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무한도전 - 어린시절 친구는 어떻게 만날 수 있었을까?

까칠부 2010. 10. 16. 23:04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한다. 3000생의 인연이라고도 하고 500겁의 인연이라고도 한다. 3000생이란 3000번을 다시 태어나며 이어진 인연이라는 뜻이고, 500겁에서 겁은 사방 40리의 바위를 100년에 한 번씩 옷깃으로 스쳐 다 닳아 없어지기까지의 시간 - 대략 4억 3200만년의 시간을 뜻한다. 얼마나 대단한 인연인가. 단지 옷깃 한 번 스치는 것만으로도. 하물며 친구란? 연인이란? 그 수많은 인연들이라는 것은?

 

참 안타까웠다. 길과 정형돈은 분명 같은 공간 안에 있었다. 같은 여의도 시민공원 안. 바로 곁을 길이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정형돈이 위쪽으로 향하는 사이 아래쪽에 있던 길이 공원을 빠지는 모습이 한 카메라에 잡히고 있었다. 이미 서로 얼굴을 알고 이름을 알고 오래도록 깊이 사귀었음에도 저리 엇갈림이 있을 텐데 과연 한 번도 보지 못한 친구를 우리는 어떻게 만날 수 있었을까? 하긴 그래서 부부의 인연은 500겁의 인연에 7000겁의 인연이라고 한다. 단순히 계산해서 3조 년의 시간이다. 우주의 나이가 180억 년 정도다. 사랑하는 이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확률이란 그리 낮다.

 

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었다. 물론 오프닝이야 어차피 오프닝이니까. 하하에 이어 노홍철에서 길에 박명수까지 한 마음이 되어 놀려대는 것은 확실히 무한도전다웠다. 그러나 텔레파시 어쩌고 하며 빵을 집어오는 장면은 아이디어가 바닥난 것이 아닌가. 더구나 각자 방향을 정해주고 할 수 있는 한 멀리 가라 했을 때는 "뜨거운 형제들" 움직이는 집편이 생각났다. 마침 둘 다 박명수가 출연한다. 지하철역에서, 버스정류장에서, 길을 찾아 헤매는 모습이란 딱 그 모습이라. 여기서 그만둘까? 지루하기까지 했었다.

 

텔레파시 미션이 주어지고서도 마찬가지였다. 그게 대체 뭔가? 그런 게 재미있겠는가? 길만이 아니라 김태호PD도 이번에는 무리수 던지는구나. 초반까지도 진짜 이거 끄고 다른 일 하는 쪽이 훨씬 보람이 있지 않겠는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턴가 찾아드는 옭조임. 과연 그들은 만날 수 있을까?

 

편집의 승리였다. 이제까지의 무한도전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라 했을 때 멤버들이 각자 떠오르는 곳을 이야기하는데 그것을 적절히 교차편집함으로써 마치 텔레파시가 통하는 듯 긴장감이 높아졌다. 때로 일치하고 때로 어긋나고, 유재석이 고양 종합운동장을 이야기할 때 정형돈이 받고, 그러나 노홍철은 남산을 이야기하고, 또 남산도 정형돈이 받아 노홍철과 정형돈 둘이 만나는가, 그러다가 또 정준하가 장충체육관 말할 때는 길이며 박명수, 하하, 정형돈 모두 장충체육관을 이야기하며 그리로 분위기가 흐른다. 하하와의 가장 진한 감동이 있던 여의도공원은 길에게는 꼬리잡기특집을 하던 장소였고, 하하에게는 그보다는 장충체육관에서의 레슬링이 더 인상이 깊었고, 서로가 그리 오래 한 프로그램을 했으면서도 이렇게나 생각하는 것들이 각기 다 다르다. 그런 엇갈림들이.

 

실제 얼마나 많은가. 같은 것을 보고서도. 같은 것을 듣고서도. 같은 일들을 겪고서도. 그러나 서로 같지 않기에 오해가 쌓이고 엇갈림이 겹치고 마침내는 영영 등을 돌려버리고 마는 것이. 그리 좋아하는데도. 그리 사랑하는데도. 정형돈이 기억한 하하의 눈물을 정작 하하는 기억하지 못했다. 돈가방을 튀어라 특집에서 노홍철과 함께 만든 장면을 정작 박명수만이 기억하고 있었다. 최근에 꾸준히 만들어가고 있던 아이돌특집을 위한 연습실은 노홍철에게만 의미가 있었다. 무한도전 첫회에 대한 기억이야 노홍철이나 정형돈이나 모두 가지고 있었지만 고양종합운동장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유재석 혼자였다. 전혀 다른 이유로 길과 정형돈은 같은 여의도 시민공원에 모였고 그러나 같은 장소에 있으면서도 서로를 보지 못해 엇갈리고.

 

우리네 살아가는 모습과 닮아 있지 않을까. 그렇게나 엇갈리는 가운데 단 한 번의 소중한 만남이야 차라리 하나의 기적일 것이다. 어린시절 친구를 처음 만나는 순간. 지금 사귀는 사랑을 처음 보게 된 순간. 그와 처음 알게 된 그런 순간들. 유재석과 정형돈과 노홍철이 무한도전의 첫회를 기억하는 것처럼. 그러나 그조차도 시간이 흐르면 잊혀진다는 것이다. 그 소중함이. 그 간절함이. 그 고마움이.

 

물론 그런 의미에서였을까? 그건 나도 모른다. 나는 김태호PD가 아니다. 문득 자막으로 보였던,

 

"어린시절 친구는 어떻게 만날 수 있었을까?"

 

그동안의 무한도전을 통해 쌓인 인연이 있기에. 그 시간들의 기억과 감정들과 경험들이, 공유한 시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미션이었다. 그 시간들을 담보로. 그 기억을들 전제로. 그러나 이어지는 엇갈림이란. 서로 접점 없이 멀어지고만 있는 그런 모습들이란. 그렇게들 살아가고, 그렇게들 만나고, 그렇게들 다투고, 그렇게들 헤어지고, 그리고 후회하고 그리워한다. 기다림에 지쳐 짜증을 부리는 멤버들의 모습처럼.

 

프로그램의 원래 의도야 어찌되었든 상당한 의미가 있었던 회차였다 할 수 있겠다. 물론 예능으로서는 너무나 무한도전에 충실했던 회차였다. 조금은 지루하고, 조금은 산만하고, 조금은 평이하고, 무한도전에 익숙지 않은 사람이라면 꽤나 당황스러울 수 있었다. 지나칠 정도로 무한도전 자체에 충실해서. 하지만 무한도전과 함께 했던 시간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새 그들 사이에서 그들과 함께 그 아쉽고 안타깝고 간절하고 아련한 감정들을 함께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더라도 그에 동의하고자 했다면 감동은 더했을 것이다.

 

크게 웃음은 없었다. 분명 웃음이라고 하는 한 가지만 놓고 본다면 그리 좋다고 하기는 애매한 미션이었다. 하지만 멤버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표정 하나 말 한 마디에 어느새 함께 울고 웃고 화내고 찡그리는 것은 이것이 바로 리얼버라이어티이기 때문이 아닐까. 리얼이란 곧 공감이다. 공감이란 일상이며 삶이다. 그들이 보여주는 그런 일상의 모습들이. 삶이란 삶 그 자체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다. 만족스러웠다. 무척.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