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타블로와 관계지향적 사고...

까칠부 2010. 10. 9. 20:56

이번 타블로 사태에서 또 한 번 느낀 것이 얼마나 한국사람들은 인식관계에 취약한가.

 

사실은 명확하다. 이미 증거들과 증언들이 분명하게 제시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이 믿고 따른 것은 누군가 내놓은 단지 논리에 불과한 의혹들.

 

뭐냐면 무엇이 사실인가보다 누구로부터 그 말이 나왔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정보의 거리일 것이다. 연인과, 가족과, 친구와, 직장동료와, 혹은 알지 못하는 누구와...

 

네티즌은 가깝다. 대부분은 같은 커뮤니티에서 활동하고 익숙한 아이디니까. 또 사적인 친밀감이나 신뢰가 형성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반면 토비아스 울프나 톰 블랙이나 알지 못하는 먼 나라의 타인일 뿐이다. 언론은 멀고 인터넷은 가깝고, 현실은 멀고 인터넷 커뮤니티는 가깝고.

 

"외국인이 왜 한국사회를 비판하느냐?"

 

타블로에 대해 쏟아지는 캐나디언이라는 말. 검은 머리 외국인이라는 말들. 남이다. 타인이다. 믿을 수 없다.

 

"군대 갔다 오면 해결될 것을..."

 

마찬가지. 군대라고 하는 공유하는 통과의례를 통해 동류로 인정받으라. 그것은 어디에나 있는 신고식과도 같다. 신고식을 치르지 않았으니 그는 남이다. 타인이다.

 

얼마나 한국사회가 전근대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가. 객관화된 공적인 사실관계보다는 주관적인 사적인 인식관계에 집착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가 아니라 누가 말하느냐. 그래서 어느새 네티즌에 자기를 동일시하고 네티즌의 주장을 근거로 직접 당사자들의 증언을 무시하고.

 

그러고 보면 이에 대해 언젠가 썼던 것 같은데. 참 같은 말 반복하기도 이리 지겹다. 하지만 항상 보이는 모습에 그게 그것이다. 말했듯 한국사회의 바닥이라고나 할까?

 

사실관계보다는 인식관계. 그것이 어떠한 사실을 담고 있는가가 아니라 그와 나의 관계가 어떠한가. 그와 나의 거리가 어떠한가. 사실보다 인식이 우선하는.

 

그나저나 참 우습다. 그렇게 네티즌 운운하며 타블로 욕하던 인사가 안면 싹 바꾸고서는 이제 와서 왓비컴즈와 타진요를 욕하고 있다. 확실히 사과할 디스는 않는다는 점에서 모범적이라 할 만하다. 다만 사과할만한 사안에서조차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가는 그 뻔뻔함이 대단할 뿐.

 

원래 사람이 크려면 독해야 한다. 염치가 없어야 하고 뻔뻔해야 하고. 어설프게 사과해봐야 욕이나 먹을 뿐. 이제 와서 전혀 아무일 없었던 듯 입장을 갈아타면 그것으로 만만세. 역시 인식관계인 터라.

 

누가 말하는가 이전에 무엇을 말하는가. 누구로부터 나온 말인가 이전에 어떤 내용이 그 안에 있는가.

 

이런 기본적인 상식을 말해야 하는 자체가 참 한심스러운. 내가 다 낯부끄러워지는 사건이었다 하겠다.

 

어떻게 사실을 인식할 것인가? 상식은 그로부터 비롯될 터인데도. 웃는다. 웃기지 않아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