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그려진다. 꽤 큰 컷일 것이다. 강무결이 앞서 가고 뒤에는 매리가 뒤쫓아가고. 강무결이 돌아보면 화들짝 매리가 골목으로 숨는다. 음반가게에서 강무결은 시디를 고르고 매리는 그 앞에서 기다리고. 밤거리 불량배들에게 겁먹고 주춤거리는 매리의 어깨로 느닷없이 얹혀진 강무결의 손.
밴드 멤버들이 싸우는 모습도 지극히 만화적이다. 분명 싸움인데 폭력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어디 일러스트에라도 나온 듯 귀엽고 다정하다. 쓰레기통이 날아다니고 과장된 액션을 취하고 그 사이에서 매리의 두 친구들이 되도 않게 말리고 있고. 맞다. 만화라기보다는 차라리 일러스트라 해야 옳을 것이다. 매리의 패션은 만화적이면서도 일러스트적으로 화려한 색감과 풍성한 귀여움을 보여준다. 과연 이런 패션을 이렇게까지 살릴 수 있는 캐릭터가 또 있을까?
화려하지 않고 수수한 외모가 어쩌면 어수선할 수 있는 패션을 단정하게 마무리한다. 만화적으로 과장되어 있으면서도 일러스트인양 차분하다. 전체적으로 그림이 된다. 장근석은 잘 생겼고 문근영은 수수하게 귀엽고. 어색한 듯 소박한 연기가 매리의 캐릭터를 돋보인다. 다만 아쉽다면 매리의 또 한 사람의 남편인 정인. 역시 만화적으로 보이면서 약간 힘이 달린달까? 강무결의 반대편에 서기에는 캐릭터도 약하고 눈빛이나 목소리에도 힘이 없다. 어쩔 수 없이 장근석과 문근영 두 사람의 드라마일 듯.
참 씁쓸하다. 우리나라 밴드음악의 현실을 보여준달까? 얼마전 슈퍼스타K에서도 정작 밴드로 참가한 타란튤라는 갈갈이 찢긴 채 따로 오디션에 임해야 했었다. 밴드가 인기를 끌면 가장 먼저 보컬부터 빼내는 것이야 당연한 것이고. 그렇게 밴드가 깨지고 보컬만 따로 데뷔하는 것을 많이 보아 왔다. 그때는 그런 보컬들을 그리 미워했었는데,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것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 구창모도 말하지. 송골매 나오고서 돈이라는 걸 벌어봤다고. 밴드로는 돈이 안 된다.
밴드 나와서는 밴드에서 하던 것과는 다른 스탠다드 팝이나, 발라드, 심지어는 트로트까지. 밴드음악의 전성기는 밴드출신 보컬의 전성기이기도 했다. 그만큼 밴드의 무덤이기도 했고. 보컬이 나갈 때마다 팀은 하나씩 깨지거나 혹은 보컬을 바꾸며 헤매야 했고, 기억되어지는 건 오로지 보컬. 그런 점에서 데뷔의 기회마저 박차며 밴드를 지키려 하는 강무결이란 얼마나 만화적인가 말이다. 하긴 요즘은 굳이 밴드출신 가운데서 보컬을 빼낼 필요도 없던가? 각 기획사마다 연습생의 풀이 넓으니. 연습생 가운데 골라서 데뷔시키기도 바쁜데 뭔놈의 인디밴드 보컬? 역시 만화다.
아무튼 보컬만 주목받는 현실에 고마워하고 미안해하면서도 그를 질투하고 원망하는 감정의 선이 살아 있다. 기획사의 제안을 박차고 함께 하려는 강무결의 가방을 들어주려다가도 우연히 함께 하게 된 위매리의 친구들이 강무결만을 보고 있으니 어느새 원망하며 화를 내는 그런 모습들이. 그리고 주먹다짐. 참 시답잖은 일로도 밴드란 자주 싸운다. 싸우고 나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시시덕거리며 어울리고. 싸운 만큼 정은 깊어지고 의리도 두텨워지는 법이니까.
만화가 원작이라던가? 내가 우리나라 순정만화를 챙겨보지 않은 지도 꽤 되어서. 주위에 대여점이 죄다 망하는 바람에 책 빌려볼 곳도 마땅치 않다. 어디 정보 구할 곳도 마땅치 않고. 하지만 만화가 원작이라면 참 잘 만든 드라마 아닌가? 보고 있으면 전혀 본 적도 없는 만화이건만 그 컷 하나하나가 바로 보이는 것 같다. 캐릭터며 패션이며 배경이며 연출이며 컷이며... 이건 그냥 만화다. 드라마로 만든 만화. 일본에서도 이렇게까지 원작을 잘 살린 드라마는 찾아보기 힘들다. 정말 좋다.
재미있다. 어제 일찌감치 술 마시고 뻗어 자는 바람에 챙겨보지 못했는데, 뒤늦게 보고 나니 본방을 놓친 것이 후회될 정도다. 간만에 습관이 아닌 진정으로 재미있어 보는 드라마를 만났다. 도망자와는 다르다. 원작은 그다지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지만 드라마는 확실히 좋다. 마음에 들었다. 이건 만화다. 최고다.
'드라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망자 - 더러워서 때려친다! (0) | 2010.11.13 |
---|---|
도망자 - 악역이 살아야 드라마도 산다! (0) | 2010.11.10 |
매리는 외박중 - 만화다! (0) | 2010.11.09 |
도망자 - 작가의 행복... (0) | 2010.11.05 |
도망자 - 개연성이 없으면 눈이라도 즐겁던가... (0) | 2010.1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