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일반

각인 - 연예인이 예능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이유...

까칠부 2010. 11. 4. 21:32

모 걸그룹의 특정 멤버를 좋아한다. 매우 호감이 크다.

 

그런데 사실 작년 여름까지만 해도 그 멤버는 전혀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몇 번 예능에 출연한 것을 보았지만 뭐 그런 걸그룹에 그런 멤버도 있겠거니. 오히려 그보다는 그 리더가 눈에 들어왔지.

 

계기는 단 한 순간이었다. 8월 초던가? 컴백무대를 보면서 모자를 눌러쓰고 파마머리를 풍성하게 늘어뜨린 모습에 한 눈에 반하고 말았다. 아, 이런 스타일이 가능한 아이돌도 있었구나. 아니 이런 2D스런 스타일이 잘 어울리는 3D세계의 인간이 있었구나.

 

그런데 웬 조화일까? 그래서 이전의 예능까지 다시 돌려보게 되었는데 그렇게 무심하게 넘어갔던 것들이 전혀 새롭게 다가온다. 이렇게 매력적이었던가?

 

이를테면 각인일 것이다. 어린왕자에 나오는 길들임이다. 어느 순간 그의 존재를 인식하는 순간 그 존재는 의식 속에 각인된다.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무수한 개인 가운데 하나였다. 수많은 연예인 가운데 한 사람에 불과했다. 하지만 각인이 이루어지고 그에 의미가 부여되었을 때 그는 특별한 한 사람이 된다. 과거까지 거슬러.

 

혹은 전작주의라는 것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어느 순간 어느 아티스트의 음악이 참 듣기 좋다. 어느 순간 어느 만화가의 작품이 참 재미있다. 어느 영화감독의, 어느 배우의... 그 전에도 분명 보았을 것이다. 얼핏 스치듯은 그것들을 겪어보았을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의미를 갖는 것은 그것을 의식하면서. 5집에서 그 음악을 듣기 시작했을 때 이전의 음반들까지 다시 다 듣게 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전작주의라는 것은 한 사람의 아티스트를 알아가는 하나의 예의라 할 수 있다.

 

비슷한 것이다. 아니 같다. 이전까지는 아무 의미도 없었다. 그러나 의미가 생겼다. 과거를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 생겨난 의미로써 과거의 모습까지 거슬러 판단하고 경험한다. 전혀 새롭다.

 

왜 아티스타가 예능에 모습을 비출 수밖에 없는가? 김태원이 예능에 출연하기 전까지 부활의 음악을 몇 사람이나 들었을까? 김C가 예능에 모습을 비추기까지 뜨거운 감자의 음악은 몇 사람이나 들었을까? 바닐라루시라면 이름은 들어본 바 있지만 남자의 자격을 거치면서 비로소 그들의 존재를 알고 음악을 알았다.

 

조금이라도 분량을 따내려. 조금이라도 인상을 깊이 주려. 예능도 하나의 전장이다. 어떻게 해서든 남들보다 더 화면에 얼굴을 비추고 대중에 알리기 위한. 그럼으로써 자기를 각인시키고, 자기를 돌아보게 만든다. 궁극적으로 자기의 작품을 보고 싶도록 만든다.

 

물론 누구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성공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말했잖은가? 전쟁이라고. 그리고 대중은 오만하고 변덕스럽다. 그리고 그런 대중과 만나는 최전선이 바로 예능이다.

 

아무튼 슈퍼스타K출신들이 요즘 음원사이트에서 성적이 좋은데, 솔직히 기껏해야 리메이크에 불과한 그것들이 그렇게까지 대단한 반향을 일으킬만한 어떤 음악적 가치가 있는 것들인가? 하지만 화제성이 있으니까. 누구보다 인상적으로 대중에 각인되었으니까.

 

굳이 연예인 기획사에서 무리해가며 언론플레이를 하고, 또 예능에 나가서 무리수를 두고, 어차피 더 이상 음악을 듣는 시대는 아니라는 거다. 작품을 즐기는 시대도 아니고. 말했듯 대중은 오만하고 변덕스럽다. 그들의 취향에 맞게 그들에 강한 인상을 줄 수 있도록. 길들이려는 것이다. 비즈니스다.

 

참 신기하더라는 것이다. 예전 출연한 예능이나 무대를 보면서 왜 이때는 이런 느낌이 없었을까? 하지만 그때는 내게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모두들 그리 필사적이고 열심인 것일 테고. 좋아하기 전과 좋아하고 난 뒤와. 거꾸로 싫어하기 전과 싫어하고 난 뒤와. 그렇게 사랑하던 사이라도 한 번 싫어지면 몇 년 전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싫은 기억이 다 생각나기 마련이다.

 

그러고 보니 예전 신대철이 한 말이 생각난다. 신중현의 재발견이라고 한창 이슈가 되었을 때,

 

"아버지는 항상 그 자리에 계셨다. 재발견한다고 수선을 피우지 않아도 그 자리에서 음악을 하고 계셨다."

 

그러나 그게 바로 또 사람의 심리라는 것일 테지.

 

그렇다. 단지 계기. 결국은 사람의 의식을 결정하는 것은 계기라. 첫인상이 그리 중요한 이유일 테다. 이벤트가 그렇게 중요한 이유일 것이고.

 

문득 떠올랐다. 예전 동영상들을 보면서. 왜 그때는 몰랐을까? 하지만 그것이 사람이라는 것일 게다.

 

좋아지고 나면 모두가 좋고 싫어지고 나면 모두가 싫어지고. 각인이라는 것이다. 새겨지는 것.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