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앨범듣기...

까칠부 2010. 10. 5. 08:44

확실히 음반의 시대에서 음원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이 바로 앨범듣기가 아닐까?

 

앨범듣기란 한 마디로 음악을 앨범단위로 듣는 것이다. 싱글 - 즉 곡단위가 아니라 앨범단위로 음반 전체를 듣는 것.

 

물론 여기서 앨범이라 하는 것은 앨범으로써 만들어진 음반을 뜻한다. 단지 하나의 음반에 곡을 여럿 수록했다고 앨범이라 하지는 않는다. 아마 그런 건 레코드라 따로 부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싱글도 앨범이지만.

 

일단 하나의 주제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가사이기도 하고 혹은 음악이기도 하다. 특정한 코드웍을 중심으로 변주를 이루어내거나, 어떠한 주제를 가지고 가사를 써가거나. 결과적으로 음반에 실린 음악들이 일관하여 주제를 갖는 것이다. 기승전결이 있고 통일된 가운데 변화가 있고.

 

따라서 좋은 앨범이란 까는 노래라거나 버리는 음악 같은 것이 존재할 수 없다. 모두가 앨범의 한 부분들이다. 각각의 음악은 별로 대단한 것이 아닐지 몰라도 앨범 전체로써 들을 때 그 의미와 역할이 있다. 그것은 앨범으로 듣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것들이다. 타이틀곡이라는 것도 그래서 의미가 없다. 단지 대중에 알리기 위한 노래일 뿐 그 또한 앨범으로써 들어야 가치가 더해지는 것이니.

 

하지만 그런 앨범이 많은가면... 앨범이란 결국 앨범을 목적으로 하는 아티스트만이 만들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의 곡을 받아 쓰더라도 자기가 곡을 선택해야 하고, 그 곡을 주제에 맞게 배치해야 하고, 프로듀스까지는 자기가 하지 못하더라도 앨범 제작에 자기가 직접 참여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돈과 시간도 많이 들고. 무엇보다 앨범을 통해 들려주고자 하는 의도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원래 레코드가 많았다. 아니 신중현 이전까지 우리나라에 앨범이란 아예 없었다고 보아도 좋았다. 단지 한 곡 넣어 팔기가 뭣하니 음반 하나에 꽉꽉 눌러 채워 내놓는다. 이게 당시 작곡가들이나 세션 등 종사자들의 생계보장이라는 측면도 있어서 싱글이라는 자체가 90년대 이전까지는 아예 없었다. 단 한 곡을 위해서도 음반 하나를 꽉꽉 눌러 채우고... 그래서 나온 말이 까는 곡.

 

즉 타이틀곡 하나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그저 구색맞추기였던 것이다. 굳이 들을 필요도 없고, 단지 작곡가나 세션 등 밥그릇이나 챙겨주자며 만들었던. 그래서 70년대는 옴니버스음반도 많았다. 음반을 하나 채우기는 채워야겠는데 따로 채워넣을 음악이 없을 경우 여러 음악인들이 하나의 음반을 채워 내기도 했던 것이었다. 그런 음반들은 차라리 나은데, 그렇지 않은 음반 가운데는 괜히 사놓고는 타이틀곡 하나 듣고 버리는 것들이 워낙 많아서.

 

확실히 김태원 말마따나 음반을 사지 않게 된 데는 그같은 대중음악관계자들의 안일과 무책임이 크게 한 몫 했다고 할 수 있었다. 전혀 음반을 사는 보람이 없었으니. 차라리 리어카에서 모음집을 하나 사서 듣는 쪽이 훨씬 이익이었다. 라디오에서 녹음해 들어도 전혀 다를 게 없었고.

 

그러나 아주 가끔은 제대로 음반으로 사서 들어야 하는 음악들이 있었다. 싱글로도 좋지만 음반으로 들었을 때 더 좋은 음악들. 말했듯 일관된 주제가 있고, 그 안에서 기승전결이 있고 변화가 있고. 마치 음반 자체가 하나의 음악처럼 들리는 음반이다. 곡 자체가 좋아서도 듣지만 음반 자체로, 프로듀서가 배치한 곡순서 그대로 들었을 때 더 가치있는 음반들. 앨범이다.

 

버리는 곡이란 의미가 없다. 까는 곡이란 자체가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들어야 한다.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 들어야 한다. 그래야 음악인이 들려주고자 하는 바를 들을 수 있다. 그것을 앨범듣기라 한다.

 

지금도 그래서 나는 음원사이트서 음악을 들을 때도 앨범단위로 선택해 듣는다. 다운로드받을 때도 앨범단위로 다운로드받는다. 그래서 가끔 아주 돈아깝고 열받을 때가 있다. 앨범단위로 선택해 듣거나 - 들을 때는 상관없는데 다운로드받았을 때. 그래서 신중한 선택이 필요하다.

 

예전 음반 사고 할 때 그리 고민하고 고심했던 것도 그때문이었다. 단지 타이틀곡 하나 들을 거면 리어카에서 모음집 사서 듣지. 음반을 사려 한다면 앨범듣기가 되어야 했다. 어떤 일관된 주제는 없더라도 음반으로 듣는데 괜히 힘이 빠지거나 해서는 안 되었다. 그런 신뢰할 수 있는 음반들이. 그래서 들어보고 살 수 있는 경우는 미리 들어보고 사고, 그래도 안 될 때는 여기저기 물어도 보고. 물론 이름있는 음악인의 경우는 일단 그 퀄리티가 보장이 되었다.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대중음악이 지나칠 정도로 보컬 중심으로 흐른 것도 최소한 보컬 만큼은 하나의 음반 안에서 크게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연주나 편곡 등은 확실히 까는 노래는 티가 난다.

 

아무튼 지금도 내가 음반을 사고 하는 기준이 그것이다. 음반에 대해 평가하는 기준도 역시. 싱글은 그렇게 듣지 않는다. 심심하다. 싱글 하나가 아무리 좋아도 그것만 하나 달랑... 일단 최소한 EP정도는 되어야. 오히려 또 때로 EP가 더 퀄리티가 있다는 것이 앨범 하나 10곡 이상 꽉꽉 채워넣으려면 그것도 일이지만 EP 대여섯곡 정도야 의미있게 넣을 수 있으니까. 음원을 들을 때도 그래서 음반단위로. 앨범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들을만한 음반만을 대상으로.

 

그래서 판단 기준도 앨범으로 들어 좋은가 나쁜가. 앨범 단위로 들어서 마음에 드는가 안 드는가. 레인보우의 A도 그래서 끝내 다운로드받기를 포기했다. 싱글은 좋은데 MP3 자체가 앨범단위로 듣게끔 만들어져 있어서. 특정 그룹의 노래도 싱글은 거의 MP3로 안 듣게 된다.

 

어쨌거나 그래서 또 앨범듣기의 장점이 숨은 명곡. 타이틀곡이라는 것 때문이다. 타이틀곡은 말 그대로 팔아먹자는 노래다. 대중들에게 잘 꽂히도록 만들어진 대중적인 곡이다. 정작 음악인의 개성이 드러나는 곡은 앨범 안에 깔려 있는 경우가 많다. 어차피 그것 아니더라도 타이틀곡으로 음반을 팔 수 있으니까. 아니 말했듯 제대로 만든 앨범이라면 타이틀곡이란 단지 요식일 뿐이니 앨범 가운데 그만한 노래들이, 그보다 더 좋은 노래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것도 대중의 눈치를 보지 않는 개성강한 노래드이. 보물들이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나만의 명곡이란.

 

가끔 듣는 말,

 

"왜 이 노래로 활동을 안 했을까?"

"묻혀서 아까운 노래..."

 

그러니까 왜 타이틀곡을 내세워 활동을 하는가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왜 굳이 타이틀곡을 두고 음반 한 장을 열 곡 넘게 꽉꽉 채워 내는 것일까? 타이틀곡 - 혹은 활동곡만 들으라? 아니지.

 

타이틀곡이란 자체가 앨범의 타이틀이다. 활동곡이란 것도 앨범 가운데 있는 노래다. 결국은 이것 듣고 공연도 와 주고 앨범도 사 주시라. 공연이란 특히 그들의 팬을 위해 타이틀곡도 아니고 방송도 안 탔어도 팬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려주는 무대이기도 하다. 팬이 아닌 이들은 모르는 음악을 들려주고 할 때의 그 짜릿함이란. 방송으로는 듣지 못하는 음악을 라이브로 듣는 황홀함이란. 대단한 사치다.

 

묻혔다는 것은 앨범을 안 들었다는 것. 활동을 하지 않아 아깝다는 것은 앨범을 듣지 않았다는 것. 전혀 아쉬울 것도 아까울 것도 없는. 앨범이라는 게 타이틀곡만 듣고 버린다는 것은 아닐 텐데.

 

하지만 음원시대가 되면서 더 이상 음반으로는 음악을 듣지 않게 되다 보니. 음원이란 결국 어떻게 해도 싱글단위고. 앨범은 참 좋은데 정작 타이틀곡만 다운로드받고 차트에 오르고. 정작 그들의 음악을 좋아한다 하면서도 나중 가서 하는 말이,

 

"어? 이런 노래도 있었어?"

 

어쩌면 2NE1처럼 아예 3타이틀로 나가는 것도 앨범을 듣게 만드는 방법일지도. 아니더라도 타이틀곡 말고 후속곡으로 두어 곡 미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워낙에 음반판매든 다운로드든 초반에 몰리다 보니 순위등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역시나 이래저래.

 

앨범으로 들으면 그리 좋은 노래들이 많은데. 앨범으로 들었을 때 더 좋은 노래들이 있을 수 있는데. 하긴 그러니까 타이틀곡일까? 대중에 먹힐만한 노래. 그런 힘이 없으니 묻히고 말았겠지.

 

참고로 내가 앨범듣기를 하게 된 사연, 다른 것 없다. 원래 카세트플레이어라는 자체가 구간반복이 안 된다. 싱글만 들으려면 그 부분만 계속 반복해서 돌리고 해야 할 텐데, 그러나 그러기에는 내가 너무 게으르다. 카세트 테이프 꽂아 넣고 그냥 듣는 거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러다 보니 어느샌가 자연스럽게 음반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듣는 것이 습관화되었고. 지금도 그래서 싱글은 싫다. 앨범단위다. 내가 좋아라 하는 특정그룹도 MP3로는 앨범 아니면 안 듣는다. 음원사이트나 가야 짬짬이 싱글을 듣지.

 

음원에서 음반으로 바뀌어 가장 아쉬운 부분일 것이다. 더 이상 음반이 - 앨범이 주는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게 되었으니. 많이들 그렇지 않을까? 싱글만. 타이틀곡만. 특정곡만. 아까운 일이다.

 

그러고보면 음원으로 앨범 하나 다운로드받으려면 음반 하나 사는 것과 별 차이 나지 않으니 음반으로 사는 것도 나을 듯. 어차피 앨범이란 음반단위일 것이고. 부틀렛이나 소장하는 즐거움이나 뭐 기타등등등. 나도 긔 CD를 많이 사지는 않지만. 그래서 아직도 CD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아이돌 앨범을 들으면서도 나는 여기에서 아이돌의 의도를 읽어야 하는 것일까? 기획사의 의도를 읽어야 하는 것일까? 아이돌 시대를 더욱 절감하는 계기이기도 할 테고. 앨범듣기를 하다 보면 확실히 아이돌보다는 그 작곡자에 더 관심이 가고 정이 간다. 앨범이란 아티스트의 영역일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시절을 그리워하는 늙은이의 한탄일까? 가는 시절을 잡지 못하는 안타까움일까?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음악은 앨범으로 들어야 하는 것이니. 나이든 고집일까?

 

그렇다는 것이다. 문득 든 생각이다. 오래전부터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