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어처구니 없는 리플을 본 적이 있었다. 김태원에 대해서였는데,
"노래도 못부르면서 무슨 가수냐?"
하긴 보니까 기사에 김태원을 가수로 소개하고 있더라. 신대철이 이것 때문에도 열받았었는데,
"아니 왜 기타리스트를 두고 가수라 소개하느냐고?"
한 마디로 팀 음악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소리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서태지와 아이들... 솔직히 말하자면 셋 다 노래 진짜 못불렀다. 서태지는 지금도 노래 못부른다. 발성이 좋기를 하나, 음역이 넓기를 하나, 그렇다고 성량이 좋은가? 음색 하나 괜찮은데...
여기에 양현석과 이주노... 괜히 이 둘이 가수활동 않는게... 아, 잠깐 했었구나? 물론 묻혔지만. 그렇다고 이들의 가치를 무시할 수 있느냐?
어차피 서태지와 아이들에서 보컬은 서태지였다. 이주노와 양현석은 댄서로서 나중에 랩도 맡기는 하지만 그 주전공은 춤이었다. 과연 그런 이주노와 양현석 두고 가창력 운운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밴드는 더 그렇다. 신대철이나 김태원이나 둘 다 보컬까지 맡아보았던 경험이 있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기타리스트다. 기타를 치는 게 본업이다. 노래야 그냥저냥... 솔직히 그럼에도 나는 김태원의 음색을 무척 좋아한다. 내 취향이 미성보다는 그런 쪽이라.
그런 게 팀 음악이다. 보컬은 보컬대로, 기타는 기타대로, 베이스는 베이스대로, 또 코러스는 코러스대로, 장기하와 얼굴들에서 사실상 미미밴드가 하는 게 없다고 그녀들의 존재를 무시할까? 아니 그녀들이 노래를 못한다고 뭔 문제가 되는가? 밴드에서 그녀들의 역할이 그것인데.
보컬을 맡은 멤버가 있고, 연주를 맡은 멤버가 있고, 랩을 맡은 멤버가 있고, 춤을 맡은 멤버가 있고, 단순히 비주얼을 책임진 멤버가 있고...
그래서 팀이다. 그렇게 하나로 어우러져 팀이다. 팀의 가치는 그 조화가 얼마나 잘 어우러졌는가이지 개개인의 실력이 얼마나 좋은가를 의미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특정 인디밴드... 솔직히 앨범 듣고는 실망했다. 연주실력도 그냥저냥하고, 곡쓰기도 그냥저냥하고, 조금 신나기만 했다. 그러나 라이브를 처음 보았을 때... 이야아아아아~~!! 이런 게 밴드로구나!
화학결합이라는 것이다. 연주야 조금 틀리면 어떤가? 오래도록 손발을 맞춰오다 보면 틀리는 것도 딱딱 맞춰서 조화를 이루며 틀리게 된다. 그게 또 라이브의 맛이다. 가사를 까먹으면 까먹은대로, 코드를 까먹으면 까먹은대로, 문득 분위기에 취해서 거기에 맞춰가면서... 밴드음악 제대로 하려면 10년은 함께 굴러야 한다는 게 그런 뜻이다. 조화.
노래야 잘하면 좋다. 춤도 잘추면 좋다. 랩도 잘하면 좋다. 그러나 그래봐야 그것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그것보다 짜증나는 게 없다. 차라리 노래 못하고, 춤 못추고, 랩 못하더라도 조화를 이루는 쪽이 보기도 좋다.
그것이 팀이다. 밴드고. 그룹이고.
내가 가수라는 말에 불쾌감을 느끼는 이유도 그것이다. 김태원도 가수고, 신대철도 가수다. 심지어 백두산, 블랙홀도 가수다. 물론 백두산이나 블랙홀은 일견 맞다. 그러나 그들은 노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음악을 들려주는 팀이다.
바로 그것이다. 대중음악을 단순히 노래로만 한정하는 것. 대중음악에는 노래도 있지만 연주도 있다. 그리고 랩과 춤과 퍼포먼스가 있다. 기타치고, 드럼 두드리고, 랩하고, 춤추는 모든 것이 대중음악의 한 부분이다. 그런데 오로지 하나 노래하는 가수라...
노래가 아니라 음악이다. 가수가 아니라 음악인이다. 단순히 노래하는 가수가 아니라 음악을 들려주고자 - 혹은 보여주고자 모인 팀이다. 기타가 노래 잘 부를 필요 없고, 키보드가 노래 잘 해야 할 이유도 없고, 댄서가 노래를 들려주어야 할 이유도 없다. 그런 건 따로 보컬그룹이라 부른다. 노래를 전문으로 들려주는 팀.
아무튼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보여주는 것이 목적인 팀에게 가창력이라니... 이야말로 김태원더러 왜 노래 못부르느냐고 하는 것과 무에 다른가 말이다. 기타리스트가 보컬을?
사실 이건 오래전부터 품어온 불만이었다. 아무나 보고 가수 어쩌고 하는 데 대한. 무작정 가수 어쩌고 노래부터 이야기하는 데 대한.
다시 말하지만 대중음악에서 노래는 그냥 한 부분이다. 연주와 춤, 퍼포먼스 모두 대중음악의 한 부분들이다. 미쓰라가 네버엔딩스토리를 부르다 신음소리를 냈다고 그를 무시할 수 없는 것처럼.
하여튼 생각해 보면 꼭 음악성 어쩌고 하는 인간들치고 음악성 쫓아 음반 사는 사람 못봤다. 오히려 음악성 쫓아 음반 사는 사람들이 더 관대하다. 그런 것도 있구나...
왜 우리나라 대중음악이 이렇게 아이돌 위주로 돌아가는가? 바로 그런 인간들 때문이다. 입으로만... 음반이라도 사주면... 음원이라도 다운로드받으면... 아니면 차라리 나처럼 솔직하던가.
확실히 나이를 먹으면 관대해지거나 엄격해진다. 명확한 선을 그어 그 선을 넘어서는 것에 대해서는 엄격하면서, 그 선 안에 대해서는 무척 관대해진다. 이를테면 공자가 말한 불혹이랄까? 자기만의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섣부르게 흔들리지 않는.
음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예전에는 참 이것저것 많이 따졌는데 이제는 그런 것 없다. 이론보다는 느낌으로, 머리보다는 가슴으로, 그 순간의 직관으로, 좋으면 좋은 거다... 현명해진다는 것일 게다.
시나 소설이나 음악이나 부분부분 떼어 들으면 의미가 없다. 우리나라 교육의 가장 큰 불만 가운데 하나. 전체로 즐기는 거다. 느낌으로. 흐름으로. 조화로. 그게 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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