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도망자 - 포르노에는 시나리오가 필요없다!

까칠부 2010. 10. 7. 14:24

"둠"과 "퀘이크"를 개발한 프로그래머 존 카멕이 한 말이다. 존 로메로와의 갈등 끝에 나온 말인데, 액션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액션 그 자체이지 시나리오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시나리오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구현가능한 액션의 재미가 중요하다는 뜻일 게다.

 

아무튼 이 말은 헐리우드 영화를 비롯한 다양한 대중매체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포르노를 보는 이유가 무엇인가? 섹스를 보기 위해서다. 다른 건 그냥 장치다. 그것을 보다 돋보이기 위한. 그로 인한 성적 흥분을 극대화하기 위한. 그래서 연기력도 거의 요구하지 않는다. 요즘 와서는 더욱 비중이 없고.

 

마찬가지로 액션영화에서 사람들이 보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블록버스터 SF에서 사람들이 요구하는 바는? 보다 정교한 시나리오? 보다 치밀한 심리묘사? 보다 아름다운 러브스토리? 그런 것을 보자고 블록버스터를 찾지는 않는다. 보다 화끈한 볼거리. 시나리오는 그를 위해 존재한다.

 

"도망자"를 보면서도 느끼는 것이다. 이 드라마는 정작 "드라마"를 위한 드라마가 아니다. 액션을 위한 드라마다. "액션"드라마다.

 

하여튼 매회 액션이 빠지지 않는다. 길이도 길다. 솔직히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길고 비중이 크다. 그에 비하면 드라마는 소소할 정도. 소소한 정도가 아니라 뻔한 여러가지 클리셰를 적당히 짜맞춘 포르노의 그것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액션신 빼고 나면 거의 남는 것이 없을 정도로.

 

그렇다고 이 드라마가 가치가 없는가? 말했잖은가? "액션"드라마라고. 확실히 액션 자체만 놓고 보자면 한중일 삼국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 미국이야 아예 들어가는 자본 자체가 단위가 다르니 제끼더라도 일본 드라마 가운데서도 이 정도 액션은 없다. 중국 드라마는 겉보기만 화려했지 내실이 없다. 확실히 잘 짜여진 액션이고 눈으로 보기에 즐거운 액션이다. 돈도 쏟아부은 걸 알겠다. 그를 위한 드라마라면야...

 

다만 아쉽다면 만일 120분짜리 영화 한 편으로 끝냈다면 그 돈으로 액션신 하나에 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과 자본을 투자할 수 있었을 텐데. 말했듯 산만한 것이 보인다. 어색한 것이 보인다. 압축되지 않고 늘어지는 것이 보인다. 모여서 보여져야 할 텐데 퍼진다. 어쩔 수 없는 드라마의 한계라.

 

이제 알았다. 이건 "액션"을 보여주기 위한 드라마다. "드라마"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드라마가 최대한 생략된 것은, 이야기가 최소한으로 단순화된 것은 바로 그를 위한 것이다. 지우를 위한 설정이 과하게 이루어진 것도. 지우의 캐릭터도.

 

아무튼 그래서 또 보면서 느낀 것이 이정진이 배역은 잘 맡았다. 그리고 잘 소화하고 있다. 적당히 독하고, 적당히 선량하며, 적당히 가엾다. 지우를 추격하는 집요함에서는 독기가 느껴지는데, 일상에서의 그는 귀엽다. 경찰로서의 그는 정의롭고. 비덩으로 축적한 이미지를 잘 활용하고 있지 않은가.

 

이나영은 그 자체가 드라마고, 비의 연기는 여전히 거슬리지만 이제는 양해되는 수준이고, 다니엘 헤니는... 왜 나오는 거지? 하기는 드라마를 보자는 게 아니니까. 다케나카 나오토를 보고서는 조금 놀랐다. 저 아저씨가? 그런데 보고 있으니 웃음이 피식피식 나는 것은 일본드라마를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이겠지?

 

성격을 이해했다면 그에 맞춰 보아주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시나리오는 허술하지만 과연 이 드라마가 시나리오를 보여주자는 드라마이인가. 그런 게 동의일 터다. 그리고 납득했다면 그리 보아주는 것이 재미있게 보는 방법일 것이고. 오늘을 기대한다. 어떤 액션이 있을까? 멋진 액션이 있기를.

 

참고로 존 카멕의 저 말은 반만 맞았다는 것이, 결국 시장에서 승리한 게임들은 시나리오도 탄단한 게임이더라는 것이다. 액션을 극대화하는 것도 결국 시나리오다. 포르노의 재미를 극대화하는 것도 얼마나 재미있는 설정이 더해지는가. 너무 실망시키지는 말기를. 약간은 아슬아슬하다. 아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