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무한도전 - 착한 사람이 일찍 죽는다!

까칠부 2010. 11. 7. 06:46

자동차라는 안전한 도피처가 있는 상황에서 대등한 위치의 일곱 사람이 서로를 쏘아 제거할 수 있을 확률은 세 가지, 하나는 바보던가, 하나는 팀을 짜던가,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을 속여넘기던가,

 

길은 바보였다. 하하도 역시 바보였다. 하기는,

 

"어차피 시간도 얼마 안 남았는데 정면으로 가자!"

"총 나가는 거야?"

 

보아하니 정형돈, 노홍철, 정준하 모두 현역출신인 것 같던데. 지그재그로 뛴다거나, 은폐엄폐를 시도한다거나, 이동하면서도 사주경계를 하고... 길과 하하 모두 주위를 살피지 않고 무작정 내달리다 당했다. 특히 분량은 없었지만 차에서 내리기까지 가장 안전했다는 점에서 차에서 내리고 나서의 행동들은 경솔했다.

 

박명수도 역시 바보과. 안전한 차안에서 먼저 나와 그 모습을 노출하는 쪽이 절대 불리하다. 유재석을 적대하는 캐릭터가 그를 그 순간 바보로 만들었다. 오기를 기다리겠다. 그게 가장 좋은 전략이었는데.

 

제대로 팀플레이가 이루어진 것은 거의 마지막 정형돈을 상대로 정준하와 노홍철이 협공했을 때. 하지만 그것도 따지고 보면 박명수로 인한 우연이었고. 서로를 철저히 못 믿는 상태에서 - 그보다는 배신만을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 팀플레이는 요원하다. 결국 정준하도 노홍철에 의해 죽는다.

 

배신에 배신... 정준하가 노홍철에 전화를 하면서 배신에 배신이 꼬리를 문다. 사기꾼 캐릭터 그대로 정준하와 팀을 짜고는 정형돈과도 손을 잡고 은밀히 그들의 뒤를 노린다. 정형돈 역시 유재석과 손잡고 정준하를 미끼로 노홍철을 잡으려다 빈틈을 보인 유재석을 배신하여 제거. 정준하를 죽인 것도 노홍철의 배신.

 

그러고 보면 정준하의 캐릭터가 과연 바보인가? 순진한 것인가? 길을 죽인 것도 정준하다. 정형돈을 도망치게 만들고, 마침내 정형돈에 일격을 가한 것도 정준하다. 유재석과 정형돈의 꼬드김에 끝끝내 노홍철을 배신하지 않은 것도 정준하다. 결국에 그로 인해 노홍철에 배신당해 죽지만.

 

그래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좋은 사람은 일찍 죽는다. 하긴 그렇다고 정준하가 좋은 사람이냐면 시작부터 노홍철과 짜고서 정형돈을 유인해 제거하려 했었다는 거다. 그것이 또 정준하의 생명줄을 늘려주었고.

 

다만 조금 작위적이라는 것이 압구정에서 열심히 싸우다 갑자기 남산으로 갈 것은 뭔가? 그리고 또 느닷없이 여의도로 이동. 흠... 특히 정준하의 경우 노홍철과 마지막 두 사람 남았을 때 그때 서로를 겨누자고 조건을 달고 동맹을 맺었는데, 정작 노홍철과 둘만 남았을 때는 어리버리하다가 좋은 기회 다 놓치고 오히려 죽는다. 나름대로 어느 정도는 합이 있겠지?

 

그래도 바보인가? 순수인가? 정준하가 배신당해 죽는 스토리가 어제의 무한도전 기둥줄거리가 되겠다. 교활하기보다는 어수룩하고, 영리하다기보다는 어딘가 서툴고. 그러나 정작 가장 중요할 때 믿다가 당하는 것이 마치 한 편의 드라마 같다. 유재석이 죽었을 때보다 더 정준하의 죽음에 영화주제가가 어울릴 듯.

 

위치추적센서가 부착된 캡슐이었던가? 가격대만 만만하면 한 번 길거리에서 그러고 놀아보고도 싶은데. 학교 다닐 때는 학교 안에서 했었다. 학교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는 서로 마주칠 가능성도 높으니. 일상이 서바이벌이라고 도시를 무대로 하는 서바이벌이라... 기대했던 만큼의 재미. 배신의 드라마가 있어서 또 재미. 다만 배신이라는 코드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 관계로 노홍철의 승리는 그닥 마음에 들지 않는다.

 

박명수의 존재감은 확실히 돋보인다. 솔직히 박명수의 개그는 나와는 코드가 한참 안 맞는데, 그러나 우격다짐으로 좀비가 되어 돌입함으로써 정준하와 정형돈, 노홍철 사이의 묘한 균형을 깨뜨려 버린다. 거기 휘말리며 정형돈이 죽고, 정준하가 유리한 상황에 있다가 노홍철에 죽고. 사실상 막바지 드라마틱한 반전은 바로 박명수의 작품이랄까? 뭔 뜬금없는 난입인가 싶다가 그렇게 끝나고 보니 이것도 꽤 재미있지 않은가. 그래서 무한도전에서도 박명수가 1.5인자인 거겠지.

 

다시 한 번 필드로 돌아가고픈 충동을 느끼게 해주는 아주 고약한 회차였다. 야비하고 교활하고 뻔뻔한 자만이 마지막까지 살아남는다는 교훈이 있었고. 전쟁이니까. 킬러보다는 마피아의 시가전 같지 않은가.

 

말 그대로 "리얼" 버라이어티였다. 버라이어티했다. 리얼했고. 재미있었다.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