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타블로 - 소수에 의해 인터넷이 지배되어지는 이유...

까칠부 2010. 10. 6. 23:22

사실 타블로의 성적증명서 위조설에 대해서 어느 사이트에서 스탠포드 졸업생이 성적증명서를 직접 다운로드받아 확인한 예가 있었다. 원래는 타블로를 의심해서 다운로드받았다가 오히려 타블로의 성적증명서가 사실이었다 인정하게 된 경우였는데,

 

그러나 그 사실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성적증명서가 위조일 가능성에 대해서는 많이들 아는데, 그러나 그 성적증명서를 직접 다운로드받아 출력해 본 스탠포드 졸업생이 있으며 그에 의해 사실로 입증되었다는 사실은 많이들 모른다. 왜?

 

간단하다. 타블로를 어떻게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매우 적극적이다. 그들은 자기의 정의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알리는데 매우 능동적이다. 알아서 작은 꼬투리만 있어도 여기저기 퍼 나른다. 반면 타블로의 입장을 지지하는 쪽에서는 나만 하더라도 그런 귀찮은 짓 하려 하지 않는다.

 

얼마나 더 적극적으고 극성맞은가. 인디씬에서 어떤 훌륭한 밴드가 있다고 해도 팬덤이 튼튼한 아이돌에 비해 인터넷에서 생산되는 정보의 양부터가 차이가 난다. 아무리 훌륭한 아티스트가 음반을 냈어도 아이돌 팬덤이 생산하는 정보의 양과는 비교부터가 되지 않는다.

 

역사에 대해 자료를 찾으려 해도 가장 많은 것이 음모론으로 무장한 환빠, 혹은 재야사학론자들. 그들은 매우 적극적이다. 그리고 능동적이다. 알아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정보를 생산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인터넷을 검색하는 순간 그들이 생산한 정보를 접할 수밖에 없다. 반증이란 없이.

 

그게 문제다. 그나마 그렇게라도 받아들인 정보를 자기가 직접 찾아보고 알아보려는 노력이라도 있으면 좋은데 그럴 의지나 의욕이 있다면 처음부터 그렇게 앉아서 받아먹으려고만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냥 주어진 대로만. 그냥 보여지는 대로만. 그 이상을 넘어서려 하지 않고.

 

한 마디로 무지한 거다. 게으른 것이고. 무책임한 것이고. 남이 주는대로만. 남이 생산한 것으로만. 자기가 직접 알아보고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의 모든 생각과 판단은 그들의 생각과 판단의 전제가 되는 정보들을 생산한 이들이 지배하게 된다.

 

파워블로거? 논객? 아니 언론사 기자라는 인간들조차 대부분이 거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스탠포드 재학생이 사실을 입증하고. 스탠포드 교수가 사실을 확인해주고. 이미 오래전에 나온 이야기들이다. NSC와 졸업증명서에 대해서. 타블로에 대한 숱한 의혹에 대한 무수한 반박들에 대해서까지. 그러나 정작 사람들에 보여지는 것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소수에 의해 생산되고 퍼뜨려지는 어떤 일방적인 것 뿐이다. 그 이상은 알려 하지 않고 그것만이 전부라 여기고.

 

깊이 생각하려고도 들지 않는다. 간단한 중학교 수준의 국어실력만 있으면 된다. 중학교 수준의 논리력만 있으면 된다. 그러면 과연 그러한 의혹들이 어디서 어떤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가. 무엇보다 단지 이러한 의혹만으로 한 인간을 매장하려는 의도가 얼마나 저열하며 치졸한 것인가. 죄악인가. 

 

하다못해 의혹을 제기하는 쪽에서 그 의혹에 대해 먼저 입증해야 한다는 기본조차도 그들은 전혀 알려 하지 않는다. 의혹을 받는 당사자가 해명할 것이 아니라, 먼저 의혹을 제기하는 쪽에서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고서 반증을 요구해야 함을 전혀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의혹이란 증거가 아니다. 근거도 아니다. 구체적인 자료와 혹은 관계자의 증언. 하다못해 익명이더라도. 그러나 아무것도 없이. 스탠포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상식에 의한 재단과 단정.

 

누구도 사실확인 하나 제대로 하지 않았다. 타블로의 동창들이 페이스북을 만들고 그의 결백을 증명해주려 했을 때, 타블로의 대학시절 사진을 두고 그들이 타블로의 고등학교 동창들이라. 그 가운데 전혀 얼굴형조차 다른 사람들이 태반이건만 그럼에도 그것을 사실처럼. 바로 보이는 사진에서조차 사람들의 얼굴을 직접 비교해 보려는 노력조차 그들에게는 결여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그저 그렇다고 하니 그런 것 같다.

 

타진요가 스탠포드 출신의 지인도 없느냐 할 때는 그것이 논리가 되고, 타진요가 다시 왜 허구헌날 지인이냐고 할 때는 그것이 또 논리가 되고, 스탠포드 찾아가서 직접 성적증명서를 떼고 교무과장의 증언을 받아냈음에도 자기들이 요구하는 자료들만 인정하겠다. 그 자료들도 계속 바뀐다. 그러나 그대로 따라서. 과연 그 어디에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사고와 판단이 있는가?

 

소수에 의해 어떻게 다수가 휘둘리는가? 게으르기 때문이다. 중심이 없기 때문이다. 자기가 직접 알려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없이 그저 남들이 하는 대로만 따르려 하기 때문이다.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생각을 보다 적극적인 소수가 대신해주는 것이고. 정작 다수이지만 그들의 뇌는 그 소수에 있다. 먼저 움직이고 더 많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그들에 의해.

 

인터넷의 문제이기도 하다. 인터넷의 정보는 오히려 TV보다도 더 직접적이다. 직접적인 만큼 더 신뢰가 높다. 그 사실의 여부 이전에 무조건적으로 추종하게 되는 것이 있다. 그런데 여기에 무기력한 대중과 적극적인 소수가 만나고 나면 그래서 낚시라는 말이 나올 밖에. 낚싯대만 드리우면 걸린다. TV방송에 한 순간에 돌아섰다 또 인터넷에서의 의혹에 휘둘리는 그런 모습들처럼.

 

과연 대중이라 할 때 그것은 대중의, 다수의 의견인가. 그들이 진정 그렇게 스스로 생각해서 내린 판단인가. 설사 그것이 꽤나 영향력있는 인사의 말이고 행동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보여준다 하겠다. 인터넷을 통해서. 타블로를 둘러싼 일련의 모습들을 통해서. 그것이 의미하는 바들에 대해서.

 

대중은 어리석은가? 물론 모든 대중이 어리석지는 않을 것이다. 많은 대중은 어쩌면 누구보다더 똑똑하고 영리할 것이다. 그러면 어째서 그들을 어리석다 하는가? 무책임할 때. 나태할 때. 더 나아가려 하지 않을 때. 집단은 대중을 그렇게 만든다. 인터넷 또한 마찬가지. 그래서 대중은 어리석은 것이다. 항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