해지지만, 여력을 남기고 그 맛을 살리면서 세 번을 반복한다는 건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성량도 받쳐주어야 하고, 음역도 되어야 하고, 호흡도 바라야 하고... 내가 이승철을 싫어하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이승철보다 이 노래를 잘 소화한 가수를 보지 못했다. 정말 얄미운 목소리의 소유자다.
그러나 이 셋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 바로 음색이다.
아무리 음역이 넓으면 뭐하는가? 아무리 성량이 좋으면 뭣하는가?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면 뭣하는가? 목소리가 완전히 깨지는 소리라 듣기 괴로우면 그것도 끔찍한 일일 텐데.
차라리 못불러도 목소리가 예쁘면 참고 들을만 하다. 과거 그런 가수들 많았다. 노래는 뭣도 아닌데 목소리만 예쁜 가수들... 물론 생김새도 예뻤다. 딱 노래방 가면 부담없이 부를 수 있는 그런 노래들로 뜬 가수들이다.
그러나 어쩌는가? 일단 듣기에 좋은 걸. 보기에도 좋고. 참 값싼 정서지만 또 그게 대중음악이라.
대중음악은 아트가 아니다. 엔터테인먼트다. 즐기는 것이다. 즐겁자는 것이다. 따라서 즐거워야 한다. 누가 더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무엇이 더 즐겁고 즐겁지 않고일 것이다.
박효신이 트레이닝을 통해 두꺼운 목과 지금의 중후한 목소리를 갖게 된 것, 역시 박완규가 초기의 찌르는 듯한 고음에서 지금의 두꺼운 저음을 갖게 된 것, 김건모가 담배 등으로 성대를 혹사하면서 지금의 철금성을 가지게 된 것들이 바로 그러한 음색의 중요성을 알았기 때문이다. 과거 소리꾼들도 그래서 판소리에 적합한 탁성을 만들고자 목을 학대하고 혹사시키곤 했었다.
내가 카라를 좋아하는 것도 바로 이런 점 때문인데... 카라는 기본적으로 음색들이 좋다. 음색도 좋은데 조화도 좋다. 박규리의 낭랑한 목소리와 니콜의 허스키한 목소리, 구하라의 무미건조한 미성과 한승연의 보다 감수성 짙은 미성, 그리고 강지영의 귀여움까지... 물론 아직까지 구하라와 강지영의 보컬이 많은 부분 발목을 잡고는 있지만 그러나 당장도 그 조화만 놓고 보았을 때 참 매력적이다. 노래야 잘하든 못하든 듣기에 좋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프리티걸이고, 2집에서의 마법...
물론 생김이 예쁘다는 게 가장 큰 몫을 차지했다. 처음에는 박규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입담 때문이었고, 두번째가 처음 미스터 발표하던 무대에서 모자를 쓰고 나온 구하라 때문이었다.
"쟨 뭐야?"
어디 순정만화에서 만화속 주인공이 튀어나온 줄 알았다. 머리비율까지 만화 딱 그대로였다. 원래 만화는 표현상의 이점 때문에 머리를 조금 크게 그리거든.
그러나 지금은 의외로 음악들이 재미있다... 특히 목소리의 조화가 무척 재미있다... 가창력은 그 다음이다. 생생하게 느껴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과 그 조화가 음악을 듣는 재미를 준다. 매우 독특한 느낌? 예전 베이비복스가 이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아무튼 이러쿵저러쿵하다 보니 남는 건 결국 음색이더라. 목소리가 얼마나 매력적인가. 내가 니콜에게 무척 기대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딱 내 타입이다. 그런 목소리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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