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1박 2일 - 이만기... 2

까칠부 2010. 11. 15. 07:16

어깨걸어메치기였던가? 첫판에서 이만기가 강호동을 넘어뜨린 그 기술. 샅바를 놓고 자유로워진 어깨를 상대의 반대편 겨드랑이 사이로 넣어 걸어 넘어뜨리는 기술이었을 것이다. 씨름을 본 지도 오래되니 기술 이름이 맞는가는 모르겠다.

 

누군가 그러던데. 강호동이 봐준 게 아니냐. 하지만 씨름이라는 것도 결국 중심을 넘어뜨리는 게임이다. 세번째 시합에서 지고서 강호동도 말했다.

 

"중심은 먼저 빼앗기는 바람에..."

 

샅바싸움이 치열한 것도 어떻게 샅바를 잡느냐에 따라서 보다 유리하게 상대의 중심을 자기에게로 끌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첫번째 시합에서도 이만기가 강호동의 겨드랑이 사이로 어깨를 밀어넣었을 때 강호동은 이미 이만기에 중심을 완전히 빼앗기고 있었다. 되치기가 제대로 먹혔더라면 역전도 가능했을 테지만, 그러나 현역도 아니고 그렇게 중심을 완전히 빼앗기고 나면 기술을 걸려 해도 중심을 잃어 어제처럼 넘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두번째 시합은 확실히 보기에도 이만기가 방어기술을 거의 쓰지 않고 있었다. 버티기라든가, 허리와 다리를 이용한 풀기 기술이라든가, 거의 그냥 드니까 들려 넘어진다는 느낌? 강호동이 분명 힘도 좋고, 들배지기 자체가 강호동의 주특기였기는 했지만 너무 쉽게 들어가지 않았을까. 아니나 다를까.

 

세번째도 마찬가지다. 서로 힘을 주어 들어올렸을 때 그 의도 역시 상대의 중심을 빼앗기 위해서다. 상대의 중심을 보다 위로 들어올림으로써 상대의 중심이 흐트러지기 쉽도록 만들자는 것인데, 여기서도 이만기가 강호동보다 한 수 빨랐다. 그리고 그 한 수가 강호동으로 하여금 힘을 써 볼 여지조차 주지 않고 그를 모래판에 구르게 만든 것이었다.

 

그야말로 기술씨름의 진수라고나 할까? 강호동도 힘씨름을 했다고 여겨지고 있지만 상당한 테크니션이었다. 기술씨름의 대가였고 어제도 그 기술들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이만기에게 들려질 때 허리힘만으로 풀려나는 장면은 분명 힘만으로는 불가능한 것이었을 것이다. 이만기가 제대로 기술을 건 상황에서도 그것을 역전시키려 시도할 수 있다는 것도. 물론 그런 강호동을 - 한참이나 어린 더 젋은 나이의 강호동을 역시 기술로써 쓰러뜨린 이만기야 말로 대단하다 할 수 있겠고.

 

서로 인사를 하고 마주앉아 샅바를 잡기까지는 다정한 선후배사이였지만 어느새 샅바를 잡고 서로 힘을 주기 시작할 때는 살기가 TV화면 너머로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은지원의 말처럼 그 순간에도 수많은 생각이 오고가고 있었고. 그리고 폭발적인 힘과 탄력, 유연성, 그 위에 기술들.

 

이만기가 전성기에 120가지의 기술을 알고 썼다고 하던가? 정확하지는 않다. 어느샌가 모래판 위에 기술이 사라지고 힘과 몸무게가 전부가 되면서 보지 않게 되었으니까. 치열한 신경전과 순간을 오고가는 절묘한 기술과 그리고 무엇보다도 육체 본연의 힘. 단순히 덩치가 크고 힘이 좋다고 들어올리거나 밀어붙여 승리를 구하는 힘씨름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다. 왜 사람들은 당시 그렇게 씨름에 열광했던가?

 

회식에 이은 이만기와의 허심탄회한 토크도 좋았다. 어떤 격식을 갖추고 한 것이 아니라 어디 여관방에서 아는 사람끼리 옹기종기 모여 뒷풀이하듯 떠드는 수다와도 같았기 때문에. 괜히 꾸미고 하는 것 없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이야기들이 그만큼 진솔하고 가슴에 다가왔다. 1박 2일스런 왁자한 수다까지 어울려서.

 

이만기가 이미 그때 은퇴를 생각하고 있었구나. 그러나 그가 씨름 그 자체인 이유. 은퇴를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도 영광스런 자리에서 영광스런 모습으로 은퇴하기보다는 자기의 뒤를 이을 누군가를 찾아 그로 하여금 자연스레 자신을 밀어내도록 하고자 했다는 말에서였다. 누구나 멋지고 화려하기를 바라겠지만 패자가 되어 쓸쓸히 떠밀려나더라도 자신의 뒤를 이어 한국 씨름을 지탱할 누군가가 있기에 그를 위해서 현역에 남아 있겠다. 그것이 마침 강호동이었던 것이고.

 

아쉽다면 강호동마저 부상으로 그리 오래 활동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랄까?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던 모습은 바로 그래서였을 것이다. 눈물을 흘리고, 설레어하고, 그리고 잠 못 이로도록 아쉬워하고. 이만기처럼 모든 것을 이루고 명예롭게 은퇴한 것이 아니라 부상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모래판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더욱 모래판이, 그리고 이만기와의 경기가 그에게 의미가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더구나 강호동이 씨름판을 떠나고 더욱 씨름판은 덩치와 몸무게가 전부가 되어 버렸으니. 기기묘묘한 기술씨름이란 찾아볼 수 없이 오로지 힘과 힘에 의한 단순한 대결이 전부가 되어 버렸다. 아마 역시 나 또한 어제가 아쉬웠던 것은 잊혀진 기억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준희와 이봉걸... 역시 이만기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또한 인간기중기 이봉걸이다. 2미터가 넘는 장신에, 그 거구의 씨름선수들마저 번쩍번쩍 들어올리던 괴력, 최홍만의 업그레이드판일까? 기술마저 좋아서 이만기와 시합이 있을 때면 항상 명승부가 펼쳐졌었다. 이봉걸의 힘이냐? 이만기의 기술이냐? 이후의 오로지 덩치와 체중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전부인 그 힘과는 다른 힘이다. 바로 그 이봉걸과의 이야기.

 

강호동이 이만기와 처음 경기를 하던 순간의 이야기도 재미가 있었다. 어제만큼은 강호동은 예능인 강호동이 아니었다. 철저히 씨름선수 강호동이었다. 씨름의 설렘과 두근거림을 간직한 씨름키드 강호동이었다. 동경하던 선배 앞에서 재롱도 피우고 싶은 -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귀여워보이기까지 했던.

 

이승기는 아마 이만기를 모를 것이다. 그러나 은지원만 되어도 그가 어린 시절 이만기가 현역으로 모래판에 서고 했었으니. 그보다 나이가 많은 이수근이나 김종민이나. 전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인기 연예인과 밤을 보낸다는 생각에 설레어 하는 이만기의 마음가짐보다는 더 특별할까?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내게도 무척이나 특별했었고.

 

잘 보지 않던 프로그램이지만 단지 이만기 때문에라도 의미가 있지 않았던가. 더구나 다른 경쟁예능프로그램들이 모두 결방이라 부담이 적었다. 덕분에 남자의 자격에 대해서는 조금 소홀할 수밖에 없지만. 글 쓰랴 씨름 보랴. 다시 한 번 다시보기로 보고서 이제서야 1박 2일에 대해서도 쓴다.

 

어제는 해피선데이의 날이었다. 유기견에 다가가려는 남자의 자격 일곱 남자들도 보기 좋았고, 한국 씨름 그 자체인 이만기와의 허심탄회한 이야기며, 또다른 전설 강호동의 시합도 좋았고. 누가 뭐라든 내게 있어 최고의 예능이었다. 2시간 40여 분. 그 시간이 이리 짧을 줄은. 고맙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고맙다.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