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 - 오영두 감독의 웃음...

까칠부 2010. 10. 12. 07:19

좋아 죽으려 한다. 그동안 비용 때문에 엄두도 내지 못하던 장비들을 쓸 수 있다는 생각에. 그것들을 사용해서 더 멋진 장면을 찍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감독만이 아니다. 배우들도 그렇게 신나고 즐거울 수 없다. 더 나은 조명과 더 나은 장비와 그것으로 만들어가는 더 나은 장면들과.

 

"초심을 잃어봤으면 좋겠어요."

 

욕심이 많을 것이다. 여기서는 이런 것들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 장면에서는 이런 장비가 있으면 좋을 텐데. 그 부분에서는 이러이러한 것들이 있으면 더 나은 장면이 나오지 않을까?

 

물론 그러자면 타협이 필요하다. 어떤 투자자도 단지 영화인의 열정을 위해 투자를 하지는 않는다. 남자의 자격 PD도 KBS라고 하는 자기가 몸담은 기업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 댓가로 더 나은 장비들을 더 자유롭게 쓰며 더 멋진 영상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누가 더 행복할까? 고양이 이야기를 하려 한다. 집에 있는 동안 아마 그 녀석은 배부르고 따뜻했을 것이다. 누가 그 녀석을 - 아 다른 고양이 녀석들과 좀 다투기는 했다. 요즘 그게 꽤 심각한 수준이었다. - 위협하기를 하나, 녀석 굶주리게 하기를 하나.

 

처음 녀석은 우리 집에 들어왔다 가출을 했었다. 업둥이다. 길고양이인데 집 주위를 얼쩡거리던 것을 데려다 기른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갑갑한지 가출했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왔다. 그래도 바깥보다는 집이 안전하고 편하다.

 

그러나 이번 가출에서 녀석은 나만 보면 그냥 도망간다. 집 주위를 얼쩡이기는 하는데 그렇다고 다시 들어올 생각을 않는다. 그러고 보니 요즘 집 주위에 삼색고양이가 보인다. 삼색고양이는 암놈이다.

 

과연 집에서 편하게 사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조금 불편하더라도 밖에서 자유롭게 사는 것이 좋을까? 답은 누구도 내리지 못한다. 아니 자유라는 자체가 무엇인가?

 

밖에서 굶주리며 추위에 떨다 보면 그만큼 할 수 있는 것들도 제약받을 수밖에 없다. 집에서처럼 아무데서나 편히 낮잠을 자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디든지 가고 싶은대로 갈 수는 있지만 직접 먹이를 구해야 한다는 현실은 그 또한 제약을 가할 것이다. 물론 집에 있는 녀석들이야 어디 가고 싶다고 갈 수나 있나. 집 나간 그 녀석은 어디선가 암코양이를 만나 새끼도 낳을 수 있겠지만 집에 있는 녀석들은 아니다.

 

독립영화 제작진을 만나 활기찬 모습을 보이는 남자의 자격 제작진들이나, 남자의 자격 제작진들을 통해서 방송국의 값비싼 장비를 쓸 수 있게 됨에 함빡 행복한 웃음을 주체하지 못하는 독립영하 제작진들이나, 결국 마음은 같은 것이다. 더 멋진 작품을 만들고 싶다. 더 멋진 영상을 만들고 싶다. 속한 곳이 다르고 그로 인한 여건이 다를 뿐. 그래서 그들은 그 짧은 만남에서 그렇게 쉽게 어울릴 수 있었는지 모른다. 어떤 공감이 있었기에.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공통점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촬영이 끝나고 남자의 자격 제작진은 다시 방송국으로, 독립영화 제작팀은 자기들 생활 속으로, 전처럼 방송국이라는 틀 안에서 최선을 추구할 테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또한 최선을 추구할 것이고. 하고자 하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다를 테지만, 그 짧은 만남 이후 또 다시 다른 자기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누가 더 우월하고 누가 더 열등한가? 누가 더 낫고 못한가? 단지 선택일 뿐. 자기가 하고자 하는 최선을 위한.

 

가끔 듣는 말이다. 타락했다. 자본과 손을 잡고 대중을 위한 무언가를 만들려 할 때 들려오는 말이다. 돈을 쫓는다. 성공을 쫓는다. 그래서 뭐? 자본으로부터 독립해서 만들 수 있는 어떤 멋이 있는가 하면, 자본과 손을 잡음으로써 가능한 또 다른 멋도 있는 것이다. 누가 옳고 누가 틀렸는가?

 

보다 대중적으로. 보다 상업적으로. 자본과 함께 손을 잡고. 타락이라기보다는 선택이 아닐까. 지금과는 다른 자유를 위해서. 지금과는 또 다른 추구를 위해서. 그래도 가장 좋은 것은 마음이 자유로운 것일 테지만.

 

여러가지로 생각케 하는 미션이었다. 결국에 모두의 마음 속에 깊이 자리한 어떤 것을 건드린 탓일까? 초심이란 비단 저들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저들만을 위한 미션은 아니었을 것이다.

 

언제고 남자의 자격 멤버들이 모여 독립영화를 만들어 보았으면. 한정된 예산으로 최소한의 장비로써 오로지 열정과 순수로써 만들어갈 수 있는 어떤 것들에 대해서. 합창도 좋지만 그래서 독립영화도 좋다.

 

남자의 자격은 생각케 하는 프로그램이다. 생각케 하고 느끼게 하고 깨닫게 하고. 항상 내 주위 가까이에 있다. 오랜 친구처럼.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친구다. 좋은 프로그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