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MBC스페셜 - 타블로와 한국 인터넷,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까칠부 2010. 10. 9. 01:07

몇 년 전이었다. 나는 원래 인터넷상에서 서명운동하고 하는 것 그렇게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게시판에서 떠들며 서로 욕하고 뭐하고 그게 뭔 대수인가? 실제는 바로 모니터 밖의 현실일 텐데.

 

그런데 그런 비판에 대해 누군가 내게 그런 말을 해 왔었다.

 

"인터넷은 옳다."

"인터넷은 뭐든지 할 수 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이건 위험하다.

 

사람이란 의심이 사라지면 거리낌도 함께 사라지는 법이다. 확신을 가지게 되면 더 이상 조심하지도 삼가지도 않게 되어 버린다. 처음 가는 산길은 그리 조심스럽지만 여러번 오가다 보면 마치 자기집 마당을 산책하듯 여유로운 것과 같다.

 

사고는 그때 일어난다. 더 이상 조심하지 않게 될 때. 더 이상 거리껴하지도 삼가지도 않게 될 때. 주위를 돌아보지 않게 되었을 때. 종교와 이데올로기가 무서운 것은 그래서다. 그것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확신을 갖게 만들고 더 이상 의심하지 않게 하니까.

 

물론 온라인이란 대단하다. 수많은 개인의 수평적 네트워크라고 하는 것은. 그 개인들에 의해 공유되고 재생산되는 정보라고 하는 것은. 그로부터 현실에 끼치는 영향이라 하는 것도.

 

그러나 결국은 그것도 개인이다. 네티즌이라고 하는 추상적 개체가 아니라 개인개인이며 오류의 존재다. 하지만 이미 확인해 버린 네티즌이라는 힘은 어느새 네티즌이라고 하는 관념적 실체를 만들어 버렸다. 말한,

 

"인터넷은 옳다."

"인터넷으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그것은 이미 신앙인 것이다. 종교다. 인터넷이라고 하는. 네티즌이라고 하는.

 

오죽하면 어떤 주장을 하면서도 그런다. 그 주장의 근거를 묻는데,

 

"인터넷에서 봤다."

 

그 주장의 타당성을 이야기하는데 느닷없이 인터넷이라고 하는 대상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인터넷이란 자체고 권위가 되어버린 것이다. 인터넷에서 보았으니 타당성이 있다.

 

펌질이란 그러한 사상의 근간을 이룬다. 어디서 누가 썼는지도 모르는 글을 단지 인터넷에서 보았고 그럴싸 하기에 여기저기에 퍼다 나른다. 그에 대한 검증이란 없다. 그에 대한 구체적인 검증이나 입증이란 없다. 그것이 과연 사실인가 알려는 노력도 없다. 인터넷이니까.

 

"네티즌이 바보인 줄 아는가?"

 

어쩌면 네티즌이란 바보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네티즌이라는 이름을 갖는 개인개인들까지 바보가 아닐까? 하지만 그마저도 네티즌에 가려져 버리니.

 

절대적으로 옳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네티즌이다. 곧 권력이다. 그 다음은 무엇이겠는가?

 

사실 사회적인 불만이야 누구나 가질 수 있다. 어떤 폭력적인 증오같은 것도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감정들이다. 세상에 부처님 가운데토막만 존재하는가? 그랬다면 굳이 부처가 해탈하겠다고 뼈만 남을 때까지 단식을 하고 고행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만 그것을 겉으로 표출하는가? 아닌가?

 

불특정 다수에 불과한 네티즌. 단지 개인의 집합에 불과한 네티즌. 그러나 그것이 네티즌이라는 추상적인 이름으로 묶여질 때. 자신의 어리석음이나, 자신의 모자름이나, 자신의 나약함이나, 결국에 그 네티즌에 가려져 사라지는 것이다. 그 대신 남는 것은 무소불위의 절대적인 정의의 네티즌이라는 허구의 실체. 사람들이 민족주의에 빠지는 것과 같다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허구의 실체로써 가면을 쓰고 짐짓 네티즌을 연기하게 되는 것이다. 절대적으로 옳고, 절대적으로 정의로우며, 절대적으로 지혜로운.

 

한 마디로 자신의 지금의 감정까지도 그런 가운데 절대화되는 것이다. 주관적 감정의 절대화. 그리고 그것을 서로 보증하는 가운데 그들 안에서 보편화되고 객관화되고. 더욱 거리낌은 사라진다. 조심하고 삼가던 것도 사라지게 된다. 용감하다기보다는 무모해진다.

 

도대체 당사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협박을 할 수 있는 무모함이란 어디에서 나왔을까? 집적 일하는 직장을 찾아가 협박을 하고, 공무원을 사칭해 개인정보를 캐내고. 그럼에도 전혀 죄의식없는 그런 뻔뻔함이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원래 그런 사람들이었겠는가?

 

더구나 네티즌이란 그들이 만들어낸 관념의 실체이니, 네티즌이라는 눈으로 보는 대상들도 역시나 관념적 대상일 것이다. 허구의 눈으로써 보는 대상이란 허구에 불과하다.

 

"마치 내가 아바타가 된 것만 같았다."

 

그대로. 아주 정확하게 봤다. 허구의 관념이 만들어넨 네티즌이 보는 인간이란 역시 허구의 관념이 만들어낸 대상이다. 왜 타진요는 그렇게 타블로에 대한 의혹을 거두지 못하는가? 타블로란 자체도 하나의 주체적 인간이라기보다는 그들의 관념이 만들어낸 객체로서의 대상인 때문이다. 타블로는 그들의 관념에서 이미 학력을 위조한 파렴치한인 것이다.

 

어느새 그들의 관념속에서 - 기억속에서 타블로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들이 왜곡되기 시작한 것이 그 증거다. 원래는 사실을 전제로 결론이 내려져야 하는데 이미 결론이 내려져 있으니 사실을 그에 끼워맞출 밖에. 인지의 부조화라는 것이다. 그들이 보는 타블로란 사실관계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인식관계에 의해서 이미 정의되어 있으므로. 인간으로써가 아니다. 단지 자신들의 불만과 좌절을 투사하며, 그들 자신의 힘과 정의를 확인시켜줄 대상으로서다.

 

한 인간의 인생을 망쳐버릴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없다. 그로 인해 주위가 얼마나 고통을 받을 것인가 하는 자체도 없다. 그런 생각은 어쩌면 있을 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관념속에 그들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그들의 인생이나 그들이 겪을 고통이나 인간으로써 겪는 어떤 것이 아니다.

 

무감각해지고 그런 만큼 대담해진다. 평소 하지 않던 짓거리도 하게 된다. 대개 보면 인터넷에서 과격한 인간 치고 현실에서 보면 얼마나 얌전하고 선량한가. 자기가 유리되어 버리는 것이다. 대상은 물론 자기 자신마저 유리되어 인간이 아니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어떻다. 사회적으로 사람들의 심리상태가 어떻다. 그것이 의미가 없는 것은 그래서다. 그드로 하여금 행동에 나서게 한 것은 그들이 처한 환경과 그들이 갖고 있는 감정이 아니라 그들의 손에 쥐어진 힘일 테니까. 한 인간을 - 그 가족까지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힘. 어린아이의 손에 쥐어진 그 힘이.

 

아마 그 가장 큰 증거가 타진요 18만 명이 아닐까? 이만큼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한다. 이만큼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하니 우리가 절대적으로 옳다. 개인이 아닌 전체로써. 절대적으로 옳고 절대적으로 바르며 그러한 권한을 가진 주체로써. 그들의 관념이 만들어낸 허구로써.

 

아직 준비되지 않은 대중이 힘을 손에 넣었다.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개인들이 감당할 수 없는 힘을 손에 넣게 되었다. 그 힘을 어떻게 써야 할 지도 모른 채. 그 힘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어린아이의 손에 쥐어진 칼이야 말로 얼마나 무서운가. 그대로.

 

타블로가 의미하는 바일 것이다. 아니 그동안도 인터넷상에서 있었던, 지금도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보이고 있을 모습처럼. 습관적으로 쓰는 "네티즌"이라는 말과 함께.

 

그래서였다. 아니 전부터였다. 하이텔시절부터. 자신을 집단 속에 묻은 채 집단의 힘에 취해 행세하려 드는 빈곤한 자아들에 대해서. 이것은 조금 위험하지 않겠는가. 인터넷으로 넘어와서는 여기저기서 네티즌이다 뭐다 그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기사화시키고 실체적 권력으로써 대하려 들고.

 

과연 앞으로 다시 이런 일은 없을 것인가? 그러자면 먼저 네티즌 자신의 반성부터 선행되어야겠지. 쉽사리 정의를 확신하고 그것을 과시하려 드는 것부터. 현실의 불만과 좌절을 인터넷을 통해 가상의 대상에게 투사하려는 것에서부터. 그 가상의 대상이 때로 현실의 인간이기도 하다는 것까지.

 

그래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네티즌". 네티즌이기 때문에 어떻다. 가장 경멸하는 소리다. 네티즌이 아니라. 개인이다. 바로 자기 자신. 오류투성이에 무엇 하나 나은 것 없는. 그것을 전제한다면 조금은 조심해가며 산길을 걸어가지 않을까.

 

누군가 나와서 말했다.

 

"지금 이건 권력이 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건 이미 권력입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곰곰히 생각해 보기를. 왓비컴즈와 타진요만 비난해서 해결될 일이 아님을 알고. 다시 타블로와 같은 희생자가 나타나지 않도록. 생각해야 할 부분이다.

 

"이 길 아닌 거 아냐?"

"맞다니까! 나만 믿고 따라와! 못 믿어? 내가 이쪽 길이라면 빠삭하다고!"

 

꼭 사고가 나는 것은 어설프게 산을 아는 사람들이다. 평생을 산에서 산 사람이라면 산을 그리 쉽게 얕보거나 하지 않을 텐데도. 혼자 사고나면 모를까 더구나 다른 사람까지 휩쓸리고 나면.

 

말하지만 현실은 모니터 안에 있지 않다. 자신 역시 모니터 밖 현실에 있다. 네티즌이 아닌 개인으로써. 자신이나 대상이나 모두가 개인으써일 터다. 자각이 필요할 것이다. 현실이라는. 현실은 게임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