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오랜만이다. 줄넘기. 그러고 보면 골목길에서 줄넘기하며 노는 것 본 지도 꽤 되었다. 가장 먼저 사라져버린 놀이가 아니었을까?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원래 시작할 때 숫자를 센다. 상대가 줄 안으로 들어와 타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숫자를 센다. 오늘 본 그대로 자세를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자세가 잡히면 그로부터 주문이 들어간다.
꼬마야 꼬마야 뒤를 돌아라,
돌아서 돌아서 땅을 짚어라,
짚어서 짚어서 만세를 불러라
불러서 불러서 잘 가거라
아마 동네마다 약간씩은 다를 것이다. 우리동네에서는 앞서의 마지막 귀절을 꼬마야 대신 두 번 반복하고서 다음 주문이 들어갔다. 그쪽이 운율상으로도 잘 어울린다.
처음에는 혼자서 들어가서 네 가지 과제를 마치고 나온다. 그러면 다음에는 두 사람이, 그 다음에는 세 사람이, 그리고 나중에 더 어려운 난이도의 미션이 있었는데 그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려서도 몸으로 하는 건 젬병이라 거기까지 간 적이 한 번도 없거든.
꽤 재미있는 놀이였는데. 하지만 초등학교 1학년 이후로는 거의 해 본 적 없는 듯. 오히려 학교 체육시간에나 가끔 운동삼아 했을까? 이사가면서 내 주위에서만 줄넘기를 않은 것인지, 아니면 원래 그 즈음부터 줄넘기 자체가 잘 하지 않게 된 것인지.
이진은 정말 굴욕이 어울린다. 예능에 나오면서 어느 정도 분량욕심도 있을 터이건만, 그러나 전혀 그런 것 없이 순수하게 굴욕을 당해준다. 어떻게 리액션을 해야 하는가를 아는 서인영과는 달리 굴욕을 당해도 그게 진짜 굴욕인 것 같다. 우습고, 안쓰럽고, 그러나 어쩐지 연예인답지 않게 순수해 보이고.
유리던가? 아이가 손에 놀이 도중 손에 물감을 뭍이고 이진을 쫓아다닐 때 이진의 표정은 진짜 곤란해 하는 표정이었다. 아, 진짜 난처하구나. 그런데 그게 또 예능프로그램에서 예능프로그램답지 않은 뭔가 마음 편한 여백을 준다는 것이다. 이진의 호감이 높은 이유가 있다. 웃기는 게 전부는 아니라는 거다.
아무튼 줄넘기야 요즘 운동부족인가 하체가 부실해서 그렇다 치더라도, 600미터 달리기에서 상장받았다는 것이 정말 사실이었구나. 아마 오늘 나온 멤버들 가운데서 가장 빠르지 않았을까. 서인영의 달리기를 고려하더라도 거의 절반 가까이 차이가 났던 것을 그대로 역전시켜 버렸다. 박가희가 노사연과 차이를 벌려놓은 것이 지연과 유인나의 차례가 되어서도 좁혀지지 않은 채 끝나고 말았다. 지금 저 정도면 전성기에는 거의 이사인볼트급이었지 않았을까?
줄넘기로 굴욕을 당하고, 달리기로 다시 명예를 회복하고. 결론은 한 가지, 참 열심이다. 참 순수하다. 그러나 어딘가 어설프다. 모자르다. 그것이 이진의 매력이다.
서인영은 그런 점에서 확실히 예능을 안다. 언제 어느때 어떤 리액션을 취해주어야 하는 것을 안다. 모태다혈이라고는 하지만 아주 잘 어울려주지 않은가. 어떤 때 버럭해야 하고 어떤 때 굴욕을 당해주어야 하는가. 선해보이는 만큼이나 이진과는 다르게 능숙해 보이는 것은 그래서. 어색하지 않고 잘 녹아든다.
오늘의 승자는 이진. 굴욕은 당했지만 그 굴욕으로 인해 계속 회자되었다. 계속 입에 오르내리고, 계속 관심이 집중되고. 보면서도 가장 인상깊었던 멤버가 이진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고무적인 것은 유인나든, 아이유든, 지연이든 이제 더 이상 개인으로서가 아닌 영웅호걸 안에 녹아들게 되었다는 것.
어느 한 개인을 이야기하기에는 - 당장 이진만 하더라도 그녀를 돋보이도록 한 것이 누구였는가? 이진 자신? 아니었다. 주위였다. MC 이휘재와 노홍철은 물론, 신봉선 등 멤버들이 그녀를 가지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었던 때문이었다. 모두가 그렇다. 혼자서 나서서 뭐라도 하려 하기보다는 그것을 받아 이어가는 팀웤이 있다. 캐릭터도 그래서 바로 그런 가운데 산다. 관계라는 거다.
유인나나 홍수아나 특별히 튀지는 않지만 그런 가운데 그녀들이 그 자리에 있음을 한상 의식케 된다. 서인영이야 워낙 존재감이 대단하니까. 이진은 무존재감의 존재감이. 아이유든 지연이든. 그래서 조금 저조하지 않나 싶다가도 돌이켜 보면 이렇게나 매력적인 존재들이 있었음을 깨닫는다.
편집의 묘일까? 대본의 힘일까? 솔직히 신봉선이 귤투표 결과를 조작한 자체만 보면 대본의 냄새가 물씬 풍기기 때문에. 과연 신봉선이 스스로 그런 무리수를 두어야 할 당위란 어디에 있을까? 신봉선이 그런 순위에 집착할 그런 캐릭터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봉선이 굳이 카메라가 꺼진 것을 확인하고 다른 사람의 귤을 자기 사물함에 넣어야 했던 까닭은?
눈에 들어온 것은 어설퍼서. 그리고 어색해서. 가장 흐름을 깨는 장면이었다. 그렇지만 않다면 대본이야 있거나 없거나 중요한 건 얼마나 재미있느냐니까. 그런 점에서 영웅호걸은 이미 훌륭히 자리잡았고, 영웅호걸로부터 비롯되어야 할 재미를 충실히 시청자들에 주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이미 좋은 것이다. 재미있으니까.
아무튼 내내 웃으며 보았던 한 시간 반? 맞나? 덕분에 남자의 자격 감상 쓰는 게 지장을 받을 정도였다. 남자의 자격 보고서 칙칙해진 눈을 영웅호걸의 상큼함으로 정화한다. 야심찬 계획이 그녀들의 매력에 먹혔다. 유쾌함으로, 그리고 흐뭇함으로, 참 상쾌하고 유쾌한 시간이 아닌가.
다음주는 기자체험이라 하지? 여기자란 또한 남자의 로망이다. 어딘가 지적이고, 어딘가 활동적이고, 약간의 시크함에, 약간의 터프함에, 어려서 재미있게 보았던 만화 가운데 여기자 로제라는 게 있었지. 일본만화 베끼기인가 오리지날인가는 아직도 확인을 못 해 봤지만. 어떨까? 기자에 가장 잘 어울리는 멤버는?
튀는 개성보다는 어울리는 조화로써. 혼자서 개인기로서 웃기기보다는 한 데 어우러져 이야기를 만들어가며 웃기는 그런 것들이. 가장 기대하며 보는 에능 가운데 하나다. 재미있었다.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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