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민속씨름이란 정권차원의 어떤 정치적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할 수 있다. 물론 전통문화이고 민속놀이였다. 하지만 이렇다 할 저변 없이, 아마추어 씨름조차 활성화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 어느날 느닷없이 시작된 것이 민속씨름이었다. 민족을 좋아했던 전두환정권의 3S정책의 일환이었다.
그만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주먹구구로 체급을 태백, 금강, 한라, 백두로 체급을 나누었다가 이내 한라와 백두를 제외하고 유명무실해지지 않나, 민속씨름의 운영방식이라는 것도 일본의 스모의 그것의 영향을 많이 받아 어떤 사람들로부터는 민속씨름에 민속은 없다는 비판까지 들어야 했었다. 그런 방만함이 결국은 90년대 이후 씨름의 몰락으로 이어지고 말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씨름이 일대 붐을 일으키며 국민스포츠로까지 불리웠던 이유. 씨름이란 교과서에나 나오는 흘러간 민속놀이 정도로만 알던 내가 학교 운동장에서 또래 녀석들과 허리띠를 부여잡고 뒹굴도록 만들었던 바로 그 계기.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도 당시 씨름부가 생기며 전국대회에서 입상도 했었다. 오히려 민속씨름을 통해 씨름의 저변이 확대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당시 이만기는 한라급이었다. 복싱으로 치면 미들급 정도다. 물론 보통 사람들에 비하면야 키도 크고 덩치도 어지간했지만, 그러나 한 체급 위의 백두급 장사들 사이에서는 그저 보통의 어린 청년으로만 보일 뿐이었다. 더구나 생기기까지 잘생겼으니. 이렇게 곱상한 청년이 저 작은 산만한 장사들을 자빠뜨리고 천하장사의 자리에 오르리라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
누구나 그렇다. 누구나 자기를 약자라 생각한다. 남들보다 못하다고. 남들보다 못났다고.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약자를 응원하게 된다. 약자가 강자를 꺾고 승리하는 것을 기대하게 된다. 많은 영화와 만화와 소설과 드라마가 그런 내용으로 구성된다. 그런 것을 드라마라 부른다. 그런데 그 드라마가 현실에서 생소하지만 힘과 힘이 부딪히는 원초적인 씨름의 모래판 위에서 구현되었으니.
사실상 당시 씨름의 인기는 이만기의 인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만기의 극적인 승리는 이후 민속씨름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나같은 또래의 꼬마녀석들로 하여금 모래판으로 달려가 서로의 허리띠를 부여잡도록 만들었다. 인간기중기 이봉걸, 모래판의 신사 이준희, 결국은 그들 역시 이만기가 있었기에 국민적 스타로 발돋움했다 할 수 있었다. 비주얼도 그만하겠다, 기술씨름은 보통 화려하고? 더구나 매번 덩치도 작고 가냘퍼보이는 선수가 더 큰 덩치의 선수들을 번쩍번쩍 들어올려 자빠뜨리는 모습은 어떤 카타르시스까지 느끼게 했으니.
다만 결국에 그런 것들을 넘어서지 못한 것이 민속씨름의 한계가 아니었을까. 씨름이 보여주던 그런 드라마가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이만기를 통해 느끼던 그 카타르시스를 더 이상 느끼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어느샌가 140킬로그램을 넘어서는 거구들이 등장해서 힘으로 모래판을 눌러버리기 시작하면서 단지 씨름이란 힘자랑이라. 강호동도 그렇게 보면 상당한 기술씨름을 구사하던 선수였는데 말이지.
몇 년 전 씨름연맹에서 이만기를 제명한다 했을 때 오히려 사람들이 씨름연맹을 비웃은 것은 그래서였다. 이만기야 말로 한국 씨름의 처음이며 끝이었으니까. 레전드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전설이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이만기는 그야말로 한국 씨름 그 자체다. 이만기를 통해서 사람들은 씨름의 존재를 알았고, 이만기를 통해서 씨름의 재미를 알았으며, 이만기를 통해서 씨름을 꿈꾸었다. 그런데 감히 씨름연맹따위가 이만기를 제명한다 했으니. 그것이 바로 이만기였다.
강호동의 순발력이 놀랍다. 그런 상황에 이만기를 끌어들일 생각을 하는가? 울릉도 촬영이 무산되고 침체되어 있는 분위기에서도 강호동은 어떻게든 포인트를 잡아 분위기를 띄우려 한다. 가라앉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그래서 그다지 지루함을 모르고 봤다. 거의 보지 않던 1박 2일이고 정말 오랜만에 보는 중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던 끝에 인제대에서 교수로 있는 이만기와의 씨름제의. 솔직히 이것 때문에 봤다. 이만기가 나왔다고 해서. 더구나 강호동과 시합을 한다고 한다.
강호동도 커리어가 만만치 않다. 젊어서 일찌감치 부상으로 은퇴하지만 않았다면 어쩌면 강호동은 이만기를 넘어서는 커리어를 쌓았을수도 있다. 힘도 힘이려니와 기술도 만만치 않은 선수였다. 더구나 경기 외적으로도 분위기를 자기에게 유리하게 이끌어가는 재주가 있었다. 영리하고 신경전에도 능해서 심지어 이만기가 그를 경기중에 죽여버리겠다 말했을 정도였다. 아마 MC로서 그가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데는 그렇게 씨름판에서 경기를 자기를 중심으로 이끌어가던 그 영리함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만기와도 몇 차례 경기를 펼쳤지만 그때는 이만기도 쇠퇴기라. 그리고 기본적으로 그리 살이 없던 타입에 무리해서 체중을 불린 한계도 있었다. 그렇더라도 그때 이미 강호동이 이만기를 꺾고 있었으니.
강호동도 역시 한국 민속씨름에 있어 전설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이야 예능MC로 더 잘 나가고 있지만 민속씨름의 전성기에 이만기의 뒤를 이어 강호동이 있었다. 더 강한 힘과 능란한 기술과 영리한 경기운영능력까지 지닌 올라운드 플레이어로서. 어쩌면 그가 부상으로 일찍 은퇴한 것은 그러한 완벽함에 대한 댓가였을지도.
민속씨름이 있는지도 모르게 유명무실해진 지금 이 얼마나 대단한 이벤트인가? 씨름이라는 것이 대중으로부터 멀어진 지금에 이미 전설이 되어 버린 그들이 다시 모래판에 선다는 것은? 정식대회도 아니고, 단지 예능의 일환으로써 타이틀 없이 겨루는 것이지만. 한때 그들의 경기를 보며 열광하던 입장에서 그것을 안 보고 넘어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잘 보지 않던 1박 2일을 뒤늦게나마 찾아보게 되었는데...
"씨름을 보다 대중에 알리려면 강호동씨랑 나랑 10년에 한 번씩 모래판에 섭시다."
역시나 이만기는 씨름 그 자체였다. 예능을 위한 제안인데도 그는 그 순간에도 씨름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제명까지 감수하며 씨름과 씨름인을 위해 씨름연맹과 충돌할 수 있었던 것일 테지만. 보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괴물같은 장딴지만큼이나 여전한 그의 씨름에 대한 사랑을 볼 수 있었으니.
물론 이만기와 강호동의 대결은 다음주에나 있다. 감질나게도. 아주 열받게도. 다음주는 1박 2일을 본방으로 봐야 할까? 대신 아직 어린 초등학생 씨름선수들의 어른인 1박 2일 멤버들과의 시합이 있었다. 까짓 어린아이들인데 그것 하나 못 이기겠는가?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게 휘떡휘떡 넘어가는 모습들이라는 것이. 비록 모두가 초보라는 것은 있었지만 씨름이란 힘 이전에 기술이라. 간만에 시합을 앞두고 강호동이 씨름을 지도하는 모습도 새롭기도 했고. 나는 역시 MC강호동보다는 씨름선수 강호동이 좋다.
아무튼 재미있었다. 이게 원래 울릉도편인데 망한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이만기를 찾아가기까지의 공간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왜 강호동이 유재석과 더불어 TOP2인가. 잠시라도 지루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그의 감각은 거의 동물적이다. 제대로 안다리에 받다리에 연속기에 넘어가는 느낌?
다만 김종민의 상태는 생각 이상으로 심각했다. 계기가 주어지지 않으면 그냥 가만히 서 있는 게 보인다. 그나마 계기가 주어져도 소극적으로 움직일 뿐이고. 너무 위축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예능이라는 게 자기를 내보이는 것인데 저렇게 주눅이 들어서야 얼마나 자기를 보여줄 수 있을까? 병풍은 그나마 보이기라도 한다. 소품1, 소품2... 예능감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어도 자신감 떨어지는 건 대책이 없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할 듯.
간만에 본 1박 2일이었지만 역시 1박 2일이었다. 괜히 지금 가장 높은 시청율을 기록하고 있는 예능이 아닌 것이다. 김C가 하차하고, MC몽이 저렇게 되고 여러가지 악재가 겹쳐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탄탄하지 않은가. 그보다는 이만기의 존재가 더 관심이지만 말이다. 1박 2일의 건재가 - 강호동의 존재가 반가웠다.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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