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만화나 소설 보면 그런 게 있었다. 꼭 주인공을 괴롭히는 놈들이 있다. 되도 않는 실력으로 괜히 주인공에 라이벌의식을 느끼고 그를 꺾고자 하는 녀석들.
그런다.
"이번은 단지 연습이야..."
정보를 쥐고 있는 것을 이용해 전혀 대비없이 무대에 오르도록 한다. 물론 말과는 달리 그것은 실전이다.
전혀 생각지도 않게 단지 연습이라 여기고 가볍게 나섰다가 - 아니 그렇게 대단한 것이라 여기지 않고 별 부담없이 나섰다가 알고 보니 그것이 매우 중요한 장면이었다더라. 뭐 여기서 만화 같으면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일발역전이 가능할 테지만 말이다.
제작진의 잔머리가 보인다. 왜 굳이 신보라와 구하라를 따로 뛰게 했을까? 그리고는 함께 달리지도 않은 두 사람의 달리기를 한 데 편집해서 비교해 보여준 이유는?
어차피 뒷사람과의 차이가 그렇게 벌어져 있다. 전력을 다하려 해도 그렇게나 2위와도 차이가 벌어져 있으면 더 이상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게 대부분의 사람이다.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아도 그런데 하물며 아마추어야. 전혀 숨조차 차지 않아 보이는 신보라가 과연 그 상황에서 얼마나 최선을 다했을까? 구하라는 또 그렇게 2위와 거리가 벌어져서 얼마나 전력을 기울여 뛰었을까?
도대체가 한 트랙에서 같은 출발선에서 겨루지 않은 레이스의 결과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말이다. 서로 함께 뛴 상대가 다르고 상황이 다른데, 일단 먼저 뛴 신보라에 비해 구하라가 구사인볼트라는 닉네임을 걸고서라도 더 의식하고 뛰었을 수도 있다. 물론 가정이다. 가정이지만 여러 변수가 있을 수 있고, 따라서 함께 한 레이스를 뛰지 않은 이상에는 간접적인 비교란 의미가 없다.
그런데도,
"간발의 차이로 구하라 승~!"
모르겠다. 처음부터 제작진이 출연자들에게 그리 언질은 주었는지.
"일단 경주를 마치고 나면 따로 편집해서 누가 더 빠른가 볼거야."
아니라면 이건 그야말로 비열한 꼼수겠지.
굳이 구하라와 신보라를 같이 뛰게 하지 않은 이유. 구하라가 신보라보다 느리면 안 되니까. 구하라라면 현재 청춘불패의 에이스인데 그 구하라가 구사인볼트로써 신보라보다 느려서는 프로그램 차원에서도 손해가 막심할 테니까.
그러고서 정작 뛰고 나서 동영상을 가지고 비교해 보니 구하라가 더 빠르더라. 처음부터 두 사람을 경쟁시킬 생각이었다면 한 레이스에서 뛰도록 했을테지. 아닌 이유는? 당연하지 않겠는가? 아마 구하라가 졌다면 방송으로 내보내지도 않았겠지. 아닐까?
처음으로 제작진의 인성에 대해 생각케 되었다. 그러고 보면 참 꼼수가 강했다. 정도는 모르는데 꼼수는 강했다. 그래서 여전히 청춘불패 하면 남는 건 꼼수 뿐이다. 쓸데없는 이벤트에, 의미없는 행사에, 왜인지 모르겠는 게스트에. 정작 청춘불패 자체는 어디로 가버렸는지 모르겠고.
그나마 오늘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가위바위보 게임을 하면서 한선화와 주연이 바보커플을 맺은 장면.
사실 대단할 것 없이 그냥 가위바위보 같은 것을 세번 연속으로 낸 상황이다. 그런 적 있지 않은가? 몇 번이고 같은 것 내고 비기는 상황이야 그리 이상할 것도 특별할 것도 없는 상화이다. 하지만 그 전에 김신영과의 가위바위보에서 몇 번이나 계속해서 얻어맞으면서 생겨난 바보 주연의 이미지에, 한선화가 바보가 바보를 알아본다 운을 띄우고, 가위바위보가 계속 겹치자 송은이가 마무리짓는다.
"난 바보 아냐~~!"
주연의 비명은 그것을 아예 기정사실화하는 것 같다.
이런 게 바로 리얼버라이어티 아닌가. 바로 이런 것을 위해 캐릭터라는 게 필요한 것이다. 굳이 김신영과 주연이 가위바위보로 서로 때리기 게임을 하고, 한선화가 거기서 바보가 바보를 알아본다 하고, 역시 그것을 받는 것도 지극히 주연스러웠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 더 마음에 들었던 것이 배추와 무를 놓고 퀴즈게임을 할 때, 문제를 맞춘 빅토리아가 정작 주연의 바구니를 잘못 가져가면서 생겨난 일련의 상황극들. 주연의 바구니에 배추와 무를 담아 가지고 왔으니 주연은 그것을 자기 것이라 주장하고, 여기에 빅토리아는 자기 것이라며 아까워하고, 끝내 빅토리아가 양보하겠다 하자 주연은 넙죽 그것을 받아들인다.
"너 이미지를 생각해~~!"
그 천연덕스런 뻔뻔함이야 말로 주연의 캐릭터가 아닐까. 아마 효민이나 선화였으면 또 다른 상황이 펼쳐졌을 테지만, 그래도 역시 주연이니까. 약간은 얄밉게 능청스러울 수 있는 것도 주연의 캐릭터일 것이다.
바로 이런 것을 바랬던 것이었는데, 빅토리아의 천진함이나, 주연의 뻔뻔함, 선화의 바보스러우면서도 능청스런 추임새도. 하지만 안타깝게도 퀴즈게임 내내도 결국 이같은 상황은 이 단 한 번 뿐이었다.
게임 자체는 재미있었다. 농사에 관련한 퀴즈에, 상품으로 주어진 시간 안에 무와 배추를 뽑아온다. 얼마나 청춘불패스럽고 재미있는가. 원래 이런 종류의 퀴즈는 청춘불패에서 자주 하던 것이고, 그 상품 역시 청춘불패 그대로다. 무와 배추를 뽑아오는 과정에서도 각자의 캐릭터가 잘 드러나고. 2초만에 무와 배추를 뽑으랬더니 아예 난간을 넘어 밭으로 뛰어내려가는 효민처럼.
그러나 결국에 문제 풀고, 배추 뽑고, 무 뽑고, 당연히 나왔어야 할 멤버들 사이의 이야기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육감대결이라도 보는 것처럼 각자 알아서 따로 문제를 풀고 행동할 뿐.
청춘불패가 갖는 - 내가 그동안 일관되게 주장해온 가장 큰 문제이자 한계일 것이다. 출연자 사이에 관계가 없다.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는다.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상황에서도 그 안에서 이야기가 나오지 않고 각자 따로 논다. 오죽하면 게스트 나왔을 때가 오히려 다 자연스럽다. 게스트나 고정멤버 자신들이나.
게임은 참 재미있었는데 말이다. 아이디어도 좋고 구성도 좋고. 그러나 고정출연자들에 의해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리얼버라이어티로서는 참 의미가 없지 않았는가. 그게 또 청춘불패만의 자랑이겠지만 말이다.
그 밖에 인상깊었던 것이 힘겨루기에서의 빅토리아의 자세. 힘은 어쩌면 소리가 더 셀지도 모르겠다. 그 자세로 그렇게 버티기가 쉽지 않다. 빅토리아의 경우 딱 선이 잡혀 있지 않은가? 팔로 드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드는 거다. 몸 전체로 쌀포대를 떠받들고 있는 것이 보인다. 아마 그대로 두었으면 한참을 더 버티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역시 무엇이든 힘보다는 자세다.
메뚜기 튀김도 오랜만이었다. 예전에는 자주 먹었다. 요즘은 농약 때문에도 메뚜기 보기가 힘들어서. 어려서도 소주병이니 주전자니 가득 잡아놓고 구워다 간식삼아 먹고 했었는데. 아, 시골 가서. 중국인인 빅토리아가 못 먹는 것도 신기했고, 태국 자주 놀러다녔으면 메뚜기가 그리 대단할 게 없었을 테고. 시골에서 자랐으면 더욱. 멸치볶은 맛이라... 내 기억으로는 조금더 바삭하고 고소한 맛이었는데.
아무튼 제작진 밤길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이제 겨우 이름이 알려지고, 더구나 육상대회의 결과로 육상돌이라는 캐릭터도 생겼는데, 그걸 이런 식으로 소모해 버리다니. 차라리 정정당당하게 겨루고 졌으면 깔끔한 맛이나 있지. 이런 식으로 야비하게. 신인이라고 우습게 보이는 건가? 참으로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설마 그런 늦은 시간에 시작하리라고는. 안 하는 줄 알았다. 설마 그런 늦은 시간에 누가 본다고 할까? 그런데 느닷없이 게시판에 올라오는 구하라와 신보라의 달리기... 결국은 낚시로 판명나고 말았지만.
아침나절부터 미처 보지 못한 앞부분 챙겨 보고. 보면서 또 실망하고. 작년 이맘때는 그나마 기대라는 것이 있었는데. 아마 그때 가장 기대하고 지켜보던 사람 가운데 하나가 나였지 않았을까? 내가 더 한심할 지경이다. 이걸로 내가 그동안 들어먹은 욕과 비아냥과 조롱이 얼마인데.
물론 추측이다. 설마 진짜 그랬을까? 하지만 그렇게 보였다는 것이다. 되도 않는 간접비교로 "구하라 승"이라 자막을 써놓은 그 순간에. 아니었으면 하고 바라지만... 어쩌면 생각없음이야말로 진짜 죄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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