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떤 루머에 대해 대응하는 기준이 하나 있다. 뭐냐면,
"얼마나 당사자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가."
만일 그로 인해 당사자가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된다면 그만큼 조심해야 한다. 그것이 아직 명확하지 않을 경우, 너무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결국 아니라 밝혀지면? 그때는 어찌 그 책임을 지려는가?
"미안하다!"
"잘못했다!"
미안하다는 말로 해결될 거면 패트레이버도 필요없다. 처음부터 미안할 일은 않는 게 좋다.
그러면 사실이면? 사실이더라도 그것이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치명적인 문제가 있어 사회정의차원에서 밝혀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역시 조심해야 한다. 상처가 되는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불행한 결과로 이어지면? 아니 어쩔 수 없이 그것은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는 것이다.
하여튼 그놈의 관음증이란. 좋아 죽을 것이다. 심심해 죽겠는데 꺼리가 생겼으니. 하나 매장할 수 있게 되었고. 하나 제대로 보낼 수 있게 되었고. 차마 말하기조차 꺼려지는데.
좀 생각이라는 걸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연예인은 장난감이 아니다. 하나의 인격체다. 그들을 상처입히고서 그것을 유희로써 웃을 수 있겠는가.
잠깐의 웃음으로 인해 누군가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을 수 있다. 생각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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