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멋진 노래다. 가사도 신랄하면서도 아름답고. 멜로디와 사운드와 한 데 잘 녹아든다.
그런데 가사를 잘 안 듣게 된다. 가사를 따로 읽고서야 이게 뭔 내용인가를 알았다. 왜?
간단하다. 내 이야기가 아니니까. 가사란 이야기다.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에 운율을 더하고 멜로디를 더하고 리듬을 더하고 사운드를 더해서 전하는 것이 노래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라면?
대화란 동의를 전제한다. 먼저 상대의 이야기에 동의함으로써 대화는 이어진다. 듣고 동의하고 그로부터 판단하는 것이다. 동의가 전제되지 않으면 그것은 단지 소음에 불과하다.
머리로는 분명 어느 정도 이해한다. 들은 바가 있으니까. 아는 것이 있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가슴에 확 와닿는가면, 어디까지나 그건 그들의 이야기라는 거다. 내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고 보면 요즘 내가 가사를 잘 안 듣게 된 이유가 그것인 것 같다. 아이돌 음악 - 내가 그들의 노래에 동의하고 할 이유가 무어인가? 그들 또래에 맞게 쓰여지고 불려지는 노래다. 그네들 또래의 정서와 경험을 담고 있다. 비록 그들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 써 준 노래이고 가사더라도.
이제 갓 스물 넘은 한참 어린 친구들의 이야기에 내가 공감할 바가 무엇일까? 직접 마주하고 이야기한다면 머리로라도 이해하고 들어주겠는데, 그러나 노래란 그렇게 머리로 이해하며 듣는 것이 아니라는 거다. 내가 공감할 수 없으면 결국 지나는 의미없는 지저귐에 불과한 것이다. 더구나 요즘의 가사들이 전보다도 더 주관적이고 직설적이고 보면.
주관적이라는 것은 자기 이야기라는 것이고, 직설적이라는 것은 한정되었다는 말이다. 그들에, 그들이 처한 상황에 동의하지 못하는 한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다.
원래도 가사를 잘 안 듣기는 했다. 팝을 듣던 영향으로 가사란 단지 얼마나 음악에 잘 어우러지느냐. 멜로디와 사운드에 잘 녹아드는가. 그러나 그래도 내 이야기에 대해서는 항상 귀를 기울이고 했었다는 것이다. 내 이야기라 여겼을 때는 들으려 하지 않아도 가사가 쏙쏙 들어와 박혔다. 나이를 먹었다는 것일까?
브로콜리너마저의 음악은 섬세하다. 성긴 듯 치밀하며 야무진 듯 비어 있다. 그 사이를 채우는 것이 어떤 감정의 선을 쫓는 섬세함. 마치 자객같다. 마음을 놓고 있으면 방심하지 못하도록 필요한 곳에 필요한 소리로 도발해 오는.
말 그대로 선이다. 멜로디가 흐르고, 가사가 따라 흐르고, 사운드가 흐르고. 가만히 귀기울여 듣는 악기 소리들이 좋다. 정교하게 짜맞춰진, 그러나 아닌 척 의뭉떠는 사운드가. 그래서 편하다. 가만히 음악을 틀어놓고 딴 짓 하고 있으면 언제 음악이 흘러갔는지도 모른다. 가끔 귀에 잡히는 멜로디와 사운드가 아, 내가 지금 음악을 듣고 있구나. 독특하면서도 사람을 놀라게 하지 않는 재주가 있다. 바로 섬세하다는 것일 게다.
계피가 떠나고 많이 바뀌기는 했지만, 확실히 보컬라인에서 빈 여백이 많이 보인다. 그러나 그 자리를 채워넣는 악기소리도 만만찮게 섬세하며 아름답지 않은가. 즐겁고. 이런 게 밴드음악이구나.
아직 더 들어봐야겠다. 뭐라 평가하기는 주제넘고. 다만 귀를 기울여 악기가, 보컬이 지나는 선을 쫓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마치 몰래카메라로 다른 누구의 일상을 쫓는 것마냥 그 동선이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다.
좋은 음악이다. 아직도 이런 음악을 하는 친구들이 있구나. 비록 가사는 그닥 와닿지 않아도. 그래도 왜 내가 가사를 듣지 않는가 깨달음이 있었으니. 나는 내 일 아니만 극단적으로 무심하다.
근래 가장 마음에 드는 음악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요즘 이거랑 다른 하나랑 두 개만 듣는다. 음악을 듣는 주간이 아니라서. 그런 때는 음악이 때로 소음이 된다. 즐거운 것이다. 좋은 음악과 만난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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