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일반

도망자 - 처음으로 집중해 보았다!

까칠부 2010. 10. 21. 07:44

"사업을 위해 사랑을 잃을 수도 없고,

사랑을 위해 사업을 포기할 수도 없다."

 

원래 이런 뻔한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하게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캐릭터다. 뻔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캐릭터가 개성있고 강렬해야 한다. 그래야 뻔한 이야기가 뻔하지 않게 들린다. 뻔하더라도 다르게 들린다.

 

카이의 캐릭터에 반전이 있었다. 진만을 사랑하는 순정남에서 야심을 위해 진에 대한 사랑마저도 포기할 수 있는 냉혈한, 그리고 사랑과 비즈니스적 야심을 모두 충족시키려 하는 비열한 음모자까지. 초반의 선량하던 웃음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니 캐릭터가 드러난 다음에도 진과 함께 있는 순간의 웃음은 진심일 것이다. 이렇게 진심인 캐릭터가 악역일 때 그게 더 무서운 법이다. 다만 카이의 캐릭터가 어디까지 갈 수 있겠는가. 기본적으로 악역이 아니었던 탓에 한계가 있을 것 같기는 하지만.

 

아무튼 그 한 가지로도 느닷없이 드라마의 분위기가 바뀌는 느낌이다. 이제까지 느슨하게 풀어져 있던 것이 단단하게 조이고, 그냥저냥 흘러가던 개울에서 굽이가 생기고 폭포가 생긴다. 문제라면 그것이 다시 지우를 만나면 흐물하게 풀어지는 점이랄까?

 

나까무라 황의 등장으로 지우의 본거지가 흔들리더라는 것도 조금은 생뚱맞다. 하긴 세계탐정협회란 자체가 기믹이다. 비현실의 이야기라는. 철저히 비현실의 가송의 이야기라고 하는 전제인 셈이다. 그것을 강조해 보여주는 것인데... 이건 또 어떻게 작용할까? 의리따위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이게 탐정이냐? 양아치냐? 탐정이 언제부터 범법을 밥먹듯 하는 사기꾼&폭력배의 무리가 되었을까? 이 또한 도망자를 위한 극적 장치이기는 할 테지만 말이다.

 

이정진이 참 얄밉다. 갈수록 얄미운 캐릭터를 잘 살려가는 것 같다. 어쩐지 주는 것 없이 하는 짓이 얄미운 캐릭터? 지우에 대한 애정은 전혀 없는데 이정진이 웃고 있으면 뭔가 미운 감정부터 든다. 딱 그렇게 연기하고 있기도 하고. 드라마가 대박이었으면 이정진도 꽤 살았을 텐데.

 

그나저나 적룡과 송재호의 만남이라. 적룡이라면 1970년대 최고의 스타 가운데 하나였다. 꽃미남배우였다. 70년대 무협영화 가운데 적룡이 주연한 것이 꽤 되어서. 초류향전기 보다가 저 사람이 누구인가. 정소추와도 가끔 헷갈렸다. 비슷한 세대였을까? 송재호가 연배가 위지? 뭔가 새롭다. 적룡이 한국말 하는 것이며 우스꽝스런 연기를 해 보이는 것이며. 칩 쌓기 하다가 무너질 때의 당황해하는 모습은 귀엽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역시 비가 문제다. 캐릭터가 붕 떠 있다. 녹아들지 못하니 지우만 등장하면 긴장이 풀어진다. 위기감도 있고 뭔가 긴박감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다. 가장 비현실적인 캐릭터다. 현실감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 드라마의 흐름을 깨고 있다. 역시 가장 앞서 말한 캐릭터연기의 문제다. 어딘가 있을 것 같은, 완전히 가공의 캐릭터라도 현실과의 접점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것만 아니었어도 어제 분량은 꽤나 성공했을 것 같지만.

 

아무튼 그럭저럭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다. 여전히 멀었지만 이전의 전혀 긴장감 없이 대충 흘려보던 것과는 또 느낌이 다르다. 앞으로도 이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을까? 들인 제작비가 아깝다는 생각 자체는 앞으로도 그다지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이번만 좋았다. 이번만. 과연... 기대가 없다는 것도 슬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